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우사냥 - 합본 개정판
다니엘 최 지음 / 행복우물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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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우사냥'이라는 단어를 처음 알게 된 것은 학창시절 국사선생님에게서다. 일본 무사들이 조선의 국모를 처참하게 살해한 사건이라고 당시의 이야기를 해 주셨던 기억이 있다. 그때 일본 무사들이 사용한 작전명과 같은 말이 '여우사냥'이다. 조선의 국모를 '여우'라고 칭한 것이다. 자신들의 왕은 천황이라고 해서 격상시키지만 다른 나라의 왕비는 '여우'라는 표현을 쓴 것에서부터 격분하게 한다. <여우사냥>은 당시의 사건을 바탕으로 한 소설이다. 그렇다보니 '명성황후'가 황후가 아니라 '민자영'이라는 이름으로 민치록이 딸이었고 이미 11살에 아버지 민치록의 죽음을 경험하게 된다. 동시에 왕이 병으로 죽고 그 뒤를 이을 왕을 찾아야했다. 흥선대원군은 자신이 이루지 못한 왕의 꿈을 아들이 이루게 된다. 흥선은 아들의 혼처로 부인 민씨의 12촌 동생뻘인 자영을 마음에 둔다. 어린 나이지만 사고무친의 상황이라 마음에 든 것이다. 하지만 자영은 임금과 혼인했지만 혼인은 주위에서 말하는 것도 같지 않았다. 임금은 자영보다 4살 많았지만 동침을 제대로하지 않을 정도로 자영에게 애정은 없었다. 하지만 자영은 온갖 음모와 시기 속의 궁궐 생활에서 살아남아야 했다. 임금에겐 모든 것이 만족스러워야 했고 자신의 후궁이 내시에게 폭행을 당하더라도 참아야 했다. 내시들의 권력이 궁에서 큰 영향력을 미치고 있었기 때문에 분을 삭히며 적으로 만들지 말아야 했다. 이런 상황에 서양의 천주교가 조선에서도 퍼지기 시작했고 미국의 셔먼호가 조선 땅으로 들어왔다. 자영의 부모는 어린 나이에 돌아가셨지만 아버지가 죽기전 먼 친척인 승호를 자신의 아들로 입양한다. 집안의 대를 잇기 위한 마지막이었다. 그런 승호는 어린 자영에게 큰 힘이 되고 든든한 조력자였다. 어린 동생과 나이차이도 많이 나고 양자이지만 남매로 지낸지 5년이란 정으로 자영을 돕기로 한다. 대원군은 서양인들의 침입에 나라를 봉쇄했지만 곧 아들이 정치를 직접하게 되면서 며느리인 자영과 점점 적이되는 상황이 된다. 일본은 점점 조선을 침략하기 위한 계획을 진행하듯 주변국과의 외교조약을 맺고 조선엔 서양이 문물들을 받아들이기 시작한다. 청나라에서 무기제조법을 배우고 별기군을 만들었지만 그게 화근이 되어 폭도가 일어나고 중전을 찾는 폭도들을 뒤로하고 중전은 피난을 떠난다. 이렇게 목숨을 구한 중전은 앞으로 더 큰 어려움을 만나게 되는데 그것이 바로 <여우사냥>이라는 명성황후 시해사건이다. 소설 <여우사냥>은 '민자영'이 '명성황후'가 되는 과정을 통해 당시의 혼란스럽고 권력의 암투가 펼쳐지는 상황이 조선을 어떻게 만들어갔는지 그 결말을 보게 한다. 소설이기에 당시의 상황을 다 상상으로 채울 수 밖에 없지만 역사에 기록된 사실만을 바탕으로 한 상상의 <여우사냥>을 읽고 마주하기 힘든 역사의 진실을 알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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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보적인 저널리즘 - 뉴욕타임스 혁신 보고서 북저널리즘 (Book Journalism) 6
