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케팅이다 - 세스 고딘의
세스 고딘 지음, 김태훈 옮김 / 쌤앤파커스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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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케팅의 핵심은 역시 인간에 대한 이해다.

사람들이 자기도 모르게 그렇게 행동하고 마는 편향된 행동 양식을 파악하고 

그에 맞는 전략을 짜는 것이다.

이 책 또한 같은 내용을 담고 있다.


하지만 그런 인간 본성을 ‘이용하는’ 것과

‘충족시키는’ 것은 엄연히 다른 접근법이다.

이 책은 충족시키는 데서 시작한다. 그게 이 책을 특별하게 만든다.


이용하는 쪽은 자기중심적이고

충족시켜주는 쪽은 상대방 중심적이다.

(책에는 ‘섬긴다’는 말과 ‘어떻게 도울 것인가’라는 말이 자주 등장한다)

저자는 마케터 본인의 생각은 중요하지 않다고 끊임없이 말한다.

상대방의 생각이 중요하다.


││ 사람들은 당신이 얼마나 열심히 일했는지 신경 쓰지 않는다. 단지 그것이 자신을 위한 것인지, 진정한 가치를 지니는지 알고 싶을 뿐이다. ││ p. 217


(그런 면에서 예술가와는 정반대의 사고방식이 아닌가 싶다. 

하지만 요즘은 예술가들도 대중의 마음을 염두에 둬야 한다. 

마케팅 없는 예술가는 생계가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인간 본성을 이용하지 않는 것도 아니다.

인간의 오류나 편향을 극복하려는 게 아니라, 그걸 적극 활용하자는 거니까.

어차피 그건 극복할 수 없다는 전제가 깔려있다. (여기서도 예술과는 다른 지점이 느껴진다)


││ 우리는 모든 것을 판단하며, 사람들은 그에 대응하여 우리를 판단한다. 이 판단은 종종 편향적이고, 부정확하며, 비효율적이다. 그러나 부정한다고 해서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 p. 225-226


마케팅은 원래 선하지도 악하지도 않은 도구다.

그저 누구의 손에 들리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다.

사람을 도울 수도, 죽일 수도 있는 도구.


그걸 잘 알기 때문에 저자는 마케터의 윤리성을 강조하고 있다.

마케터로서 자신과 자기 직업의 품격도 유지하면서 

얼마든지 고객을 충족시켜줄 수 있는 윈윈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우리는 선택을 해야 한다. 도구를 선하게 사용할 것인가, 악하게 사용할 것인가.

결국은 그걸로 무엇을 할 것인가.


││ 모든 강력한 도구처럼 효력은 도구가 아니라 장인에게서 나온다. 현재 마케팅은 그 어느 때보다 빠른 속도로 멀리 전파된다. 더 적은 돈으로 10년 전에는 누구도 상상하지 못한 효력을 발휘할 수 있다. 결정적인 질문, 당신도 자문하기를 바라는 질문은 ‘그 효력으로 무엇을 할 것인가?’이다. ││ p. 356


어떻게 보면 그건 설득의 영향력이기도 하다.

얼마든지 좋은 사회를 만들 수 있는 선한 힘이다. 

그리고 그건 마케팅의 범주를 넘어서는 일이다. 

하지만 그전에 마케팅이라고 생각했던 그 좁은 범주를 벗어난다면 

(책 제목처럼) 이것은 마케팅이다.


││ 나의 경험에 따르면 대다수 마케터들은 사실 같은 ‘목적’을 가지고 있다. 바로 성공하는 것, 서로에게 도움이 되는 방식으로 사람들과 교류하는 것, 존중받는 것, 눈에 띄는 것, 인정받는 것, 같은 일을 반복할 수 있도록 충분한 이익을 내는 것이다.

그것이 당신의 존재 이유다. 당신이 일하러 가는 이유다. ││ p. 213


우리 중에 그러지 않은 사람이 있던가? 우리는 모두 마케터다.


저자는 마케팅으로 도를 닦는 사람 같다. 구루라고 불릴 만하다.

(스토리로 도를 닦았던 로버트 맥기가 떠오른다. 맥기도 구루로 불린다)


이익을 내기 바쁜 마케팅 시장에서 무슨 윤리를 논하느냐고 말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이것은 실질적으로 봐도 효과적인 접근법이다.

저자는 이제 소비자가 바보가 아니라는 점을 잘 알고 있다.

