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작은 가게 이야기 -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곳
정나영 지음 / 미래의창 / 2019년 9월
평점 :
절판


생각해보니 예전에는 있었던 골목에 있던 "엄마가 돈 나중에 준다고 치토스 이거 먹으라고 했어요." 했던 작은 슈퍼마켓, 정말 맛있었던 돈이 없는 것을 잘 알던 사장님이 덤으로 생선까스 반개를 더 주셨던 옛날 돈까스집, 엄마가 집에 안 계시면 한 번 쯤 찾아가 봄직한 동네 아줌마들의 아지트 미용실까지...

 

이런 작은 가게와 그 속의 우리 이야기가 사라졌다. 장은 대형마트에서, 밥과 커피도 프랜차이즈 전문점에서 익숙한 서비스와 적당한 깔끔함, 표준화된 맛에 길들여져 살아가고 있다.

저자는 오래된 작은 가게가 살아남기 위해서는 결국 사람과 관계라고 했다.

시간이 지나도 언제나 그 자리에서 나를 기다려주는 친구같은 존재, 자주 오는 손님의 주문 메뉴 정도는 알고 있는 커피숍, 속이 아픈 나를 위해 국물을 더 주시는 베트남 쌀국수 집까지...

 

우리는 단골가게 하나씩 가지고 있는가? 되물어보게 만드는 책이었다. 아니 단골가게는 고사하고 마음을 터놓고 이야기 할 수 있는 진정한 친구는 몇 명인가, 사람과 사람사이의 진실된 관계 등에 대해서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게 만드는 저자의 따뜻한 이야기가 담긴 에세이 형식의 경영, 마케팅 책이었다. 사실 이 책의 종류는 에세이라고 보는 것이 더 맞는 것 같다.

 

요즘 속상한 이야기, 가게 주인과 이런저런 살아가는 이야기, 어디가 아파서 힘들었다는 하소연 등을 주고 받은 경험이 이제는 정말 사라진 것 같다.

속이 아픈 손님에게 뜨끈한 국물을 별도로 포장해서 더 싸주는 마치 친정엄마 같은 베트남 쌀국수집 주인 할머니, 베스트셀러 동화작가를 초청해 동네 어린이들을 불러 모으는 지역의 작은 서점, 크리스마스에는 손글씨 카드를 건네고 포인트 대신 정감 있는 나무 쿠폰을 주는 카페, 간판도 없이 주택가 골목에 위치했는데도 사는 사람이 줄을 서는 케이크 가게, 자발적으로 페이스북 친구를 맺고 싶은 동네 빵집까지.

이 책은 공간과 사람, 관계를 통해 작은 가게가 Long-run 할 수 있는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리고 그 속에서 우리에게 진심이 담긴 이야기를 들려준다.

 

저자는 국내 의류업체에서 일을 하다가 미국의 조지아 주립대학에서 유통 및 상품기획 박사학위를 받았다. 이 과정에서 커피를 너무 많이 마시게 돼 저자는 하루에 한 잔 따뜻한 카푸치노만 허락받는 상황까지 이르게 된다.

스타벅스는 어느 정도 친절한 서비스, 적당한 거리감 등을 주는 그런 곳이지만 사람 냄새가 나지 않는 저자가 이야기하는 제 3의 장소로서의 느낌을 주지 않는 곳이었다.

 

제 3의 장소는  사회학자 레이 올든버그가 이야기한 개념이다.

 

의 저서 <아주 좋은 공간>에서 그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주목받기 시작했다. 그는 이를 "집을 떠난 집"으로 묘사한 것이 인상적이다. 편하게 사람들과 어울리고 대화를 나누며 편안하게 시간을 보내는 것이 제 3의 장소가 갖는 가장 주요한 기능이라 할 수 있다. 올든버그는 제 3의 장소가 갖는 주요 특징들을 8가지로 요약해 설명한 바 있다. 

커뮤니티 센터나 커피숍, 레스토랑, 쇼핑센터, 가게들, 시장, 극장, 학교, 교회 등이 제 3의 장소의 예로 언급된다. ---p.26 ~ 27

 

저자가 이야기한 투스토리 커피하우스나 칼디스 등의 커피숍은 스타벅스나 대형 자본의 커피숍의 서비스를 이겨낸 지역 브랜드였다. 노숙인이 들어와도 커피 한 잔 따뜻하게 내어줄 수 있는 그런 공간, 스타벅스에서 알바생이 그런 일을 할 수 있을까? 없다.

이것이 바로 칼디스가 지역 공동체의 명실상부한 제 3의 장소라는 생각을 더 확고히 들게 만들어 주는 것이다.

 

단골, 저자도 그렇고 나도 그렇지만 참 좋은 말이다. 하지만 우리에게 이제 이 단골의 정의는 많이 사라지거나 퇴색했다.

