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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쟈의 한국 현대문학 수업 - 세계문학의 흐름으로 읽는
이현우 지음 / 추수밭(청림출판) / 2020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로쟈님 하면 인터넷서점 A사의 스타블로거였다. 자신의 서평만으로 책을 몇권이나 출간하시고, 전공인 러시아문학 강의 서적도 많이 펴낸 책 좀 읽는 사람들한테는 유명한 분이다. 그런 그가 한국 현대문학을 논한다. 뭐, 책을 많이 읽었으니까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했는데 이 책을 읽고 난 지금 저자의 굉장한 독서 내공, 독서력에 감탄할 수 밖에 없는 책이다. 한국 현대문학의 대가들과 그들의 작품을 통해 한국사회와 한국문학을 들여다보고 있다.

사실 자신의 전공이 아닌 분야를 논하기가 특히 아직도 많은 사람들의 경험 속에 남아있는 현대와 현대문학은 더더욱이 힘들 수 밖에 없는데 용기있는 시도다.
나름 책 좀 읽었다는 나도 잘 모르는 1950년대 손창섭님부터 1990년대 이승우 작가님까지 다루고 있다.
저자는 오십대에 이르러 문학에 대해 무엇을 알게 되었는지, 또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알고 싶어졌다고 한다.
특히 그동안 한 명의 독자로서 한국문학에 대해 갖고 있는 생각과 견해를 정리했다.
또한 러시아문학이나 서양문학을 강의한 전문가였기에 한국의 현대 문학이 문학적으로 가지는 의미를 잘 나타낼 수 있을 것이다.
1950년대를 대표하는 손창섭에게는 한국전쟁이 가장 압도적인 경험이므로 거기서 크게 벗어나기 어렵다.
전쟁은 그 자체로 ‘가치의 영도’다. 그것은 삶의 의미를 빼앗는 동시에 회색의 공백지대를 창조한다. 이러한 역사의 등가물에 해당하는 문학이 바로 손창섭의 단편소설들이다. 이는 손창섭이라는 사람이 삶을 살아온 그의 인생이 어느 정도 반영된 결과물이기도 하다. 그는 한창 작가로 활동할 때 일본으로 건너갔고, 자궁암을 앓았던 일본인 아내와의 사이에서 아이를 갖지 못해 양녀 한명만을 두고 있다.
가치의 영도(零度)란 모든 것이 '0'으로 돌아간 '제로지대' 내지는 '제로 시점'을 뜻한다. 태평양 전쟁에서 패배한 1945년을 일본현대사에서 '0년'이라 부른다. 제로부터 다시 시작한다는 의미다. 해방후 한국도 1950년 한국전쟁을 겪기 때문에 휴전된 이후에 들어서야 제로부터 시작한다.
손창섭의 소설을 비롯해 1950 ~ 1960년대 활동한 한국 작가들은 대부분 러시아 문학의 자장 아래 있었다는 공통점이 있었다. 도스또예프스키와 체호프 등의 문학적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한다.
사실 손창섭의 <비오는 날>은 처음으로 알게 됐다. 손창섭 하면 <잉여인간>이 교과서에도 실려있었고, 전후 한국사회의 단면을 잘 보여주는 소설이라고 배운 기억이 났다. 저자의 손창섭에 대한 개인적인 가족사와 이를 소설에 반영한 것, 또 손창섭이 자신의 재능을 스스로 꺾은 채 절필하고 일본으로 간 것에 아쉬움을 느끼고 있다.
2장은 최인훈 작가의 <광장>이다. 최인훈의 <광장>은 워낙 유명한 소설이고, 분단 국가인 한국에서만 나올 수 있는 희대의 수작으로 평가하고 있다.
1936년생인 최인훈은 작가 중 한글로 초등학교를 다닌 거의 첫 세대에 속한다. 물론 한국어와 일본어를 동시에 배우기는 했다. 이는 이전의 작가들과 구별할 수 있는 점이다. 최인훈은 서울대 법학과를 4학년 1학기까지 다니다가 과감히 중퇴한다. 친구들을 따라 간 대학으로 적성에 맞지 않았기에 대학에서 배운 바도 별로 없다고 스스로 밝히고 있다.
2018년 타계할 때까지 여러 작품과 글을 쓴다. 최인훈 전집을 발간할 때 그 당시의 한자어투를 지금의 우리말로 변환한 작업을 했는데 로쟈님은 조금 부정적인 견해를 보이고 있다.