조금이라도 사기 치거나 강요하는 냄새가 날라치면 그들은 금세 알아챈다.

프로파간다식의 속임수는 (설령 그것이 통한다고 해도) 위험부담이 너무 크다.

그렇다면 외면과 내면을 일치시켜야 할 필요가 있다.

천박한 장사치가 아닌 외면을 내세운다면, 실제로 내면까지 그래야 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가짜를 금세 알아보기 때문이다.


││ 좋은 소식은 내가 사악한 것과 사악하지 않은 것을 판별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당신, 당신의 고객, 당신의 이웃들이 판별한다. 더 좋은 소식은 도덕적이고 공익적인 마케팅이 결국에는 어둠에 의존하는 마케팅을 이긴다는 것이다. ││ p. 356-357


우리는 혼자가 아니다. 선한 편에 서는 사람들이 훨씬 많다.

똑똑한 소비자가 선한 마케터를 만든다. 

선한 선택을 위해 용기를 내도 좋은 것이다.

이것은 정말 좋은 소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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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청소일 하는데요? - 조금 다르게 살아보니, 생각보다 행복합니다
김예지 지음 / 21세기북스 / 201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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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는 자신의 직업을 납득시키기 위해 시작한 만화 같다. 

그 납득은 다른 사람을 향한 것이기도 하지만 

자기 자신을 향한 것이기도 하다. 

(그렇다. 아직 우리나라에서 어떤 직업은 납득이 필요하다)


자신에 대한 의심과 불확실에 대한 불안감은

서서히 이 납득에 의해 안정을 되찾는다.

(하지만 주기적으로 반복해서 납득시킬 필요가 있다! 

불안감은 없어졌나 싶으면 어디선가 다시 스멀스멀 올라오기 마련이다)


거기서 더 나아가 꿈이란 무엇인지, 어른은 무엇인지, 

어른이 되어 자기 삶을 책임진다는 것은 무엇인지를 묻는다.


아무리 어른이라 불린다고 해도 

꿈과 어른 됨에 대해 제대로 알지는 못한다. 

오히려 그 성찰을 생략하고 어른이 돼 버리고, 꿈을 이루고, 

생계를 이어나가는 사람이 많다. 

대부분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이 담고 있는 내용이 

반드시 젊은이만을 위한 것일까, 생각하게 됐다.


‘아프니까 청춘’이라는 말은 우스갯소리가 됐지만,

아플 정도의 고민 없이 어른이 되는 것은 확실히 위험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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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오늘 모리셔스의 바닷가를 달린다 - 하루 30분 달리기로 인생을 바꾼 기적 같은 이야기
안정은 지음 / 쌤앤파커스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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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만 보면 셀럽의 극적인 인생 이야기가 펼쳐지는 에세이 같지만, 의외로 저자의 인생 이야기가 많은 분량을 차지하지는 않는다. (사실상 책날개에 적혀있는 경력이 인생 역경의 전부다)


백수생활과 이직, 퇴사 이야기는 황급히 마무리되고 이후에 잠깐씩 끼어들 뿐이다.


나머지 부분은 마라톤에 대한 정보와 경험담들로 채워진다. 그야말로 ‘런스타’다운 구성이다. 아마도 인스타그램에 저자가 올리는 게시물보다 약간 더 깊이 있게 나간 수준이 아닐까 싶다.


그것이 이 책의 단점이자 강점이다


드라마틱 하고 로맨틱한 에세이를 기대했다면

생각보다 빈약한 스토리에 김이 샐 것이다. (사실 아직 어린 저자에게서 그런 극적인 걸 기대하는 것도 무리다)


하지만 달리기, 더 정확하게는 마라톤에 대한 매력을 다시 느낄 수 있다.


저자가 애정을 갖고 써 내려간 달리기 경험들을 읽다 보면 나까지 숨이 차는 것 같고, 한참을 달린 듯 심장이 두근거린다.

누구나 한 번쯤 마라톤을 꿈꿔본 적이 있지 않을까.

없다면 이 책을 읽으면서 처음으로 그런 로망이 생길지도 모르겠다.


저자는 자신의 잦은 이직과 퇴사 경험을 역경 아니면 ‘지금의 나를 만들어준 밑거름’ 정도로 의미 부여를 한다. 


나는 오히려 저자가 돌고 돌아 자신에게 꼭 맞는 직업을 찾은 게 아닐까 싶다. 바늘구멍을 뚫고 대기업이나 중국계 항공사에 들어갔다고 해서 반드시 그 직장에 잘 맞는 사람이라는 보장은 없다.


