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일순 평전 - 무위당의 아름다운 삶
김삼웅 지음, 무위당사람들 감수 / 두레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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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시절 무위당의 사상을 좋아해서 노자의 도덕경도 찾아보고, 아름다운 가게에서 자원봉사도 하면서 아껴쓰고, 함께쓰는 활동을 했다.

법학과 학생이면서도 공부를 조금 소홀히 하고 그런 일을 할 정도로 좋아했다.

이 책의 저자인 김삼웅 前독립기념관장님은 한국 평전 문화를 새로 쓰고 계신 분이다. 일전에 신문기사로 본적이 있는데, 한국만이 평전문화에 인색하고 쓰기를 꺼려한다는 것이었다. 한국은 평전을 잘못 썼을 때 오는 그 엄청난 부담과 대립, 후손들, 얽혀있는 다수의 인물들 등으로 인해 진보고, 보수를 떠나서 현대의 인물에 대한 평전을 작성하기를 꺼려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김 관장님은 이에 개의치 않고, 많은 자료와 풍부한 경험에 입각해 한국의 현대를 수놓은 수많은 인물들을 복원해 내고 있다. 나는 이 작업을 열렬히 응원한다.

우리의 인물을 많이 기록해 놓을 필요가 있다. 역사란 이런 기록물로 인해 사관이 이해하고, 해석해내는 작업을 하는데 그런 사료나 당대의 평가가 없다면 역사를 소설로 써야 하기 때문이다.

조선사는 학문이 되고, 드라마도 팩션 중심으로 할 수 있지만, 고구려사는 대부분 픽션 또는 거의 상상속의 이야기를 써내려 가는 것 역시 기록의 부재이기 때문이다.

  

『장일순 평전』에서는 우리 현대사의 정치적 변곡점들과 인물을 적절히 배치하면서, 원주 지역 인사들과 무위당의 역할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 사회적 배경을 이해하고 함께 선생님의 삶의 궤적을 따라다가보면 선생님의 내면에서 움직여갔을 생각의 변화도 조금씩 더 분명하게 알 수 있게 됩니다. 그간에 축적된 자료를 적절히 활용해서 생명사상의 얼개도 짐작하게 하셨습니다.

모두 쉬운 일이 아닙니다. 무엇보다 선생님의 삶을 객관해서 볼 수 있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p.10 판화가 이철수님의 이 책에 대한 평가

 

사실 위의 말로 이 평전의 가치를 짐작할 수 있다.

 

생전에 무위당을 만나지 못한 죄책감으로 이 평전은 시작한다.

무위당 장일순은 엄혹한 시대를 정말하면서도 '길이 없는 길'을 찾아 나선 후학들에게 '길'을 제시하고, 양심수들을 위로하고, 청년들에게 미래의 눈을 틔운 구도자 또는 경가의 모습으로 존재했다. 그러나 그는 나서기를 꺼리고, 지도자인 체하지 않았다.

한국사회의 모순이 겹겹이 쌓인 채 독재자와 추종자들의 감언이설이 민중의 이성을 가리던 시절, 장일순은 어디에도(무엇에도) 종속되지 않고 자유로운 영혼으로서 시대를 내다보는 심원하고 예리한 통찰력으로 민중(민족)의 앞길을 제시했다. 그래서 누군가는 장일순을 20세기를 산 '21세기형 인물'이라 평한다. ---P.23

 

아니 이런 분이 있었기에 21세기 오늘의 자유와 한국사회의 민주화, 발전이 올 수 있었다. 선생님은 한 시대를 변혁한 큰 업적과 공로에도 불구하고 평생을 한 알의 작은 좁쌀(一粟子)를 자처하며 살아간 그야말로 참거인, 큰 스승이었다.

많은 유묵과 글씨(휘호)는 남겼지만 그에 대한 글은 글 한 편도, 책 한권도 남기지 않았다고 한다. 그야말로 무위자연, 노장사상을 실천하다 돌아간 인물이다.

