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제8회 교보문고 스토리공모전 단편 수상작품집
김백상 외 지음 / 마카롱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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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한 제한없이 공모한 덕에 묘한 개성의 작품들이 한 자리에 모였다. 때문에 책을 읽으면서도 문학에 대한 고정관념 없이 접근한다면 꽤나 재밌는 독서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

윤살구 작가의 「바다에서 온 사람」과 박선미 작가의 「귀촌 가족」은 상대적으로 장르성이 적다.
「바다에서 온 사람」은 판타지 요소를 현실 속에 녹여낸다. 누구나 가지고 있는 ‘할머니‘에 대한 보편적인 감정과 인어라는 판타지 요소가 원래 하나인 것처럼 자연스럽게 섞인다. 그런 작가의 뻔뻔함은 사소한 개연성의 문제를 훌짝 뛰어넘는다. 그만큼 작가의 능숙함이 돋보인다. 서로 극과 극이라고 생각했던 두 세계가 아무렇지도 않게 어우러지는 모습을 보다보면, 이야기가 가지고 있는 상상의 자유로움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그것을 한동안 잊고 있었다는 걸 깨닫게 해준 작품이다.

「귀촌 가족」은 일종의 느긋한 복수극이다. 농촌 커뮤니티 안에서 성적으로 유린되는 여성을 다루고 있는데, 그것을 자극적이지 않으면서도 흥미롭게 그려낸다. 여성들 사이에 흐르는 미묘한 감정들을 섬세하게 잘 표현하고 있는데, 상당한 긴장감이 텍스트 아래 흐르며 긴장감을 조성한다. 도시인과 농촌인에 대한 독자의 선입견을 배신하고, 그것을 다시 한번 더 배신하면서 그들 사이의 경계와 벽을 허물고 똑같은 인간의 위치로 데려다 놓는다.
비교적 잔잔한 이야기를 지루하지 않게 조금씩 단서와 반전을 주며 이끌어가는 절제의 미도 돋보였다. 이또한 능숙함이 빛나는 부분이라 하겠다. 두 작품 모두 다른 작품들에 비해 분량이 적은데, 적은 분량만으로도 밀도 있는 이야기를 써냈다는 데에서 공력의 차이를 가늠하게 했다.

나머지 세 작품은 좀 더 장르적이면서, 좀 더 젊다. 능숙함은 앞선 두 작품에 비해 떨어질지 몰라도 자극적인 장르성은 더 강력하고, 현세태를 반영하려는 적극적인 야심이 느껴졌다.
동시대의 문제점을 다루다보면 분위기가 우울해질 수밖에 없는데, 그런 점을 우려한 듯이 세 작품 모두 발랄하고 유머러스한 태도를 유지한다. 그런 방식이 이해되는 또다른 이유는, 동시대의 문제를 다룬다면 자연스럽게 해결책에 대한 고민까지 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소설이 사회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반드시 내놔야 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소설가의 일이 아니지만, 작가는 이야기를 시작한 이상 뭔가 결말을 지어야 하는 상황에 처하는 것이다. 사회문제를 소재로 다루는 경우의 단점이랄까, 함정이라고도 말할 수 있겠다. 짐짓 발랄한 태도로 유머러스하게 동시대를 풍자하며 해결책까지 이야기를 끌고 가지 않기 위해서는 그 정도 톤을 유지하는 것이 맞다.

「조업밀집구역」의 경우는 그런 태도를 마지막까지 유지한 경우이고, 「토막」과 「알프레드의 고양이」는 뾰족하고 새로운 해결방식은 아닐지언정 문제점 이상으로 나아가려고 몸부림 친 흔적이 보인다. 「조업밀집구역」의 엔딩은 그래서 판타지로의 도피일 수밖에 없다. (현실로 튀어오르는 잉어를 보면서, 나는 영화 〈플로리다 프로젝트〉의 엔딩을 떠올렸다.) 작품 속 유머의 동력이 작가의 입담에 기대고 있는데, 이런 식의 유머는 호불호가 심하게 갈릴 수밖에 없다. 과연 책의 오프닝을 여는 가벼운 소극으로서 적당해 보인다.