뉴욕타임스 2020그룹 보고서 지음, 강진규 옮김 / 스리체어스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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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종이신문이라는 것이 전자신문이나 인터넷 뉴스에 밀려 그 가치가 점점 떨어지는 것 같아도 여전히 전자책보다 종이책을 선호하는 사람들이 있듯 종이신문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있다. 전자신문이 보편화되기 전에 종이신문(이라고 부르기도 이상하지만 신문이라고 하면 다 종이신문이었으니까)은 사람들에게 뉴스를 알려주는 가장 큰 역할을 하는 매체였다. 하지만 종이신문은 이제 사라지고 전자신문의 시대가 왔다. 그런 종이신문 중에서 '뉴욕타임스'는 신문의 대명사라고도 할 수 있을 정도로 많이 알려진 신문이다. 영화를 보더라도 뉴욕이라는 배경엔 꼭 뉴욕타임스가 등장하는 장면이 나올 정도이다. 이런 독보적인 인지도를 가지고 있는 뉴욕타임스도 시대에 맞춰 변화를 시도하고 있다. 종이신문과 함께 인터넷이나 스마트폰으로 볼 수 있는 전자신문을 만드는데 더 많은 노력을 하는 것이다. 예전엔 종이에 인쇄된 기사를 보기 위해 다음날 또는 더 긴 시간을 기다려야 하지만 요즘은 사정이 다르다. 인터넷이 연결되거나 스마트폰만 있다면 뉴스를 금방금방 만들수도 있고 볼수도 있다. 게다가 요즘은 글자가 아닌 영상으로 뉴스를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오랜 전통의 뉴욕타임스도 영상뉴스를 만들고 보여주고 있다.




<독보적인 저널리즘>에서 말하는 뉴욕타임스는 오랜 역사와 많은 고정 독자들을 가지고 있다. 이런 뉴욕타임스가 영상뉴스를 만들고 독자들을 만나고 있다. 뉴욕타임스의 지면은 여전히 많은 독자들에게 사랑받고 있다. 지면은 뛰어난 기사, 사진, 그래픽, 예술적 감각이 합쳐진 결과뭉이라고 할 수 있는데 현재는 애매한 상황이라고 한다. 현재의 편집국의 구조는 양질의 디지털 콘텐츠를 만드는 데도 결코 효율적이지 못하다. 하지만 독자들의 수요가 변했고 이에 맞춰 뉴욕타임스도 변화의 길을 걸었다. 뉴욕타임스가 추구하는 고유한 저널리즘의 가치는 변하지 않았지만 그 가치를 표현하는 방식이 바뀐 것이다. 앞으로 뉴욕타임스는 시대에 맞게 직면한 문제들을 이겨내며 새로운 뉴욕타임스로의 변신을 시도할 것이다.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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앨저넌에게 꽃을
대니얼 키스 지음, 구자언 옮김 / 황금부엉이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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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앨저넌에게 꽃을>이라는 것을 알게 된 것은 일본 드라마를 통해서였다. 물론 그 드라마도 오래전 드라마이지만 인기가 많았던 드라마로 일본어를 공부해 볼까 할 때 학습용으로 알게 되었다. 그런데 이 드라마 역시 원작이 있는 작품이었다. 그것도 미국 작가가 쓴 소설로 소설 또한 세상에 나온지 50년이나 지난 작품이었다. 그러고 보아도 내용이 좋고 전달하려는 메시지가 있는 소설이라 오랜 시간이 지나도 여전히 사람들에게 관심받고 읽히는 듯하다. <엘저넌에게 꽃을>이라는 소설은 한 청년의 이야기다. 소설의 주인공이 되려면 보통의 청년 이야기로는 뭔가 부족할 것이다. 주인공 찰리는 지적장애를 가진 청년이다. 하지만 무한긍정에 마음이 따뜻한 청년이다. 찰리는 동네 빵가게에서 일을 하고 매일 아이들이 멍텅구리 찰리라고 놀려도 화내지 않는다. 자신이 바보 찰리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찰리를 부끄럽게 여기는 것은 오히려 가족들이었다. 가족을 사랑한 찰리는 큰 결심을 하게 되는데 똑똑해지는 뇌수술을 받기로 한 것이다. <앨저넌에게 꽃을>은 찰리의 일기로 시작하는데 수술을 받고 회복하는 과정을 기록하고 점점 똑똑해지는 자신의 이야기를 적어두고 있다.