 

장일순의 길은 20세기 후반 한국 지식인으로서 걷기 쉬운 노선이 아니었다.

그의 삶은 아래와 같이 몇 단계로 구분해 볼 수 있다.

1) 미군 대령의 국립 서울대학 총장 부임에 반대 투쟁한 학창시절

2) 혁신정당 후보로 총선에 나왔다가 실패한 시절

3) 중립화 평화통일론을 주창했다가 5.16 쿠데타 세력에 의해 투옥된 30대 시절

4) 농촌과 광산촌을 살리고자 신용협동조합운동을 시작한 중년 시절

5) 지학순 주교 등과 박정희 독재정권에 맞서 투쟁한 시기

6) 민청학련 사건 관련자와 민주인사들을 보호한 시기

7) 농민·노동운동을 생명운동으로 승화시킨 시기

8) 민주세력을 통일운동으로 결집한 민족통일국민연합을 결성한 시기

9) 도농직거래 조직인 '한살림'을 창립한 시기

10) 본격적인 생명사상운동을 벌인 시기

 

미국에 월든의 '소로'가 있다면 한국에는 원주의 장일순이 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장일순은 그러면서도 현실참여적인 농민,노동운동을 생명운동으로 승화시켰다.

 

무위당은 나라를 빼앗긴지 18년(십팔년)되던 슬픈 1928년 10월 16일 강원도 원주시 평원동에서 아버지 장복흥(張福興)과 어머니 김복희(金福姬) 사이의 6남매 중 차남으로 태어났다. 무위당의 할아버지 여운(旅雲) 장경호(張慶浩)는 포목상을 하면서 집안의 가세를 크게 일으켰다. 무위당의 첫번째 스승이라고도 할 수 있는 할아버지는 서울을 오가면서 문물을 익히고, 독립운동가들과도 교우했다. 그런 할아버지 밑에서 한학을 익히는 한편 생명공경의 자세를 배우고, 할아버지와 절친하던 독립지사 차강 박기정선생에서 서화를 익혀 나중에 일가를 이뤘다.

(이 책에는 선생의 많은 글씨, 그림 작품이 나온다)

1940년 원주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서울 배재중고등학교를 다녔다. 똑똑한 첫째 형 철순이 죽자 그 집안의 기둥이 되고 그는 할아버지의 뜻대로 경성공업전문학교에 입학한다. 그가 문과를 택하지 않고 공대를 간 것은 징집을 피하기 위해서였다.

 

후에 1946년 8월 23일 군정법령 제 102호를 통해 경성제국대학, 경성의전, 경성치전, 경성법전, 경성고공, 경성고상, 경성고농을 통합하여 국립 서울대학교를 신설하고 총장에 미군 대령을 임명한다는 국립대 실시령을 내렸다.

 

무위당은 이에 반대한 국대안 파동을 하다가 제적되었다. 그 후 원주에 정착 대성학원을 세우고 활동한다.

한국전쟁을 통해 동족상잔의 비극을 접한다. 그는 중립 통일을 내세웠지만 당시에는 주목받지 못했다. 원주에서 교육사업을 하다가 민의원(지금의 국회의원)선거에 나서 낙선했다. 그는 당시 귀족 자식들만 다닌다는 덕수 초등학교를 나와 경기여고, 서울대 사범대 역사교육과를 졸업한 이인숙과 결혼한다. 이인숙의 집안도 좋은 집안이고 엘리트 코스만 밟았으나 후에 박정희 군부 쿠데타에 의해 시국사범으로 남편이 잡혀가는 역경을 당한다. 서대문 형무소에서 부인은 옥바라지를 한다.

