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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맛 7작 - 제1.2회 테이스티 문학상 작품집
박지혜 외 지음 / 황금가지 / 2017년 11월
평점 :
음식을 테마로한 장르소설 공모전 ‘테이스티 문학상’ 1, 2회 수상작들과 브릿G에서 선정된 1편의 단편이 수록된 소설집이다.
황금가지에서 운영하는 사이트 브릿G에서 선보이는 두 번째 작품집이다. 정말 열일 하는 황금가지다. 다양한 성격의 공모전과 창작사이트, 종이책 출판이 유기적으로 맞물려서 활발히 소설을 세상에 내놓고 있다. 열악한 출판시장, 그 중에서도 더 열악한 장르소설계에서 보기드문 선순환 시스템을 보여주고 있다. 역시 업계 대표 브랜드다운 행보다.
음식을 테마로 한 소설은 어떤 것이 있을까 생각해 본 적도 없는 나로서는 아주 흥미로운 경험이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책의 띠지에 적힌 ‘허기질 때 읽지 마시오’라는 주의문은 허풍이 아니었다. 작가들의 음식 묘사는 음식에 대한 내 기억과 만나 가공할 위력의 ‘급허기짐’을 선사한다. 하지만 먹고 싶은 걸 먹고 싶을 때 다 먹고 살 수는 없는 법. 먹방 보는 마음으로 입맛만 다시며 읽어나갔다.
1. 박지혜 <해피 버스데이, 3D 미역국!>
3D ‘음식’ 프린터 등의 sf적 발상과 생일 미역국이라는 일상적 소재는 사실 서로 꼭 들어맞지 않고 덜그럭거리는 느낌이 있다. 이야기 구성이 작위적인 느낌도 있어서 마치 재료들이 조화를 이루며 하나의 맛을 이루지 못하는 음식 같은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음식에 대한, 그리고 그 음식을 먹는 과정에 대한 정성스러운 묘사는 읽는 재미와 생동감을 주기에 충분했다. 또 이야기 말미의 소박한 메시지는 인간에 대한 따뜻한 시선마저 느끼게 했다.
“(...) 어쩔 수 없이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기는 하지만, 기술이라는 게 우리에게 뭔가를 주는 존재인지, 아니면 빼앗아 가는 존재인지 정말 모르겠단 말이오. 그래서 나는 이렇게 생각하기로 했지. 진짜 팔 대신 기계 팔을 달았다 해서 뭔가를 잃거나 새로 얻은 건 아니지 않느냐고. -1과 +1이 더해지면 0이 되듯이 우리는 언제나 같은 모습으로 존재하고 있을 뿐이라고.......” p. 42
2. 장아미 <비님이여 오시어>
사극 특유의 어휘 사용(제주도 방언을 포함한)이 효과적으로 이뤄지며 분위기 조성을 돕는다. 반면에 이야기 자체는 서양풍의 판타지를 닮아 있어 독특하게 느껴졌다. 조선 시대를 배경으로 한 <드래곤 퀘스트>랄까. 물론 공주를 구해오는 게 아니라 용의 심장을 구해오는 거지만.
짐승과 의사소통이 가능한 모량이란 캐릭터에게서는 개통령 강형욱 조련사가 느껴졌고, (“그렇지 않소. 개들은 충직한 존재지요. 그들의 본성은 선하오.” p. 65)
일행이 민가를 지나다 하룻밤 묵어가기를 청하는 장면에서는 엉뚱하게도 ‘한끼줍쇼’라는 프로그램이 떠올랐다. (“무산 일로 여까지 왔수까. 안트레 들어옵서, 혼저, 들어옵서. 마침 잘 됐수다. 저녁이나 먹엉 갑서.” p. 86)
인물들의 동기가 약간 불분명 하다는 점이 걸린다.
동기가 불분명 하니 인물들간의 성격이 다소 섞이는 느낌 마저 든다.
남자 주인공(이담)은 왕의 뜻을 거스른 과거가 있지만 이번의 명은 따른다. 과거에는 동물을 위해 희생을 치르지만 현재는 그렇게 신경을 쓰지 않는다.
특히 여자 캐릭터(모량)가 심한데, 용을 잡는 걸 반대하다가 갑자기 동조하고, 기도의 대상이 바뀌는 부분이 석연치 않다.
마지막에 제주도에 남겠다는 이유도 선뜻 이해되지는 않았다. 비장하고 아름다운 희생을 해줄 존재가 필요해서 여자 캐릭터가 그 역할을 떠맡은 느낌이다. 용이 여자의 몸을 빌려 말하는 것도 그렇고 대단히 기능적으로 소모되고 있다. 모든 모순을 봉합시키는 기능을 맡고 있달까.
분위기 조성에 비해 내구성이 약한 작품이었다.
앞서 드래곤 퀘스트를 언급했었는데, 용의 성격 또한 전통적인 한국형 용이라기 보다는 일본 대중문화에서 볼 법한 존재같다.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원령공주에 등장하는 동물신들이었다. 인간의 탐욕을 벌하려는 분노한 동물신. 신령하지만 물리적으로 해할 수 있고 심장을 꺼낼 수 있는 존재.