찰리는 자신이 바보이기 때문에 똑똑해지는 수술을 받고 똑똑해지면 주변의 모든 것들이 변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자신을 부끄럽게 생각한 아버지와 오히려 반대로 너무 감싸는 엄마, 가끔 무시하는 빵집의 직원들이나 주위 사람들까지도 모두 자신의 변한 모습을 좋아할 것이라고. 하지만 뇌수술을 받은 찰리는 매일 도서관에서 책을 읽고 공부를 하며 똑똑해지지만 주위의 반응은 찰리의 예상과는 다르다. 여전히 자신을 무시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왜냐하면 찰리는 바보니까. 찰리를 수술한 스트라우스 박사는 자신의 연구 목적을 위해 찰리를 실험 대상으로만 생각한다. 이런 이기적인 사람들 속에서 아이큐 70의 찰리가 아이큐 180의 천재가 된 찰리의 삶은 오히려 불행지는 듯하다. <앨저넌에게 꽃을>은 오래시간 인간이 가지고 의문의 해답을 찾으려는 듯하다. 인간에게 행복이란 무엇일까? 7살의 지능을 가진 찰리는 너무나 행복했지만 다른 사람들의 행복을 위해 자신의 행복을 희생하자 불행해진다. 행복이 무엇인지, 어떤 조건이 되어야 행복해질 수 있는지 생각해 볼 수 있던 소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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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란법, 김영란에게 묻다 - 대한민국을 뒤흔든 청탁금지법의 모든 것
김영란.이범준 지음 / 풀빛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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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도나도 '김영란법'이 어쩌고저쩌고 말은 많이 하지만 실제 이 법의 이름을 가진 '김영란'이라는 사람에 대해서는 잘 모를 것이다. 어떤 과정으로, 어떤 의도로 이 김영란법이 만들어졌으면 실제 적용되고 있는 '김영란법'에 대해 더 자세히 알아볼 수 있는 기회가 된 것이 <김영란법, 김영란에게 묻다>였다. 김영란 교수는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 대법관의 이력을 가지고 있다. 누구보다 법에 대해 잘 알고 있기에 이 청탁금지법을 자신의 이름을 걸고 만들었는지도 모르겠다. 우리나라는 '정문화'가 발달되어 있어 누군가의 청탁을 받으면 거절하는 것은 관계를 끝내야 할 정도로 청탁 거절을 기피한다. 현대의 공무원은 직무 과정에서 범죄를 알게 되면 신고할 의무가 있다고 형사소송법에 정해져 있다고 한다 하지만 이는 잘 행해지지 않고 있어 아예 청탁을 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 어떨까하는 생각에서 김영란법은 출발했다. 또 김영란은 3만원이라는 소액을 지정한 것에는 이유가 있다고 한다. 사람들은 큰 금액을 거절하기 쉽고 반면 소액이나 상품권은 오가는 정이라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거절하지 않고 청탁을 받아들이게 되는 것이다. 이런 것들은 모두 판사 시절의 경험과 동료들의 경험을 보면서 만들어지게 된 것이다.