<광장>은 유달리 개작이 많이 이뤄진 작품으로 어떤 것이 정본인지 의문이 있을 정도다. 최종 판본은 '최인훈 전집'에 있는 것을 마지막으로 봐야 할 것이다.

다음으로 한국의 발자크가 되고자 했던 이병주의 이야기다. <관부연락선>으로 유명한데, 이병주 님 하면 지리산, 산하, 에로스 문화탐사, 동서양 고전 탐사 같은 책으로 익히 알고 있고, 우리집에도 책이 있다. 또한 소설 정도전, 정몽주 같은 인물 소설 특히 그는 소설도 소설이지만 수필로도 유명했다.
다음은 김승옥이다. 한국 문학에서 김승옥의 <무진 기행>은 차지하는 위치가 상당하다. 문학적으로 완성된 수작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김승옥은 무진기행의 메시지에 대해서 이렇게 밝힌 바 있다. “서울에서의 경쟁적 삶을 구가하기보다는 한 번쯤 무진과 서로 왕복하면서 좀 더 객관적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세상을 경험하는 자아를 찾아야 한다는 점이에요.” 그런데 작품을 보면 그렇게 쓰지 않았다. 무진에서 작별을 고한 것이 마지막인데 무엇을 더 왕복한다는 것인가. 마지막으로 한 번 무진을 긍정하고, 편지를 썼지만 찢어버리고, 이제 서울로 올라가면 전무가 되어 있을 것이다. 그리고 무진에 다시 오지도 않을 것이다. 그래서 ‘무진귀향’이 아니고 ‘무진기행’이다. 고향으로 다시 갈 수도 없고 더 이상 고향이라는 공간도 없다. 작가 김승옥은 다시 올 일이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주인공 윤희중은 다시 올 일이 없다. 무진에 있던 모든 것을 부정하고 떠났기 때문이다. ---p.148
무진 기행은 영화로도 세 번 만들어졌고, KBS TV문학관으로도 만들어졌다.
김승옥은 <서울, 1964년 겨울>로 1965년 동인문학상을 받는다. 웃긴 것은 이 작품 역시 자신이 그리 잘 썼다고 생각하지 않았는데 상을 받아서 놀랐다고 한다.
김승옥은 한국 문학에서 수재적인 인물로 이름을 날리고 있다. 나 역시 무진 기행을 읽어봤지만, 솔직히 나는 이렇게 로쟈님같이 작품을 평가할 자신이 없다.
다음은 황석영 작가다. 삼포가는 길은 교과서에서 일부를 읽고, 나중에 황석영 전집으로 전체를 다시 읽었다.
솔직히 그렇게 큰 재미가 있는 것은 아니었고(황석영의 장길산, 강남몽, 모랫말 아이들은 정말 재미있고 뭔가 느낄점도 있었는데) 삼포가는 길은 그저 교과서에서 한국 현대사에서 급격한 산업화, 도시화 되는 헛헛하고 비정함을 보여준다는 그 문학사적 의미만 생각난다. 아, 나는 전문가들과는 다른가보다.
솔직히 장길산은 내가 꼽는 작품중에서도 최고다. 12권에 달하는 긴 스토리와 민중을 작품에 녹여 넣은 그 정신은 그야말로 최고의 작품이다.
사실 황석영 선생은 일생을 통해 실천을 보여준 분이다.
독재에 저항하고 민족주의자로 북한도 다녀오고 보안법 위반으로 복역하고, 그 경험으로 자서전 수인을 펴내기도 했다. 지금도 '황구라'로 썰이 장난아닌 재밌는 분이다.
그런 황석영씨가 작품적으로나, 그 위상으로나 그가 살아온 인생으로나 한국 현대문학에 주는 의미는 당연히 상당하다 할 수 있다.
하지만 로쟈님은 황석영이 한국의 막심 고리끼로 갈 수 있었는데 그 스스로 후퇴했다고 하는데, 나는 그 부분은 동의 못하겠다. 황석영은 작품활동으로나, 여러가지 활동으로나 한국문학사에 큰 부분을 차지하는 것이 분명하고, 굳이 막심 고리끼가 아니어도 되기 때문이다. 황석영은 황석영 그 자체로 의미가 있다.
다음으로 이청준의 <당신들의 천국> 과 조세희의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과 같은 우리 문학사에 커다란 족적을 남긴 작품을 소개한다.
난쏘공을 보면서 대학시절 사회의식을 가졌던 것이 떠오른다.