 

단골을 정의한다는 것은 바로 관계를 정의함을 의미한다. 가게와 손님 간에 오래도록 유지되는 관계가 바로 단골인 것이다. 오래도록 친근하고 다정한 우정이 지속되는 것은 작은 가게와의 관계에서만 가능한 일이 아닐까? 그것이 작은 가게의 가장 큰 매력일지도 모르겠다. 나는 단골 가게들이 있어 안식과 위로를 얻을 수 있었다. 그저 손님과 가게 주인의 관계가 아닌 친구같은 존재가 되기도 하는 것이다. 단골 손님, 그리고 그들과의 관계가 정의되었다면 그들에게 무엇을 제공하고 그들과 무엇을 나눌 것인지에 대한 전략 또한 정의될 것이다.  ---p.54

 

라는 저자의 말처럼 일정한 수의 단골을 확보할 수 있다는 것은 마케팅이나 경영학 분야에서도 매우 주요한 개념이라고 할 수 있다.

저자가 자주 간 제3의 장소 투스토리 커피 하우스는 저자에게 어느날 한글로 저자의 이름을 적고, 그 속에 따뜻한 커피 쿠폰과 함께 방문해줘서 고맙고, 저자를 위해 커피를 만드는 일이 즐겁다는 손편지가 담겨 있었다. 대형 프랜차이즈에서 이런 일을 할 수 있을까? 골목과 단골만이 줄 수 있는 큰 의미있는 행사라고 할 수 있겠다.

또한 책에서는 작은 동네 케이크 집도 나온다. 케이크는 맛도 좋고, 다정한 메시지들도 가득하며 심지어 가격도 비싸지 않은 케이크 집이다.

 

아무런 광고나 홍보 없이, 심지어 간판도 없이 1990년부터 28년 동안 케이크 가게를 운영하고 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광고도 하지 않고 간판을 달지도 않는 여전히 작은 케이크 집, 세실리아는 현재까지도 성업 중이다. 이제는 점차 유명해져서 잡지에도 소개될 뿐 아니라 2008년부터 3년 연속 에덴스의 가장 훌륭한 웨딩 케이크로 뽑혔다. 소비자 리뷰 사이트인 트립어드바이저에는 이 도시를 떠나서도 세실리아를 그리워하는 이들의 칭찬의 글이 줄을 잇는다. 주변 지인들을 통해 알음알음 찾아오는 손님들에게만 판매하고 있음에도 그들은 여전히 최고의 케이크 가게로 명성을 이어가고 있다. ---p.100 ~ 101

 

한동안 대기업 프랜차이즈 빵집이 도시를 점령하다시피 했는데, 외국 사람들이 보면 정말 신기해 할 파리빵집과 뚜레 같은 프랑스어인듯 한국어인듯 한 빵집만이 있어 한국 사람들은 빵마져 표준화된 빵을 먹는다고 했던 외국인 고객의 이야기가 떠오른다.

그러던 것이 요즘 들어서는 다시 동네 빵집, 특색있는 그 수제의 맛을 찾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하지만 그 단골의 개념이 예전 내가 어렸을 때의 동네 빵집과 같은지는 솔직히 의문이다.

 

저자가 자주 간 칼디스 커피숍의 나무 코인도 인상적이었다. 물론 앱이 일상화된 한국에서 이제는 오히려 더욱 독특한 마케팅일 수도 있는데 말이다.

 

아마도 미국에서 이런 문화에 익숙해져 있다가 다시 한국으로 몇 년만에 돌아온 저자는 온통 프랜차이즈 대형화된 커피숍, 마트, 쌀국수집에서 아마도 적응하기가 힘들었을 것이다.

 

크지 않은 미용실과 동네 마트, 빵집 어디서든 ‘포인트’와 ‘마일리지’를 쌓으라고 권유했다. 자주 오는 손님이라면 다 알 수 있는 동네 가게인데도 그들은 손님의 얼굴을 익히려고 하지 않는다. 다정한 말 한 마디와 관심 대신 포인트를 부지런히 쌓아줄 뿐이다는 저자의 말이 머리를 때린다.

물론 오늘날 한국사회는 예전의 정(情)의 사회가 아니고, 주인이 미주알고주알 참견하는 듯한 조언을 싫어하는 세대도 분명 있다.

 

하지만 한국의 많은 창업 가게의 거의 90%가 폐업을 하는 이 시점에서 작은 가게가 살아남고, Long-run할 수 있는 길을 생각해 보는 것은 우리사회의 건전성 유지 측면에서도 분명 필요하다.

 

저자는 그 해답을 '관계'에서 찾고 있다.

 

작은 가게는 한 번씩 생각해 볼 만한 책이다.

 

이 책을 통해 어차피 대기업에 마케팅으로 프로모션이나 전략으로 이기기 쉽지 않은 우리 많은 대다수의 일반 작은 가게 Owner분들이 한 번 씩 생각해 볼만한 읽어볼만한 책이다.

대기업에서 마케팅을 하고 있는 나에게도 분명 의미하는 바가 큰 책이었다.

80년대 생으로 아날로그 감성이 남아있는 나에게는 다른 의미로 뭔가 마음 따뜻한 이야기를 들려준 것 같아서 그 점도 좋았다.

 

따뜻한 그림이 나오는 것도 좋았다.

 

 

창업을 생각하는 사람, 학생, 대기업 마케터, 그냥 따뜻한 책을 읽고 싶은 모든 독자에게 어울리는 책이다.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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