어찌보면 이 이야기는 마치 인간구원을 거부하는 예수님(구원자)의 이야기 같기도 하다. 인간은 눈앞의 위기를 벗어나기 위해 저주를 자초했고, 그 피값은 훗날 반드시 치뤄지고 말 것이다.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으라 요구하던 이스라엘 군중들이 그 책임에 대해 묻는 본디오 빌라도에게 자신들이 그 책임을 물겠다고 한 것처럼. (“백성이 다 대답하여 가로되 그 피를 우리와 우리 자손에게 돌릴찌어다 하거늘”
마태복음 27:25)
“들어라, 어리석은 자들이여. 내 힘을 앗아 가 당장의 기갈을 면할 수 있을지는 모르나 그대들, 결국은 점점 더 가난해질지어니 내 자식은 살아남아 염통을 꺼내 먹은 자들, 그 자손의 자손들까지 대대손손 저주하리라.” (p. 93)
이야기 속 용은 죽음을 맞게 되지만 언젠가 그의 복수가 이뤄질 거라는 것을 독자는 안다. 그리고 나는 그 복수가 일본에 의한 침략이 아닐까 짐작했다가 금방 그만 두었다. 그렇게 본다면 역사를 지나친 인과응보의 과정으로 보게 되기 때문이다. 우리는 잘못을 했기에 일본에게 당해도 싼 건 아니지 않은가. 그건 일부 대형교회 목사들이 주장하는 역사 해석과 다를 바가 없다. 제국주의 열강들이 선을 많이 쌓아서 복을 받은 것일리 없다. 단순히 후속편을 암시하는 장치로 보는 게 옳을 것이다. 그리고 시리즈로 나와도 될 좋은 캐릭터 조합을 가지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3. 한켠 <스파게티의 이름으로, 라멘>
현실 풍자를 표방한 코미디인데, 창의성이 많이 부족해 보인다. 작품 속 대사를 빌려 말하자면 <네, 네, 창의성이라곤 정말 하나도 없네요.>(p. 122)
물론 탐정 가족이나 생활고로 인한 계약결혼 등 독특한 소재를 다루고 있다. 하지만 그것을 뒷받침 하는 설정들은 어디선가 본 듯한 요소들 뿐이다.(파스타리안이라는 신흥 종교마저도!) 현실을 그대로 가져온다고 현실 풍자는 아니지 않은가. 좀 더 재치를 부려 새로운 요소를 넣어본다면 좋은 시리즈물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4. 조동신 <류엽면옥>
소박한 성취를 겨냥한 추리물. 깔끔하다.
사건이 제시되는 부분까지는 문제가 없어보이는데, 그 이후의 결말이 좀 느닷없게 느껴진다. 독립군에 대한 주인공의 태도가 이야기 내내 선명하지 못하다가 마지막에 이르러서야 나타난다. 처음에는 동조하지 않는 소심한 인물이다가 마지막에 과감하게 행동했다면 좀 더 선명한 캐릭터가 되지 않았을까. 욕망이 분명하지 못하다 보니 인물을 추동하는 것이 억울함, 살인에 대한 혐오등으로 옮겨간다. 아쉬운 부분이다.
‘본정통’을 ‘오늘날의 종로’로 설명한 각주(p. 144)는 의아했다. 본정은 혼마치, 즉 조선인의 종로와 구별되는 일본인 거리로 지금의 충무로나 명동 일대를 칭하는 말이기 때문이다. 정확한 확인이 필요해 보인다.
5. 유사본 <하던 가락>
브릿G의 앞선 책 <단편들, 한국 공포문학의 밤>에서 봤던 이름이라 반가웠다. 공포 잘 쓰시는 분이 음식 이야기를 어떻게 풀어나갈지 궁금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무시무시한 결과물을 내놓았다.
이 지점에서 맛있는 맛이 아니라 더부룩하고 버거운 음식 맛이 느껴진다.
잘 짜여진 대사와 맛깔나는 묘사들 속에서 기묘한 긴장감이 느껴진다. 서스펜스가 훌륭한 영화 장면을 보는 기분이었다. 황인호 감독의 영화 <몬스터>에서 족발집 장면이 떠올랐다.
6. 손장훈 <군대 귀신과 라면 제삿밥>
군대생활의 부조리를 낭만과 농담으로 포장하는 흔한 군대이야기다. 소소한 에피소드로 채워져있는데 그렇게 재미있지는 않다. 양으로 승부하는 작품이라 맛없는 음식을 억지로 꾸역꾸역 먹은 느낌이다. 군대 안 갔다온 사람도 알 수 있을 정도의 익숙한 에피소드들에 귀신이라는 소재가 붙은 건데, 그 귀신도 편의적으로 쓰일 뿐이라 아쉬움을 준다. ‘군대 귀신’과 ‘제삿밥’을 연결지어 봉합한 결말은 더 이상 먹을 수 없는 더부룩한 상태에서 쉽게 소화 안 되는 마지막 음식을 입속으로 밀어넣는 느낌이었다.
7. 김영주 <커리우먼>
얼핏 코웃음이 나오는 실없는 설정이라고 생각했는데, 다 읽고 나서는 현실에 판타지를 입힌 따뜻한 이야기라고 느껴졌다. 온기가 스물스물 올라온다. 설정이나 톤이 붕 떠있다고 느끼다가 마지막에 가서는 다 수긍하고 말았다.
무엇보다 문체가 안정적이어서 신뢰감을 가지고 몰입할 수 있었다.
넓은 의미에서의 페미니즘 소설로 볼 수 있을 것 같고, 아작 출판사에서 나온 <혁명하는 여자들>이라는 페미니즘 단편집이 떠올랐다. 그 단편들 사이에 껴있는 모습을 생각하니 하나도 어색하지가 않다.
아직 특화된 하위장르가 아니어서 그런지 상당히 재밌고 신선한 경험이었다. 하지만 또 같은 이유로 아직은 덜 여문 작품 수준이 아쉽기도 했다. 그래도 새로운 시도들은 언제나 즐겁다. 여물 때까지 인내심을 가지고 계속 작품들을 소개해 주기를 황금가지에 바라본다. 응원합니다 황금가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