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중국편 1 : 돈황과 하서주랑 - 명사산 명불허전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유홍준 지음 / 창비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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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유홍준 선생님 광팬이다. 인문,답사기에 있어서는 소위 말하는 유홍준빠다.

대학교 1학년때였던가? 당시 영남대 교수님이던 교수님 강의를 한 번 들어보겠다고(물론 대구에서 학교를 다니던 친구들도 만나볼 겸) 서울에서 대구까지 가서 청강을 했었다.

이후에는 명지대 교수로 옮기시고, 간혹 서울에서 강연을 할 때마다 책을 사서 사인을 받고는 했다.

 

내가 나의 문화 유산답사기를 처음 접한 것은 당시 대학생이던 형이 방학 때 집에 잠깐 내려왔을 때 책가방 속에서 발견하고 읽게 된 것이 처음 기억이다. 당시 나는 초등학교 6학년이거나 중학생 때였던 것 같다.

 

어릴 때부터 역사를 좋아했지만 그때부터 빠져들어서 집에 나의문화유산답사기 전권을 다 가지고 있다. 한국편 1권 ~ 10권 서울편까지. 일본편 1 ~ 4권까지.

그러면서 일본편에 이어 분명 중국편이 나오겠구나. 교수님이 공직에 은퇴하시고, 교편을 놓게 된다면 꼭 중국 이야기를 쓸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이 책을 창비로부터 가제본 형태로 받아서 지난 한 주 정말 밤을 새서 읽었던 것 같다. 사실 리뷰 일정에 쫓겨 급하게 읽은 면이 없지 않아 나중에 책으로 나오면 다시 사서 찬찬히 읽어볼 생각이다.

 

중국편에 있어서는 우리가 흔히 기대했던 베이징이나, 시안 등이 아닌 돈황의 의미에 대해서 많이 설명한다. 돈황석굴...예전 역사시간에 얼핏 배운 기억이 나는 그 곳...

막고굴...1,000개의 동굴 같은데 석불이 있던 그곳...

그 돈황지역과 실크로드 답사가 이 책 1권의 3부에 나온다.

 

 

교수님이 밝힌 중국 8대 고도(북경, 서안, 낙양, 남경, 개봉, 안양, 항주, 정주)에 관한 이야기도 분명 나올 것 같기는 하지만 교수님이 중국편에서 밝힌 꼭 가보고 문화유산답사로 남기고 싶은 곳은 아래와 같다.

1) 유학의 고향 : 산동성 곡부의 공자묘와 태산

2) 강남의 원림 : 양주, 소주

3) 대동의 운강 석굴과 고대도시 평요

4) 주자의 무이구곡

5) 동정호와 소상팔경

6) 해남도와 소동파 유배지

7) 『삼국지』의 현장 : 무한, 융중, 이릉, 형주성, 백제성

8) 티베트 라싸의 포탈라궁

9) 하서회랑과 돈황 막고굴

10) 실크로드의 오아시스 도시들

11) 대만 고궁박물원

이렇게 11곳이다. 아 이름만 들어도 정말...역사와 인문학을 좋아하는 나는 당장 달려가고 싶다. 이 중에서 소주의 원림을 가봤고, 대만을 가서 고궁박물원 앞에까지는 갔다온 것 같다. (아직도 지난해 대만 여행에서 고궁박물원을 다녀오지 못한 것이 안타까움으로 남아있다) 이후 대만 여행을 한 번 더 가게되면 꼭 들러보겠다.

이 중에서 내가 나중에라도 가볼만한 곳은 산동성 곡부와 티베트 라싸, 삼국지의 현장 정도 살면서 가볼 것 같은 계획이 있다. 나머지는 사실 여러 지리적, 물리적 어려움으로...또 와이프가 그다지 중국여행을 좋아하지 않는 편이라 사실 기약하기 어려울 것 같다.

교수님의 책으로 다 만나보게 되길 바랄 뿐이다. 

 

우리는 중국과 최소한 2천년 넘게 국경을 맞대고 교류하였기 때문에 중국 답사는 우리 역사와 맞물려 있다. 특히 길림성, 요령성, 흑룡강성의 이른바 동북 3성은 그 옛날 우리 조상들이 누비던 우리의 영토였던 적이 있다.