때문에 저자처럼 자신의 끈기를 증명하기 위해서 마라톤을 달릴 필요도 없다. 그냥 거기 안 맞는 사람일 뿐이다. 안 맞아도 버티는 사람들이 있다고 못 버티는 내가 틀린 건 아니다. 


그저 저자는 무작정 뛰다 보니 얼결에 자기 자리를 잘 찾아온 사람이고,

그 자리에 꼭 맞는 사람을 바라보는 것은 언제나 즐거운 일이다. 보통 그런 사람은 아름답게 빛나기 때문이다.

역시 무작정 뭔가를 하는 게 중요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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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남자의 적나라한 민.낯. - 야동 끊은 한 남자의 진솔한 고백
허상 지음 / 에테르니(AETERNI) / 201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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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저자는 30대 중반의 기혼남으로 추측된다. 애도 있고, 적당히 페미니스트 같다.

독자로 상정된 대상은 20~30대 미혼 여성으로 짐작된다.

이 구도 자체가 갖는 태생적인 맨스플레인의 약점이 있다. 이것이 첫 번째 단점이다. 그래도 남자들의 민낯을 보여준다니 꾹 참고 읽었다.

하지만 같은 시간과 노력이라면, 그 나이대의 여성 독자들은
차라리 리베카 솔닛이나 우에노 지즈코 책을 읽는 게 훨씬 생산적일 것 같다.

왜냐면 이 책은 대단히 비전문적인 논리 체계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이 이 책이 가지는 두 번째 단점이다. 이 책의 저자는 자신의 얄팍한 지식에 의지해서 자기주장을 펼치고 있는데, 대단히 위태로워 보인다. 프로이트 이론이나 에로티시즘 개념을 자신감 넘치게 가져오는 부분들이 특히 그렇다.

심지어 뻔뻔하다. 어쩌면 ‘적나라한 민낯’이라는 제목이 가리키는 것은 저자가 쓴 내용보다는 이런 저자의 태도에서 더 드러나는 것 같다.

|| 물론 그래 봐야 주관적인 의견에 불과하겠지만, 설령 이에 대해 어떤 공신력 있는 기관에서 객관적인 조사를 한다고 해서 나보다 정확한 사실을 파악할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어차피 이런 조사도 없겠지만). 공신력이 부족하다는 이유에서 내 이야기를 믿든 안 믿든 그것은 당신의 자유다. || p. 59


이런 뻔뻔한 태도를 내세울 수밖에 없는 이유는,

공신력이 떨어지는 저자의 주장을 믿지 않는다면, 이 책 자체는 성립이 안 되기 때문이다. 그 말은 이 책이 전문가가 아닌 저자의 개인적인 의견에 기대고 있는 바가 지나치게 크다는 얘기이기도 하다. 그래서 ‘싫으면 읽지 말던가’하는 태도를 보일 수밖에 없다.

차라리 공신력 있는 ‘척’을 하지 말고, 솔직하게 개인적인 이야기로 책을 구성했다면 어떨까 싶다. 프로이트만으로 남성의 심리를 설명하기에는 위험부담이 많다.

그리고 상당 부분이 이미 널리 알려진 사실이라는 게 세 번째 단점이다.

이제는 통념적으로 너무나 잘 알려진, 트위터에 널리고 널린 남자에 대한 분석이 너무 많다.

일베를 분석하면서 여성들의 사회진출로 인한 위기감을 이유로 드는 것이라거나,
유흥업소에 출입하거나 성관계 동영상을 찍는 남자들은 열등감/우월감이 강하다거나,
남자들은 공감 능력이 떨어지고 사실 관계만으로 맥락을 판단해 버린다던지.

이미 너무 많은 사람들이 논의했고, 거의 상식이 되어버린 내용들이 상당수다.

너무 늦게 도착한 해석들이고, 그렇기 때문에 맨스플레인의 혐의는 더욱더 짙어진다.

남성의 행동 패턴을 설명하는 데 있어서 너무 성적인 부분에만 집중돼 있다는 게 이 책의 네 번째 단점이다. 사회학적인, 혹은 심리적인 모든 면이 성욕으로 설명된다.

아마도 저자가 프로이트에 깊이 경도된 사람이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대한민국 남자들은 프로이트에 대단히 공감하고 있는 집단인 건가. 텍스트 밑에 흐르는 ‘적나라한 민낯’을 볼 수 있는 또 다른 면이다.

