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대를 위한 이븐 바투타 여행기
김승신 지음, 정수일 감수 / 두레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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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븐 바투타 여행기(Rihlatu Ibn Batutah)>는 모로코 인이던 이븐 바투타가 1325년부터 1354년까지 30여 년간 서남아시아, 유럽, 동아프리카, 중국 등 오늘날의 국경을 기준으로 44개국 약 12만 킬로미터를 여행한 기록을 적어놓은 것이다.

1325년은 고려 충숙왕 때로 그야말로 Long time ago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우리나라에는 <왕오천축국전>을 저술한 혜초는 그보다 더 오래전에 우리 땅에서 인도까지(당시로는 엄청난 거리의 여행이었을 것이다)가서 여행기를 남기기는 했지만, 이븐 바투타 여행기 또한 매우 오래 전의 아시아와 아프리카 등에 사는 사람, 문화를 기록한 의미있는 책이다. 


이븐 바투타는 1325년 메카 성지순례를 위해 길을 나선 뒤 곧바로 고국에 돌아가지 않고 아시아와 유럽 지역을 여행했다. 용기가 있다. 이렇게 훌쩍 떠나고 싶을 때가 많은 요즘이다. 30여 년간 긴 여행을 마치고 고향으로 돌아온 그가 모로코 술탄의 명령에 따라 여행기를 쓰기 시작해서 2년도 되지 않은 1355년 12월에 집필을 마쳐 완성한 것이 <이븐 바투타 여행기>이다.

 

하지만 오늘날 이븐 바투타가 직접 쓴 원본은 사라져 전해지지 않는다.

현재까지 전해지는 책은 ‘가급적 언어를 다듬고 윤색하여 그 뜻을 명확히 살리라’는 술탄의 명령을 받은 당대 시인이자 명문장가인 이븐 주자이 알 칼비가 이븐 바투타의 원문을 정리하여 엮은 것이다. 그래서 책의 원래 제목도 <여러 지방의 기이한 일과 여러 여행길의 다른 문화를 목격한 자의 보배로운 기록>으로 되어 있지만, 일반적으로 이 책을 <이븐 바투타 여행기>라 부른다.

 

이 책은 깐수 정수일 교수님의 이븐 바투타 여행기 완역본을 10대나 바쁜 현대인들이 쉽게 읽을 수 있도록 간추린 책이다. 

서평을 해야하는데 깐수 정수일 교수님의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 어쩌면 그의 인생이 이븐 바투타보다 더욱 파란만장하고, 그 역시 언제나 이방인이었기 때문이다.

정수일 교수님은 1934년 중국에서 태어났다. 북경대 아랍어과를 수석으로 졸업하고, 중국 국비 장학생 제 1호로 이집트 카이로대학 인문학붸 유학한 뒤 중국 외교부 및 중국의 모로코 대사관에서 근무한다. 정수일 교수님은 12개 국어를 하고, 아랍의 역사와 학문에 타의추종을 불허할 정도로 해박한 지식과 뛰어난 재능을 가지고 있었다.

저우언라이 중국 총리가 그를 중국사람으로 살아가길 원했다는 일화가 있을 정도다. 

하지만 그는 조국을 생각한 민족주의자였고, 일제시대에 태어났기 때문에 그는 조선인이라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정 교수님은 그의 원적이라고 할 수 있는 북한으로 들어갔고, 북한에서 김일성 통역을 맡을 정도로 인정받는다. 물론 북한에서는 정 교수님을 단순한 어학교수 정도로 생각해 크게 대우를 하지 않았다고도 한다. 북한이든 한국이든 당시에는 먼 아랍의 인문학자가 무슨 의미가 있었겠는가...

이후 북한에서는 평양외국어대 교수로 지내던 그를 이국적 외모와 해박한 언어 구사능력을 보고 남한으로 간첩 파견을 한다.

정교수는 아랍인으로 신분 세탁을 해 '무함마드 깐수'로 이름을 바꾸고 레바논, 튀니지 등에서 학위를 받고 한국으로 온다. 

