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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에 심는 꽃
황선미 지음, 이보름 그림 / 시공사 / 2019년 10월
평점 :
절판
이 책은 <마당을 나온 암탉>의 밀리언셀러를 발표하며 한국동화의 새로운 전기를 마련한
황선미 작가의 성장 소설이다. 이 책은 24년전 책 좋아하고 글 좀 쓸 줄 안다는 자존심 하나로 대학생활을 하던 그녀가 한 편의 이야기를
완성했고 놀라울만큼 사랑을 받은 작품이 됐다. 하지만 프로필을 쓸 때 맨 앞자리를 차지했던 24년전 데뷔작은 시간이 지나면서 묻혔다. 그러던
어느 날 누군가 그 책의 안부를 물었고, 작가의 길을 열어 준 그 작품이 한 번도 책으로 나온적이 없다는 것을 알고 이 책을 내게 된다.
작가 자신도 책으로 펴낼 생각을 못했고, 출판사들
역시 으레 책으로 나왔으리라는 생각에 출판 제안을 하지 않았다. 그렇게 묻혀 있던 작품이 25년 만에 빛을 보게 된
것이다.
나는 마흔 즈음에...가 어울리는 나이다.
사실 회사생활 11년차로 하루하루 쳇바퀴 굴러가듯 한 삶을 살아가고 있다.
물론 극심한 취업난에 높은 물가로 연애하기도 두럽고, 하루가 다르게 올라가는 집값으로 사회에 발을
내딛을 엄두조차 못내는 20대, 학원뻉뺑이, 또는 무한 루프에 갇힌 10대가 볼 때는 배부른 투정일 수도 있지만 말이다.
특히 최근에 몸이 좀 안 좋으면서 회사 생활도 너무 힘들고 하던 찰나에 이 책을 만났다. 우선 책
내용이 아름다웠다. 아날로그의 감성이 살아있는 80년대 초반생에게 이 책은 아름다운 동화 한
편으로 다가왔다.
사실 매우 짧은 소설? 동화집이라 리뷰를 쓰기가 두렵다.
자칫하면 엄청난 스포일러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은 도시로 많은 사람이 떠나는 시골마을에 사는
수현이의 이야기다. 수현이는 꽃밭에 있는 아름다운 '인동집'의 꽃을 돌보는 것을 좋아한다.

인동집 딸이 가꾸던 꽃밭을 해롭게 단장한 삼촌은 수현이와 친구 미정이에게 꽃밭을 맡겼지만 미정이도
떠나고 혼자남았다.
어느날 인동집으로 도시에 살던 한 가족이 이사를 온다. 뽀얀 얼굴의 젊은 부부와 수현이 또래의
남자아이다. 도시 소년인 민우가 싫지는 않았지만 인동집을 차지해 버린 것이 미워서 퉁명스럽게 대하고 민우 역시 까칠하게 군다.
선생님의 심부름으로 민우네를 찾아갔던 수현이는 마루에 놓인 민우의 일기를 훔쳐보고 만다. 민우는
가슴이 아프다. 수술을 받아야 한다. 수현은 민우의 일기 때문인지, 행동 떄문인지 눈물을 흘린다.
수현이는 한동안 인동집에 가지 않았습니다. 할머니의
심부름과 정현이 돌보는 일 때문에 학교에서 곧장 돌아와야만 합니다. 할머니는 이제 힘든 일을 할 수 없습니다.
어머니와 아버지 그리고 민우의 어머니 아버지가 매일 비닐 하우스에서 일합니다. 요즘에는 김장배추를 모종하느라 바쁩니다. 화장을 한 듯
뽀얗던 민우의 어머니도 얼굴이 검게 그을렸습니다. ---p.79
우리네 어느 곳에서 있음직한 편안한 이야기로 책을 풀어나가는 것이 장점이다.
중간중간 이보름 작가가 그린 그림도 책의 편안함을 키워준다.
수현이는 방안에서 어른들의 이야기를
엿들었습니다.
"한 번 수술하는데 몇 백만원씩
든다네요. 병원비 내느라고 집도 팔았대요. 어린것이 얼마나 힘들겠어요.
"어린 것만 힘든가 어디. 그것을
보는 부모의 마음은 어떻고?"
어머니와 할머니는 더 이상 말하지
않았습니다.
슬프고 우울한
밤이었습니다. 습한 바람이 방안에 가득 고이는 느낌이었습니다. ---p.87
민우는 떠나고 수현에게 편지를 남긴다.
(스포일러가 될까봐 편지는 책을 사서 읽어보시길
바란다)
저자는 다소 촌스럽다고 생각하면서도 이 제목을 바꾸려 하지 않았다.
초고를 완성하고 공모전에 보내고 프로필에 데뷔작 제목으로 적을 때도 시골집을 벗어난 적이 없는 여자애 같은 제목이라는 생각이 들곤 했다. 그래도
고치려 하지 않았다. 이것 말고는 달리 어울리는 제목이 없는 까닭이었다. '지나간 것은 지나간 대로 그런 의미가
있죠'에 다름 아니다.
이 작품은 스물하고도 네 해 전, 나의 시작 어떤 지점이다. 그런데 꽤
오래 걸어 온 나의 지금에 이것이 어떤 의미가 되려고 한다. 등을 수부려 손 끝으로 발을 만지는 기분이다. 참 고마운 일이다.
---p7
저자의 시작을 알리는 고마운 작품인
것이다.
이야기는 잔잔하면서도 슬프고 아름답다.
아이가 있는 집에서 읽어보면 좋을 것 같다.
좋은 기회를 주신 시공사 (지식너머)에 감사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