그 적나라한 민낯의 절정은 소설 형식으로 된 마지막 부분에서 드러난다. 거의 90년대 싸구려 연애 소설 같은 느낌이다.

첫 키스 장면을 묘사하며 ‘물컹함’, ‘말캉했다’라거나 ‘결국 뚫어냈다’ 같은 표현은 꽤나 거북했는데, 신체 접촉을 묘사하는 저자의 어휘가 어떤 식으로 형성되어 있는지 알 수 있었다.

나름대로 ‘민낯’을 드러내는 부분이라고 볼 수도 있겠으나, ‘굳이 내가 이걸 왜 읽어야 하지’ 하는 느낌이 많이 들었다.

생각해 보면, 저자가 어느 정도 페미니스트 같다는 생각은 나만의 생각일지도 모르겠다.

내 기억에 저자는 한 번도 본인을 가리켜 페미니스트라고 지칭한 적이 없다.

책에서 반복해서 사용되고 있는 ‘남녀 혹은 여남’이라는 표현이 무색해지는 지점이다. 익숙한 느낌이다. 굳이 페미니즘을 거부하며 ‘양성평등’을 외치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닮았다.

|| 그런데도 모든 남자가 문제인 양 모두를 비판하려 드는 일부 여자들의 무차별적인 태도 또한 우리는 경계해야 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태도는 분명 남녀 혹은 여남 간의 공생이 아닌 공멸의 결과만을 가져올 뿐이며, 결국 모두의 손해로 돌아오게 될 것이다. || p. 8


결국 여성 혐오, 혹은 남성 혐오의 문제에 있어서 그 문제 근간에 있는 가부장제의 억압적인 시스템에 대한 이야기는 하지 않는다. 여성들이 그 시스템 아래에서 어떻게 고통받고 있는지는 이 책에서 별로 중요하지 않은 것 같다. 그렇다고 ‘이런 남자들을 골라내는 방법’(p. 67) 같은 거나 가르쳐주는 책이라면 문제가 있다. 문제의 핵심에 대해서는 이야기하지 않는 것 아닌가. 그리고 그것은 어느 정도 ‘그런 남자를 만나는 건 여자들의 잘못도 있어’라는 태도다.

|| 따라서 만약 당신이 그런 남자들을 만나고 싶지 않다면, 무조건 남자 탓을 하기에 앞서,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부터 제대로 알아야 할 필요가 있다. 은연중에 외제차를 타고 다니는 남자를 만나고 싶어 하는 것은 아닌지, 경차 타는 남자들을 무시하고 있진 않은지, 자신의 외모, 상대방의 외모 등 평소 남들에게 내가 어떻게 보일지에 지나치게 집착하는 삶을 살고 있진 않은 지에 대해 한 번 진지하게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는 소리다. || p. 66-67


더 중요한 문제는 사실 그게 아니다. 아무나 만나도 위험하지 않고, 상식이 통하며, 혹여 그들에게 공격을 받더라도 사회적으로 보호받을 수 있는 것이 더 중요하다. 그런 것들은 남자의 민낯을 들여다보고 있다고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긴 하다. 가뜩이나 공신력도 없는데.

책은 시종일관 자신의 목표인 남자의 민낯(이 책에 의하면 ‘남자의 성욕’)을 설명하는 데 공을 들인다. 그런데 저자가 남자의 성욕을 여자 독자에게 이해시켜서 관철시키려는 것은 도대체 뭘까?

|| 그러나 수연과의 관계의 경우, 그녀와 우연히 정서적 교감이 먼저 형성될 수 있었다. 그것이 가능했던 이유는, 수연의 작은 관심에서 비롯한다. 그의 말을 귀담아듣고 반응해준 작은 노력들이, 그로 하여금 그가 여성을 바라보는 방식에 변화를 가져온 계기가 되었다. 여기에다 그에게 여러모로 심정적인 충격을 전달하기까지 하면서 수연은, 그가 엄마와 교감하던 그때처럼, 수연 자신과 교감하고 싶은 내적 충동을 그에게서 끌어낼 수 있었다. || p. 218

|| 그가 엄마 품에 안겨 엄마를 욕망하던 그 시절의 경험과 흡사한 형태로 다시 사랑이 재완성된 것이다. 육체적, 정서적으로 상대방과 하나의 존재처럼 연결된 느낌, 그는 수연을 그렇게 사랑할 수가 있었다. || p. 219

이것은 또다시 문제의 해결을 남성의 변화가 아니라, 여성의 이해에서 구하는 것은 아닐까?