이 작품만큼 실감 나게 사회적 현실을 다룬 소설이 없었다고 한다. 사실 이 시기 빈빈민층이나 노동자의 삶을 다룬 소설을 더 많이 읽어보지는 못해서 모르겠지만, 1978년 출간된 이후 수년간 베스트셀러였던 이 작품은 독자들이 보고 싶어 하던 현실이 무엇이었는지를 드러냈다. 이 책은 2000년대에도 꾸준히 팔리는 스테디셀러다. 우리집 서가에도 꽂혀 있다.
도시빈민들의 삶뿐만 아니라 중간층과 상층부 계급의 모습까지 그려내며 피부에 와 닿는 사회 묘사를 해냈다. 많은 사람들이 오랫동안 기다려온 형태의 작품이기에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이 신드롬을 일으킬 수 있었다.
다음으로는 한국 문학에서 가장 글을 유려하게 쓰는 것으로 유명한 이문열이다.
그 후 그의 정치적 발언 등으로 외면 받고 있지만 그의 문장력은 그야말로 최고다. 솔직히 나는 황석영이라는 사람을 이념적으로나, 사람 자체로 좋아하지만 문장력만큼은 이문열이 더욱 우리말의 아름다움을 잘 표현한 최고 수준의 문체를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한다. 두 분 다 삼국지를 펴냈는데 이문열은 자신의 견해를 집어넣은 평역 삼국지였고(무려 2천만부가 팔린 한국 최고 베스트셀러다, 최근 새로운 판본이 나왔다는데 다시 읽어보고 싶다), 황석영은 원전 번역본인데 그 유려함은 이문열이 한 수 위라고 할 수 있다. 조조를 좋아하는 이문열 특유의 정치적 색깔이 드러나기는 하지만 말이다.
이문열의 <젊은 날의 초상>은 당대 최고의 베스트셀러로 사회상을 드러낸 교양 소설이었고, 그의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은 지금의 이문열과는 다른 사람이 썼다고 생각할만큼 엄석대와 그에 저항하는 아이들을 다룬 영화로도 히트를 기록한 수작이었다. 작가는 이문열이 이후 삼국지, 수호지 평역에 매달린 것이 한국 문학으로나 자신의 작가 커리어나 마이너스적인 일이라고 이야기한다.
하지만 이문열에게 안정된 작가의 삶, 더욱 큰 명성을 보여 준 것이 이 <삼국지>였음은 부정할 수 없겠다.
1980년대의 이인성과 1990년대 이승우가 그 뒤에 나언다. 이인성 작가는 솔직히 잘 모르는 작가였다. 카프카의 '실패의 시학'을 본받았다고 하는데 추후 한 번 읽어봐야 할 듯하다.
이승우 작가는 지금도 활발히 창작 활동을 하고 있는 작가로 제 1회 대산문학상을 수상한 다섯 편의 중편소설을 연작 형태로 구성한 <생의 이면>은 소설가로서 화자인 '나'가 다른 한 소설가를 추적하여 그 삶을 재구성하는 평전체란 특이한 형식의 자전적 요소가 강한 작품이다. '그를 이해하기 위하여', '지상의 양식', '낯익은 결말', '연보를 완성하기 위하여1, 2' 등 5편의 연작형식으로 되어 있다.
작가는 인간의 인격 이면에 숨어 있는 근원적인 실체가 인간을 성장케 한다는 믿음으로 이 책을 썼고, 신학대를 졸업한 그 답게 인간의 운명적인 사랑과 신에게로 나아감으로 콤플렉스를 치유, 승화시키는 과정을 그려내고 있다.
작가는 이상문학상, 대산문학상, 동서문학상, 이효석문학상, 황순원 문학상 등을 수상하며 문학적인 성취를 이뤄내고 있다.
『로쟈의 한국 현대문학 수업』은 단순히 한국문학의 역사를 조망하는 것을 넘어 각 작품을 다른 분야의 텍스트와 함께 읽어가며 한국 현대문학과 작가들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제시하고 있다.
한국문학이 지금 위기를 보이고 있다고 하는데, 이 책을 계기로 한국 현대문학의 나아갈 길, 그리고 우리문학의 한계와 성취를 살펴보면서 더욱 좋은 작가들이 나오고, 더욱 좋은 작품으로 우리 사회에 울림과 감동을 줄 수 있는 소설이 많아지길 기대한다.
문학수업이라고 하면 조금 지루할 수도 있는데 매우 빠른 시간안에 재밌게 읽은 책이었다. 로쟈님의 내공에 감탄한다.
문학을 좋아하고, 뻔한 문학평론집에 흥미를 잃은 분이라면 이 책으로 한국 현대문학을 재조명 해보라고 권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