<김영란법, 김영란에게 묻다>에서 김영란은 공직자를 믿을 수 있는 나라를 만들고 싶다고 한다. 김영란법은 국민들이 공무원들을 믿게 만들고 싶었고 국가 신뢰도를 높이고자 한 것이다. 김영란법이 만들어졌다고 청탁에 관한 법이 완벽한 것은 아니었다. 법은 사람이 만든 것이고 그 법에는 헛점이 있기 마련이기에 조금씩 단점들을 보완해가야 한다. 그래서 새로운 관련법 제정을 준비하고 있다. 공무원들의 청탁을 근절하기 위해 공익신고자보호법이 만들게 된다. 내부고발자를 보호하는 제도로 신고자를 보호하는 범위를 넓히고 고보 수준도 높여야 했다. 이런 법들이 사회에 정착을 하게 되면 안되는 일은 안된다고 말을 할 수 있는 사회가 될 것이다. 아무리 제도를 잘 만들어 놓아도 그런 문화가 정착되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 사회의 문제가 되는 것을 하나하나 고쳐 나가고 법률로 만들어 선한 국민들을 보호할 수 있게 해야 하는 것이다. 시행되는 법의 불편함만 먼저 생각을 했었는데 <김영란법, 김영란에게 묻다>를 통해 법의 의도와 만들어진 과정을 통해 새로운 것을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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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박스 - 컨테이너는 어떻게 세계 경제를 바꾸었는가
마크 레빈슨 지음, 이경식 옮김 / 청림출판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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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의 경우가 그런 것은 아니지만 경제학 관련 책들은 그 두께도 두껍고 어려워 보여 자주 읽기에 도전하진 않는다. 이런 조건들을 보면 <더 박스>는 가장 나중에 도전해 보고 싶은 경제학 서적이기도 하다. 요즘 이슈가 되고 있는 4차 산업혁명과 관련이 있어 보이지만 600페이지가 넘는 그 두께는 언제 다 읽을 수 있을까하는 생각이 먼저 들게 한다. 하지만 그런 것도 책을 읽기전에 든 생각이고 읽고보면 크게 어려운 내용이나 이해 못할 것도 없다는 것이다. <더 박스>는 컨테이너 박스를 의미하며 이 컨테이너 박스는 나라와 나라간의 무역을 상징하기도 한다. 제조된 제품들을 이 컨테이너 박스에 넣고 옮기고 그렇게 무역이 성립되어 경제가 발전하고 화물이 운송되어 세계 무역 활성화와 소비자의 선택의 폭이 넓어진 상황을 알 수 있다. '컨테이너 운송'의 개념이 형성조차 되어 있지 않던 1950년대 초에는 전세계의 상업 중심지는 부두였다. 샌프란시스코, 몬트리올, 함부르크, 런던, 부에노스아이레스 주변에는 항구와 관련된 일로 생계를 꾸리던 사람들이 살았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몇 년 동안 미국 경제는 호황을 누렸다. 트럭운송 산업으로 자수성가한 거물 말콤 맥린은 운송업계에서 보기 드문 역동적인 기업으로 소문났다. 미국 최대 해운사를 인수하며 차입자금을 이용해 회사를 사들이는 금융 기법을 이용해 자신의 돈은 전혀 쓰지 않았다. 그리고 맥린은 운송 산업의 본질은 배를 항해하는 것이 아니라 화물을 이동시키는 것이라는 인식이었다. 예전과 다른 발상으로 상품의 운송비용을 줄이고 다른 사람들보다 한 걸음 앞서 나갔다.



1920년대에 시작된 트럭 산업이 저차 커지면서 뉴욕항의 부두들이 제역할을 하기에 적절하지 않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1950년대 부두를 들고나는 화물의 약 절반은 기차가 아닌 트럭이 처리했다. 뉴욕항은 뉴욕시의 중요한 일자리 원천이었고 미국 전역에서 운송 서비스업에 종사하는 사람들 중 3분의 1 이상이 뉴욕시에 있었다. 1960년대 중반 공장들이 뉴욕시를 빠져나온 바람에 공장 현장뿐만 아니라 관련된 운송 분야 일자리까지 사라졌다. 게다가 컨테이너 규격 관련 논쟁은 국제적으로도 반복되었다. 미국은 베트남 전쟁을 치렀고 운송료 책정에 관한 협의 등에 관여한 NAPA도 탄생한다. 시대가 변하면서 컨테이너 운송업도 변화를 겪으며 현대에 이르렀다. <더 박스>는 미국 운송업의 역사를 한 권으로 정리했다고 해도 될 것 같다. 미국의 운송업이 어떻게 변화했는지, 세계 경제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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