일부러 위장을 위해 연세대 어학당에서 한국어를 배우고, 단파 라디오를 이용해 북한의 지령을 수신해 북한에 첩보를 보낸다(물론 별 의미없는 학문적 첩보를 자주 보내서 북한으로부터 많이 혼났다고 한다)

북한으로 정보를 보내다 결국 체포되어 간첩인 것이 판명되고 사형을 선고받았다가 다시 12년향으로 감형 받는다.

정수일 교수님은 북한에도 식구가 있었으나, 철저히 위장해 남한에서 결혼도 하고 심지어 남한의 아내는 체포되는 순간까지 그가 간첩인 줄 몰랐다고 한다.

감옥에서 아주 적은 기록과 자신의 암기를 이용해 여러 저술을 했고, 특히 남한 아내와 주고 받은 편지를 묶은 책이 <소걸음으로 천리를 가다>로 나도 읽고 감명을 받았다. 한국 최고의 천재중 한 명일 수도 있는 대학자를 우리는 이념에 갇혀 간첩으로, 감옥에서 허송세월을 하게 만들었다. 시대의 아픔이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서 혜초의 <왕오천축국전>, 14세기 이탈리아 수도사 오도릭이 남긴 <동방기행>, 마르코폴로의 <동방견문록>, 그리고 바로 <이븐 바투타 여행기>가 세계 4대 여행기로 불리고 있다.

 

그렇다면 이븐 바투타는 누구인가?

이븐 바투타는 1304년 아프리카 서북부 모로코의 퇀자(오늘의 탕헤르)에서 태어났다. 그의 가정은 베르베르 계(나일 계곡 서쪽 북아프리카의 토착 민족)의 라와타 부족 가문으로, 본인은 물론 사촌도 법관을 지냈다는 사실이 남아있어 법조계 집안이라 할 수 있다. 과거에는 집안의 일을 같이 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그는 결국 조금은 지체가 높은 집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그는 유년기에 전통적인 이슬람 교육을 받아 독실한 무슬림으로 성장했고, 21살의 젊은 나이에 혈혈단신으로 성지순례와 이슬람 동방세계 탐구의 대장정에 나섰다.

그는 아주 엄격한 이슬람 문화 속에서 교육받은 샤이흐(아랍 어로 ‘노인’ 또는 ‘늙은 장로’라는 뜻)이자 법관으로, 30여 년간 여행하면서 네 차례나 성지 메카를 순례했다. 

독실한 이슬람 신자라고 할 수 있다.

여행 내내 샤이흐의 신분으로 예우를 받으며 다른 이슬람 국가들의 명사들을 만났다. 법관이자 샤이흐의 신분이었기에 인도의 델리와 지바툴 마 할(오늘날 몰디브)에서 법관을 지냈고, 인도 델리 술탄의 특사로 중국 원나라 순제(1320~1370)에게 파견되기도 했다. 동서양을 누비면서 역사에 등장한다. 대단한 인물이다.
오랫동안 여행하고 귀향해서 약 2년여 만에 여행기를 완성했다. 모로코에 있는 한 마을에서 재판관으로 활동하다가 1368년경 사망하여 그의 고향인 탕헤르에 묻혔다고 전해진다.

 

여행기를 보다보면 대부분 다른 지역의 샤이흐에게 융숭히 대접받은 이야기도 나오고 몽골의 일한국에서의 생활, 저자의 주로 당시의 역사를 알려주기도 한다.

사실 알라께 감사드리거니와, 현세에서 나의 욕망은 세상을 여행하려는 것이었는데 이미 실현되었다고 생각했다. 나는 이 방면에서 그 누구도 도달하지 못한 경지에 도달했다고 감히 자부했다. 이제 남은 것은 내세의 일 뿐이라고 여겼다. 그것도 알라의 자비와 관용으로 낙원에 들어가려는 자신의 욕망이 반드시 실현되리라는 강렬한 희망도 갖고 있었다. (중략)

나는 여행을 하면서 될 수 있는대로 한 번 지나간 길은 다시 밟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삼고 그렇게 행했다. ---81P

 

대단하다. 요즘 같은 시기도 여행을 다니기 힘든데, 이븐 바투타는 그야말로 그 당시에 있었던 세계 모두를 땅을 밟으며 돌아다녔다.

 

당시의 세계는 몽골의 징키스 칸 휴예들이 지배했다. 동유럽 일부, 아프리카만 빼놓고는 몽골의 4한국 체제로 중앙, 서아시아, 유럽 일부까지 미치는 대제국이었다. 