「토막」은 호러적인 면을 적극적으로 끌어와 취업을 포기한 젊은이들을 다루고 있다. 〈시실리2km〉 같은 영화나, 이토 준지의 만화를 떠오르게 하는 상상력이다. 귀신 비슷한 것이 나오지만 그것은 손으로 만져지는 물리적인 면이 강조된다. 희망 없는 청춘들에 대한 구체적인 묘사가 정곡을 찌르는 날카로운 면이 있어서 마냥 웃으며 볼 수만은 없는 작품이었다. 단순히 취업 문제만을 다루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방안에 나타난 신체 토막‘이라는 것이 가지는 은근한 성적 뉘앙스 때문에 작품의 함의가 더 흥미로워졌다. 남녀의 방에 각각 이성의 신체 토막이 주어진 것이다. 그 토막은 옷을 입고 있지 않다. 작가는 한번도 혼자 사는 취준생의 성욕에 대해 언급하지 않았지만 충분히 그것에 대한 설명을 들은 것 같은 기분이다. 그들의 억압된 성욕은 기묘한 모양의 괴물로 다시 나타난 건지도 모르겠다.

「알프레드의 고양이」는 조금 지향점이 다르다. 페미니즘적인 사회문제를 다루면서도 굉장히 순진한 ‘정의‘를 내세운다. 그 순진함이 지닌 과격함 때문에 어떻게 보면 가장 급진적인 이야기일 수도 있겠다. 영화적인 서스펜스를 가장 적극적으로 가져온 작품이기도 했고, 주식이라거나 고양이, 히키코모리, 청소년 성범죄 같이 가장 동시대적인 문제를 많이 끌어온 이야기기도 했다. 어떻게든 결말을 향해 치닫는 전개가 위태로우면서도 시원하게 펼쳐진다.

각기 다른 경력과 스타일의 작가들이 모인, 꽤나 보기 드문, 그러면서도 아름다운 조합의 단편집이었다. 아마 여기 실린 작가들이 다시 하나의 단편집 안에 모일 일은 없을 것 같다. 하지만 각자의 갈래로 뻗어나가는 것을 상상해 보고 그것을 지켜보는 재미는 분명히 있는 것 같다. 작가들 모두를 응원하고, 그 개성을 잃지 말고 끝까지 나아가달라고 부탁하고 싶다. (모든 작품의 영상화도 기대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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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퍼 마이너리티 히어로 안전가옥 앤솔로지 6
범유진 외 지음 / 안전가옥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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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외로 작품들의 완성도가 많이 떨어져서 깜짝 놀랐다.

<캡틴 그랜마, 오미자>는 손 가는 대로 쓴 작품같다. 주제나 빌런, 결말 모두 이야기 흐름에 따라 즉흥적으로 만들어진 느낌이 강하다. 좋게 보면 의외의 전개이고, 나쁘게 보면 짜임새가 헐거워 보인다.

<서프 비트>와 <메타몽>은 설정이 용두사미가 된 경우로, 끝에 가서는 처음의 설정이 큰 의미가 없어진다.
<서프 비트>는 청소년물 특유의 감수성으로 뭉뚱그리며 마무리 한다면, <메타몽>은 나이브한 해피엔딩으로 뭉뚱그린다.
<천 개의 파랑>에서도 그랬지만, 천선란 작가는 누군가의 죽음에서 오는 슬픈 감정으로 작품을 마무리 짓는 경향이 있는 듯. 이번 작품의 경우는 그 슬픔이 좀 더 갑작스럽고 그것이 가져야 할 필연적인 의미가 부족해 보였다. 엔딩을 맺기 위한 슬픔 같은 느낌.
<메타몽>의 경우는 후반부가 너무 뻔해 문장들이 아무런 인상도 남기지 못한다. 그 초능력자들은 왜 모였어야 했을까. 모든 게 기능적이다. 제대로 된 안타고니스트가 없다는 게 이 작품의 가장 큰 문제가 아닐까 싶었다.
그러고보면 앞의 세 작품 모두 부족한 서사를 감정으로 만회하려한 것 같다.