특히 고조선, 부여, 고구려, 발해 역사는 여기서 발원했다.

 

장구한 세월을 두고 중국과 교류하면서 우리 선조들이 중국에 남긴 자취 또한 널리 퍼져있다. 한나라 때 흉노와 전쟁에서 앞장선 김일제 장군, 당나라 때 타클라마칸 사막을 넘어 명성을 떨친 고선지 장군, 낙양 북망산에 묻힌 의자왕과 왕자들, 양주 당성에서 벼슬을 한 최치원, 장보고 등등 수 많은 인물들이 중국에서 자신의 명성을 떨쳤다.

고려 이후에는 주기적인 중국과 사신 교류로 많은 역사적 일화를 남기고, 우리 사신들이 지나간, 돌아온 길을 따라가보는 답사도 재밌을 것 같다.

 

교수님도 로드 답사를 약속하시면서

1) 조선시대 연행 사신의 길, 2) 대한민국 임시정부 답사, 3) 국경선 답사를 꼭 기록으로 남기고 싶다고 하셨다. 

아! 나도 연행 사신의 길은 통일되면 꼭 한 번 해볼 것 같고, 샹하이 임시정부 청사는 가봤는데 후에 충칭이나 내륙까지도 가 볼 생각이다.

 

우리가 중국문화를 들여다볼 때 결국 중국의 문화권이었고, 우리는 그들의 아류 또는 변방 문화라고 생각하는 오류, 열등감을 버리라고 강조한다.

일례로 서양의 문화는 대부분이 그리스, 로마 문화의 시작에 원류를 기대고 있지만 여기서 파생한 프랑스, 독일 문화를 그들의 아류로 절대 생각하지 않는다.

마찬가지다. 중국이 우리나라 옆에서 황하문화권부터 시작해서 광범위하고, 또 장구한 역사속에 한자, 유교문화의 원류인 것은 사실이지만 그 속에서 꽃핀 우리나라와 일본의 문화가 절대 그들의 아류가 될 수 없다.

 

이를 교수님은 독일의 미술사가 빌헬름 보링거(1881 ~ 1965)가 제시한 문화권 이론으로 이햐하고 있다. 어느 시대나 한 문화권에는 중심부 문화가 있고 이를 따라가는 주변부 문화가 있지만 그것이 하나로 어울릴 때 그 문화권은 더욱 풍성한 모습을 갖추게 된다고 말이다.

중국문화와 우리문화는 결국 이러한 형태로 그 어떤 것도 허투로 흘려보낼 것이 아닌 크게 아시아의 찬란한 문화를 형성하는 것이다.

 

1권의 1부는 섬서성 너머 감숙성으로 시작한다.

오늘날 중국의 본격적인 시작이라고 할 수 있는 주나라, 진나라의 본거지를 지나는 것으로 시작한다.

누군가 말했다. 진나라가 중국 전역을 통일하지 않았다면 오늘날 중국은 다수의 민족이 여러개의 나라로 나뉘어져 마치 중앙아시아와 유사한 형태, 또는 구소련 해체처럼

동쪽과 중앙, 남쪽에 넓게 한족이 분포한 작은 중국과 그 외 지역의 다양한 민족으로 구성된 마치 러시아에서 해체한 카자흐스탄, 키르기스스탄 등 처럼 그런 다양한 나라가 있을 것이라고.

 

사로군조상/함양 아방궁/두목지의 <아방궁부>, 진령산맥과 관중평원/위하/왕유의 <위성곡>, 한무제의 무릉/제갈량의 오장원/보계시의 주원박물관으로 시작한다.

 

진나라의 수도 함양하면 뭐니뭐니해도 진시황의 아방궁이 떠오른다. 아방궁은 진시황이 짓고 있던 호화로운 황궁으로 미완성의 상태에서 불타버렸다.

궁궐이름도 아방궁이 아니었다. 사마천의 사기에 이러한 사실이 기록되어 있다.

"아방궁은 미완성이었다. 완성되면 좋은 이름을 택하여 명명하려고 했다. 단지 궁궐을 아방에 지었기 때문에 천하가 이를 아방궁이라 부른다."