목적이 그것이라면, 여자들은 더더욱 남자의 민낯을 살펴볼 필요가 없다. 그것은 가부장적인 남자의 태도를 이해하고, 위험한 남자는 피하고, 위험한 남자가 아니라면 그 사람에게 여자가 맞춰주는 것밖에는 안 되기 때문이다. 오히려 남자들이 자기들의 민낯을 객관적으로 보고, 현실을 직시하는 게 더 급하다.

어쨌거나 이렇게 상당한 양의 단점을 참으면서 읽어낸다면, 익히 봐오지 못했던 새로운, 그러면서 꽤나 솔직한, 그리고 내밀한, 남자들의 속마음을 발견할 수 있다. 단지 너무 드물게 나타난다는 게 문제다.

하지만 텍스트에 드러나지 않은 더더욱 내밀한 민낯은 그 아래 깔려 있는 저자의 욕망을 읽어내면서 확인할 수 있었다. 그래서 이 책 전체는 민낯을 제대로 보여주고 있는 것 같다. 단지 그 텍스트 전체에 흐르는 가치관이 꽤나 위태롭다는 게 문제다. 어떻게 보면 이 책에서 가장 무해한 말은 프롤로그가 나오기 전 첫 장에 이미 나온다.

|| 우리는 본래 동물이지만, 동물이 아니게 되었다.

그래서 당신은 ‘생각’을 할 수가 있었다.

그래서 우리에겐, 더 많은 ‘생각’이 필요해졌다. ||

남자들에게는 아직도 더 많은 생각이 필요하다. 남자 스스로의 민낯을 살피는 것에서 더 나아가, 한 번 더 반대로 뒤집어 생각하고, 다시 뒤집어 그것을 검토해봐야 한다. 남자가 무해한 텍스트를 쓴다는 건 그렇게나 어렵다. 가부장의 역사는 그렇게나 길고 깊었다. 그나마 몇 년 전에 비하면 이런 책이 나온다는 건 대단한 발전이긴 하다. 하지만 더 나은, ‘진짜 민낯’을 말하는 책이 나올 때까지는 좀 더 기다려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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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드 2022-03-25 02: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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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저씨 도감
나카무라 루미 지음, 이지수 옮김 / 윌북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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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하필 아저씨야?”라는 질문을 자주 들어서, 후기에서 확실하게 해명하려 했지만 아직도 말로 잘 표현이 안 된다. 그 대답으로 이 책을 만든 것이라 여겨주면 좋겠다. p. 131, 후기 


서점에서 발견하자마자 재밌는 책이라고 느꼈다.

아마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느낄 거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저자가 ‘왜 하필 아저씨야?’라는 질문에 명쾌히 답하지는 못했지만,

왜 하필 아저씨인지 알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아무도 눈여겨보지 않는 아저씨라는 존재를 관찰하고 정리한 책이라니.

가장 재미없는 존재를 가장 재미있게 만들었다.


읽어본 책은 아닌데, 필립 볼의 『자연의 패턴』 카드 광고를 보니,

혼돈 속에서 패턴을 발견하면 사람은 누구나 안심을 하게 된다고 한다. 

인간은 그런 식으로 진화한 본능적인 패턴 탐색자라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저자는 혼돈에 가까운 아저씨의 세계에서,

그것을 파악 가능한 상태로 패턴을 찾아낸 것은 아닐까.

젊은 여성에게 아저씨는 상당히 위협적인 존재이기도 하니까.


그 패턴 정리 솜씨를 놓고 보자면 정말 집요하다 싶을 정도였다.

익히 알려진 고정관념이긴 하지만, ‘일본인 다운’ 집착과 꼼꼼한 관찰력, 정리 벽이 느껴졌다.

‘왜 이전에 누군가 이런 작업을 하지 않았던 것일까’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우리나라에서는 이런 작업을 하는 사람이 없는 걸까.


개인적인 생각으로 아저씨라는 존재(책에서 말하는 ‘오지상’은 중년과 노년 사이 어디쯤의 남자들을 말한다. 과연 고령사회)는 어느 나이대의 사람들보다 자유롭고, 타인에 대해 신경을 쓰지 않는 계층인 것 같다. 자기 자아를 투명하게 모두 드러내면서 타인의 시선에 거의 무관심한, 한 마디로 관찰하기에 최적의 조건을 가진 대상인 것이다.