하지만 기마병으로 지역을 훑듯이 지나가서 많은 원주민 문화가 많이 남아 있었고, 일부 자치의 성격도 많이 보인다. 

 

마자르 사람들은 여성들을 존대했는데, 여성의 지위가 남성보다 확실히 높았다. 내가 본 첫 아미르의 부인은 카람을 출발할 때 수레를 타고 갔다. ----146P

 

이렇듯이 1300년대 중반 아시아와 유럽의 많은 풍습과 사람들이 기록되어 있다. 

 

또한 책에 중간중간 나오는 사진과 장소에 대한 설명은 평소 힘든 여행은 가지 않겠다고 다짐했던 나에게도 인도나, 중동아시아를 여행해보고 싶은 충동을 일으키기에 충분했다.  이 책에는 해당 지역의 사진이 꽤 많이 나온다.

그 사진만 보는 걸로도 충분히 가치 있는 책이었고, 이 점이 이븐 바투타 여행기를 더욱 생생하게 살아있는 책으로 만들었다.

 

부하라의 청렴한 성군의 이야기도 감명깊었다.

나는 술탄이 솜을 넣어 누빈 면도포를 입고 있는 것을 자주 보았다 도포는 낡을대로 낡아 해지기까지 했다. (중략)

"주공이시여, 당신이 입고 있는 도포가 도대체 무슨 꼴입니까? 참으로 말이 아닙니다. 제 옷가지 중 하나를 드렸으면 합니다."

 

그러자 술탄은 "젊은이, 이것은 내 도포가 아니라 딸녀석의 것이라네. 그리고 나는 50년전 이미 누구한테든 아무것도 받지 않기로 알라께 약속했네. 내가 일찍이 누구한테서 무엇을 하나라도 받았다면 자네 것도 흔쾌히 받았을거네."라고 응수했다.

그는 이렇게 누구한테도 옷 한 벌은 물론 밥 한끼도 받지 않는 청렴경건한 수행자였다. ---171P

 

하지만 이 청렴 경건한 술탄은 나중에 그의 사촌에 의해 폐위된다. 역사의 아이러니함이란...

 

하지만 당시에도 법관의 지위가 존경을 받아서인지 가는 곳마다 많은 대접을 받고, 또 그를 존경한다. 또한 언어가 안 통할 수도 있을 것 같은데 대부분 통했다.

심지어 그의 고향에서 어마어마한 거리의 중국까지 가서 중국에서도 대접을 받고, 중국 여러 도시를 구경한다.

그는 중국을 마지막으로 발길을 돌려 고향으로 돌아간다.

가끔씩 지도로 그의 여행루트나 돌아오는 길 등을 보여준다. 실로 어마어마한 거리다. 그 때 당시에 어떻게 가능했을까 하는 생각이 들고, 풍토병 등으로 고생했을텐데(실제 열병 걸렸다는 이야기가 많이 나온다) 건강이 뒷받침 해 준 것 같기도 하다. 

 

여행기를 남긴 저자답게 매우 뛰어는 관찰력과 친화력으로 지역별 풍습과 문화, 사람들에 대한 분석이 탁월했다.

 

사실 나는 완역본을 좋아한다. 왠만한 책은 원전 완역본을 많이 사서 읽는 편인데, 이 책은 이 책 나름대로 의미가 있었다. 다소 장황한 설명에 오늘날 필요없는 지식들을 과감히 걸러 낸 것 같고(사실 1350년대 중앙아시아의 풍습 하나하나가 나한테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완역본 번역가인 정수일 교수님의 감수와 중간중간 해당 역사나 문화 지식을 알려주어서 청소년과 나같은 중앙아시아, 중세 이슬람에 무지한 일반 성인에게도 매우 적합한 책이었다. 

 

좋은 독서를 하게 해준 두레에 감사드립니다. 컬러 인쇄에 비교적 깊이가 있고, 얇지 않음에도 저렴한 가격도 청소년에게 딱이다. 

요즘 너무 비싼 책이 많이 나와서 부담스러운데 책값도 매우 마음에 들었다. 

 

* 이 책은 두레출판사의 제공으로 책을 제공받아 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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