아방궁은 원래 궁궐이었던 함양궁 근방에 죄수 70여만명을 나누어 아방궁과 여산의 무덤(진시황릉)을 조성하게 했다. 북산에서 석재를 캐내고 촉과 형 지역에서 목재들을 이곳으로 날랐다.

항우가 진의 함양을 점령하면서 불로 태워버렸다고 하는데 이를 아방궁이 아닌 함양궁이라고 하는 설도 있다고 하지만, 여튼 지금은 불이 나서 없어졌다.

이 시황의 아방궁 근처에 영화세트장을 조잡하게 지었다가 이를 없애고 6조 4천억원이나 들여 아방궁을 복원하려다가 시진핑 국가 주석의 지시로 중단되어 지금은 빈터로 남아있다고 한다.

 

함양은 이렇듯이 무려 2200년전의 사람인 진시황의 자취가 아직 남아있다. 

위하(흔히 삼국지나 초한지 등을 보면 위수를 건너는 장면이 많이 나오는데 바로 그 강이다) 한무제의 무릉 등이 차례로 나온다.

 

한가지 이해가 안 가는 것(?) 또는 웃긴 것은 왕이 되자마자, 자신의 묘부터 만든다는 것이다. 그런데 한 무제가 재위기간이 무려 54년이나 되면서 그의 무덤이 그토록 웅장하고 커졌다는 것이다.

이건 마치 내가 신입사원 처음에 가서 퇴직연금보험을 들었던 것과 비슷한 것인가?

 

1부 관중평원을 지나 2부는 하서회랑이다.

황하석림에 새긴 제불의 축제부터, 하서 사군과 흉노의 한혈마이야기가 나온다. 유홍준 교수님의 글은 그 지역의 지명과 지리, 그리고 인문과 역사가 어우려져 정말 읽는 맛을 느끼게 해준다.

만리장성의 서쪽 끝 가욕관 이야기까지 나오면 2부가 끝이 난다.

 

제 3부는 교수님이 머리말에 자세하게 써 놓은 바로 그 돈황이 나온다.

돈황은 실크로드로 가는 관문으로 당나라 때까지 서역과의 교역을 통해 번영을 누렸던 오아시스 도시였다.

당시 번영의 산물 가운데 하나가 세계 최대 석굴사원 막고굴이다. 16세기 해상교통이 발달하면서 실크로드가 문명의 교역 창구로서 역할이 약화되고, 돈황의 석굴사원도 점차 퇴색되었다.

막고굴은 돈황 시가지에서 남동쪽으로 25km 떨어진 명사산 기슭에 있다. 명사산 명불허전이라고 교수님이 말하는 그곳이다.

산 비탈 암벽에 벌집처럼 1,000여 개의 석굴이 뚫려 있는데, 이 때문에 '천불동'이라 불리기도 했다. 막고굴은 실크로드를 통해 전래된 불교가 돈황에서 꽃피운 결과물이다. 수많은 승려·화가·석공·도공들이 쌓아간 종교 예술의 극치를 보여준다.

 

유홍준 교수님의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가 새로 나와서 너무 반갑다. 사실 인문역사를 결합한 재밌는 책이 많이 없는데 유홍준 교수님이야말로 내가 블로그에 밝힌 역사와 여행을 결합한 취미를 즐기는데 가장 적합한 책이다.

 

교수님이 오래오래 건강하셔서 계속 좋은, 많은 글을 쓰셨으면 좋겠다.

나는 9년만에 와이프와 다시 간 제주도에서도 교수님의 손길이 닿은 제주도 추사 유배지를 가장 먼저 달려갔을만큼 교수님과 비슷한 취미와 역사를 즐긴다.

 

집에 완당평전 1~3권이 있음에도 추사 김정희가 새로 나오자 다시 샀다. 이 책이야말로 집에 있는 많은 책을 정리해도 끝까지 살아남을 책이라고 했는데,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시리즈 또한 내가 가장 아끼는 시리즈로 유시민, 유홍준 교수님의 책은 내 서가에 끝까지 남아있을 책일만큼 나에겐 보배같은 책이다. 

* 창비의 배려로 출간 전 편집본을 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하지만 저는 이 책을 다시 예약구매했습니다. 너무 좋은 책이라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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