 

지역협동운동을 하면서

장일순은 우주 천지만물이 모두 한 생명의 끈으로 이어져 있기 때문에 모든 것이 협동적으로 존재할 때만 건강하게 살아갈 수 있다고 확신했다. "우주의 모든 생명의 존재 법칙인 협동과 공생을 민중이 본받고 실천하여, 자본가에 대한 경제적 약자의 대항 수간이라는 의미를 넘어, 진정한 삶을 누릴 수 있기를 바랐다." ---p.150 주장했다.

 

지역농민, 탄광촌의 광부들을 계몽하는데 힘썼다. 박정희 시대에 자칫하면 용공분자나 사상범으로 잡혀갈 위기에서도 신념을 지켰다.

 

장일순 선생은 동학의 해월 최시형 선생의 생명사상을 공부하여 자신의 사상과 결합해 우리민족의 사상 체계에 다양함을 부여했다.

 

<녹색평론>의 김종철 교수는 장일순이 한살림 공동체를 실천하고 있는 생명운동의 근처에는 만물에 대한 공경을 바탕으로 생명계의 모든 이웃들과의 조화로운 삶을 강조한 해월 최시형의 사상이 중심에 있음을 알게 되었다고 말했다.

"무위당 선생의 가장 큰 업적은 아무도 주목하지 않고 잊혀져 가는 해월 최시형 선생을 세상 밖으로 끌어내어 그분의 사상을 조명하고 새롭게 정립하였으며, 한살림운동을 통해 생활 속에서 실천했다는 것이다." ---p.186 ~ 187

 

 

장일순은 늘 역설했다. 많이 늦기는 했으나 지금이라도 새로운 길을 찾아야 한다고, 길은 멀리 있지 않다고, 동학의 시천주(하늘님을 모신다)와 사인여천(事人如天, 사람을 하늘처럼 섬긴다)의 사상과 경천,경인,경물의 정신을 찾는다면 인간과 하늘, 사람과 자연이 동귀일체의 사회를 만들 수 있다고, 인류·지구촌을 구원할 수 있다고.

 

하지만 사회는 그를 생명운동과 무위자연, 농민운동에 집중 할 수 있게 놔두지 않았다. 박정희 정권의 유신 개헌(개헌이 아닌 악헌이지만)이 일어나고, 지학순 주교 등과 함께 박정희 정권의 부정부패를 폭로하는 가두시위에 참여하며 사회운동도 하게 된다. 이후 다시 고향에 돌아와 농민운동을 하였으나, 김지하 등과 함께 기존의 농민운동이 실패했다고 판단하여 도시와 농촌이 직거래를 하고 자연요법으로 농사를 짓는 한살림운동을 전개했다.

 

그를 한 마디로 평가해본 그의 글과 그림에 있다.

 

水流元在海(수류원재해) 물은 흘러가도 바다에 있고

月落不離天(월락불리천) 달은 져도 하늘을 벗어나지 않는다.

 

장일순의 심경을 보여주는 생과 사를 초탈한 글귀들이다.

 

 

그는 세상의 척도에 자신을 맞추기보다 정의의 가치와 자연의 이치에 자신을 맞춰가며 살았다. 한번도 사적인 이익을 위해 손을 대거나 자리를 탐하여 조직에 참여한 적이 없었다.

 

무위당은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나 서울대를 두번이나 다닌 한마디로 평온하고, 세태에 영합해서 잘 살수도 있었지만, 과감히 그를 떨치고 자신의 정의를 실천하며 살았다. 이것이 바로 한국의 체 게바라 같은 삶이다.

과감히 자신의 기득권을 버릴 수 있는 그 열정을 존경한다.

 

무위당 장일순의 삶과 사회의 예와 도덕, '같이'의 정신이 사라진 2019년 오늘 그를 추억해본다.

 

* 이 리뷰는 두레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꼼꼼이 읽고 쓴 글입니다.

 

 

水流元在海(수류원재해) 물은 흘러가도 바다에 있고

月落不離天(월락불리천) 달은 져도 하늘을 벗어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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