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저씨 도감
나카무라 루미 지음, 이지수 옮김 / 윌북 / 2016년 12월
평점 :
품절




“왜 하필 아저씨야?”라는 질문을 자주 들어서, 후기에서 확실하게 해명하려 했지만 아직도 말로 잘 표현이 안 된다. 그 대답으로 이 책을 만든 것이라 여겨주면 좋겠다. p. 131, 후기 


서점에서 발견하자마자 재밌는 책이라고 느꼈다.

아마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느낄 거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저자가 ‘왜 하필 아저씨야?’라는 질문에 명쾌히 답하지는 못했지만,

왜 하필 아저씨인지 알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아무도 눈여겨보지 않는 아저씨라는 존재를 관찰하고 정리한 책이라니.

가장 재미없는 존재를 가장 재미있게 만들었다.


읽어본 책은 아닌데, 필립 볼의 『자연의 패턴』 카드 광고를 보니,

혼돈 속에서 패턴을 발견하면 사람은 누구나 안심을 하게 된다고 한다. 

인간은 그런 식으로 진화한 본능적인 패턴 탐색자라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저자는 혼돈에 가까운 아저씨의 세계에서,

그것을 파악 가능한 상태로 패턴을 찾아낸 것은 아닐까.

젊은 여성에게 아저씨는 상당히 위협적인 존재이기도 하니까.


그 패턴 정리 솜씨를 놓고 보자면 정말 집요하다 싶을 정도였다.

익히 알려진 고정관념이긴 하지만, ‘일본인 다운’ 집착과 꼼꼼한 관찰력, 정리 벽이 느껴졌다.

‘왜 이전에 누군가 이런 작업을 하지 않았던 것일까’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우리나라에서는 이런 작업을 하는 사람이 없는 걸까.


개인적인 생각으로 아저씨라는 존재(책에서 말하는 ‘오지상’은 중년과 노년 사이 어디쯤의 남자들을 말한다. 과연 고령사회)는 어느 나이대의 사람들보다 자유롭고, 타인에 대해 신경을 쓰지 않는 계층인 것 같다. 자기 자아를 투명하게 모두 드러내면서 타인의 시선에 거의 무관심한, 한 마디로 관찰하기에 최적의 조건을 가진 대상인 것이다.


어느 도박장이든 거의 98퍼센트가 아저씨라서 젊은 사람이 가면 튈 것 같지만, 아저씨들은 경기에 집중하고 있어서 대체로 주위에 무관심하다. 그래서 마음껏 경기와 아저씨를 관찰할 수 있다. p. 46



거기다가 같은 남성도 아니고, 비슷한 연배도 아닌 젊은 여성의 관찰이라면, 

그들에게 조금도 위협이 되지 않을 것이다. 실제로 호기심을 느끼거나 호의를 보이는 사례들이 많이 나온다. 도리어 작가 쪽이 걱정이 될 정도다.


당연히 무서운 사례들도 실려 있다. 성적인 욕망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아저씨들(<섬의 변태 할아범> p. 44)이나, 여자에게 폭력적인 언사를 하는 경우들(<노숙자 아저씨들을 만나러 가다> p. 124)이 그렇다.



그리고 작가는 그런 투명한 욕망을 드러내는 아저씨들을 보면서 경탄할 때가 많은데, 

그건 작가 특유의 유머이기도 하지만 일종의 부러움을 내비친 것이기도 하다.

그만큼 아저씨들의 대칭점에 젊은 여성들이 있는 것은 아닐까 싶었다.

사회적으로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아저씨, 그리고 비교적 남의 시선을 의식해야 하고, 자신의 감정과 욕망을 숨겨야 하는 젊은 여성들.


아저씨는 사소한 일에는 신경 쓰지 않는다. 거의 강제적이라고도 할 수 있는 파워로 어쨌거나 앞으로 나아간다. 언제라도 자신이 중심이다. 아저씨의 터프함과 여차할 때 빠르게 포기하는 자세는 오랜 세월 축적된 경험이 만들어낸 기술이다. 아저씨를 보고 배워서, 가끔은 본능이 이끄는 대로 지내보면 어떨까? p. 122



아저씨가 자유분방할 수 있는 사회일수록 여자들은 힘들어지는 게 아닐까.

책에 나오는 아저씨들 대부분이 도박을 하고, 술 담배를 했다.

공공장소에서 아무렇게나 입고, 아무렇게나 널브러져 있기도 하다.

외모를 자기 멋대로 꾸민 것은 기본이다.


저자는 심지어 아무것도 안 하고 멍 때리고 있는 아저씨들을 부러운 눈으로 바라본다. (‘축 처진 아저씨’ p. 23)


뭘 하는가 싶었더니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신발을 벗고 그저 오로지 햇볕을 쬐고 있다. 나는 과연 이런 식으로 시간을 보낸 적이 있을까? 가장 사치스러운 시간 활용이 아닐까 싶다. p. 122



다음 챕터가 무언인지 전혀 모른 채 느닷없이 등장하는 아저씨 패턴들은 정말 기상천외하다.


심지어 아저씨가 아닌 챕터가 두 개 있는데, 그중 하나는 ‘아저씨에게 인기 있는 여성’ 유형에 관한 챕터(p. 84)다. 나머지 하나를 보고는 정말이지 감탄했다. 패턴 찾기의 최고 상태 아닐까 싶다. (p. 107)



디테일하게 조사한 면면들을 살펴보다 보면 의외의 말이 아저씨들 입에서 튀어나오는 것을 발견할 수도 있다.


젊은이들에게 한마디 해달라는 요청에 “내 일만으로 벅차서 그런 여유는 없다.” (p. 116)고 답하거나, 좋아하는 배우로 한국판 <꽃보다 남자>에 나왔던 구혜선을 드는(p. 119) 순간에는 내가 알고 있다고 생각한 아저씨의 느낌이 많이 깨지는 기분이었다.


물론 한국과 일본의 차이가 있을 것이다. 외모로만 분류한 유형들을 봤을 때는 확실히 일본 쪽이 다채로운 것 같다. 우리나라 아저씨로 도감을 만든다면 좀 더 유형이 단조롭지 않을까. 하지만 조금은 낯선 느낌의 외국인 아저씨일지라도 익숙한 지점들은 분명히 있다. 그래서 상당히 공감하면서 읽었다. 


자신이 추하게 늙어가고 싶지 않은 아저씨라면, 그 어떤 책보다도 직접적으로 자신의 모습을 비춰볼 수 있을 것 같다. 물론 이런 책은 아저씨가 읽을 일이 없겠지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