어느 도박장이든 거의 98퍼센트가 아저씨라서 젊은 사람이 가면 튈 것 같지만, 아저씨들은 경기에 집중하고 있어서 대체로 주위에 무관심하다. 그래서 마음껏 경기와 아저씨를 관찰할 수 있다. p. 46



거기다가 같은 남성도 아니고, 비슷한 연배도 아닌 젊은 여성의 관찰이라면, 

그들에게 조금도 위협이 되지 않을 것이다. 실제로 호기심을 느끼거나 호의를 보이는 사례들이 많이 나온다. 도리어 작가 쪽이 걱정이 될 정도다.


당연히 무서운 사례들도 실려 있다. 성적인 욕망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아저씨들(<섬의 변태 할아범> p. 44)이나, 여자에게 폭력적인 언사를 하는 경우들(<노숙자 아저씨들을 만나러 가다> p. 124)이 그렇다.



그리고 작가는 그런 투명한 욕망을 드러내는 아저씨들을 보면서 경탄할 때가 많은데, 

그건 작가 특유의 유머이기도 하지만 일종의 부러움을 내비친 것이기도 하다.

그만큼 아저씨들의 대칭점에 젊은 여성들이 있는 것은 아닐까 싶었다.

사회적으로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아저씨, 그리고 비교적 남의 시선을 의식해야 하고, 자신의 감정과 욕망을 숨겨야 하는 젊은 여성들.


아저씨는 사소한 일에는 신경 쓰지 않는다. 거의 강제적이라고도 할 수 있는 파워로 어쨌거나 앞으로 나아간다. 언제라도 자신이 중심이다. 아저씨의 터프함과 여차할 때 빠르게 포기하는 자세는 오랜 세월 축적된 경험이 만들어낸 기술이다. 아저씨를 보고 배워서, 가끔은 본능이 이끄는 대로 지내보면 어떨까? p. 122



아저씨가 자유분방할 수 있는 사회일수록 여자들은 힘들어지는 게 아닐까.

책에 나오는 아저씨들 대부분이 도박을 하고, 술 담배를 했다.

공공장소에서 아무렇게나 입고, 아무렇게나 널브러져 있기도 하다.

외모를 자기 멋대로 꾸민 것은 기본이다.


저자는 심지어 아무것도 안 하고 멍 때리고 있는 아저씨들을 부러운 눈으로 바라본다. (‘축 처진 아저씨’ p. 23)


뭘 하는가 싶었더니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신발을 벗고 그저 오로지 햇볕을 쬐고 있다. 나는 과연 이런 식으로 시간을 보낸 적이 있을까? 가장 사치스러운 시간 활용이 아닐까 싶다. p. 122



다음 챕터가 무언인지 전혀 모른 채 느닷없이 등장하는 아저씨 패턴들은 정말 기상천외하다.


심지어 아저씨가 아닌 챕터가 두 개 있는데, 그중 하나는 ‘아저씨에게 인기 있는 여성’ 유형에 관한 챕터(p. 84)다. 나머지 하나를 보고는 정말이지 감탄했다. 패턴 찾기의 최고 상태 아닐까 싶다. (p. 107)



디테일하게 조사한 면면들을 살펴보다 보면 의외의 말이 아저씨들 입에서 튀어나오는 것을 발견할 수도 있다.


젊은이들에게 한마디 해달라는 요청에 “내 일만으로 벅차서 그런 여유는 없다.” (p. 116)고 답하거나, 좋아하는 배우로 한국판 <꽃보다 남자>에 나왔던 구혜선을 드는(p. 119) 순간에는 내가 알고 있다고 생각한 아저씨의 느낌이 많이 깨지는 기분이었다.


물론 한국과 일본의 차이가 있을 것이다. 외모로만 분류한 유형들을 봤을 때는 확실히 일본 쪽이 다채로운 것 같다. 우리나라 아저씨로 도감을 만든다면 좀 더 유형이 단조롭지 않을까. 하지만 조금은 낯선 느낌의 외국인 아저씨일지라도 익숙한 지점들은 분명히 있다. 그래서 상당히 공감하면서 읽었다. 


자신이 추하게 늙어가고 싶지 않은 아저씨라면, 그 어떤 책보다도 직접적으로 자신의 모습을 비춰볼 수 있을 것 같다. 물론 이런 책은 아저씨가 읽을 일이 없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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