<피클>도 용두사미의 혐의가 짙지만, 적어도 초능력을 뻔하지 않게 그리는 데 성공한다. (뻔하지 않은 초능력은 단순히 아무 말이나 갖다붙인다고 되는 일이 아니다.) 구성도 감각적이고, 연속해서 일어나는 반전도 매력있었다. 후반부로 가면서 초능력의 범위가 너무 넓어지면서 긴장감이 사라지는 게 안타깝다. 앞의 두 작품들도 그렇고 세계관의 규모를 통제하지 못한 마무리가 아쉽다. 초능력이 너무 흔해져버려 임팩트가 사라진다.

의외로 가장 재밌게 본 건 <사랑의 질량 병기>다. 자칫 불쾌감만 줄 수 있는 소재의 위험성에도 불구하고 기어코 설득하는 힘이 있었다. 무엇보다 많이 웃겼다. 글로 웃음을 준다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젊은 장르 작가들이 재치 있는(혹은 그런 척하는) 문장들로 얄팍한 유머 방식을 취하는 데 비해 이 작품은 잘 만들어진 상황 설정에서 웃음을 유발했기에 안정적이었다. 마무리까지 짜임새 있게 나아갈 수 있었던 힘은 바로 그런 탄탄한 상황 설정 때문이 아니었을까. 다른 작품들에서 볼 수 없었던 미덕이었다.

그런데 이 정도면 ‘슈퍼히어로‘라기 보다는 ‘초능력‘ 앤솔로지가 아닐까. 애당초 주최측의 슈퍼히어로에 대한 정의가 모호했던 게 아닐까 싶다. 어떤 작품들은 ‘슈퍼히어로‘의 요소를 억지로 우겨넣고 있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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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디스 워튼의 환상 이야기
이디스 워튼 지음, 성소희 옮김 / 레인보우퍼블릭북스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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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극적이지 않은 게 미덕인 우아한 환상 문학. 작가는 스산하고 미스터리한 분위기 조성에 공을 들인다.

인물들이 속내를 드러내지 않고 꽁꽁 숨기는 데서 서스펜스와 공포가 생기는데, 그런 면이 답답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부부 사이에서 특히 도드라진다) 간접적인 방식으로 미스터리를 슬쩍 내보이는 편.
그래서 수록작들 중 가장 직접적이었던 <충만한 삶>이 좋았던 건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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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식의 키워드 - 미래를 여는 34가지 질문
김대식 지음 / 김영사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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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의 결론보다, 결론에 이르는 저자의 지적 과시, 혹은 지적 생각의 흐름이 더 중요해 보인다. 때문에 모든 챕터의 결론이 굉장히 초라하거나, (교훈적이라는 의미에서)따분하거나, 조금은 꼰대스럽다. 미래를 내다보는 결론들이 특히 그런데, 과거(고전)에 얽매였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 만약 미래는 과거의 반복이라고 가정한다면 우선 과거 데이터를 기반으로 미래를 예측해볼 수 있다. 하지만 세상과 인생은 변곡점과 특이점이라는 예측 불가능한 함정으로 가득하다. 과거는 미래에 대한 힌트는 될 수 있겠지만, 미래는 언제나 반복성과 랜덤의 조합이다. // -본문 중에서

주제와 함께 제시된 미술 작품들도 그 연결이 억지스러울 때가 많다. 장식이나 과시에 머무르는 느낌. (표지와 삽입된 그래픽은 세련됐다) 저자의 지적인 유희에 초점이 맞춰져있기 때문인 것 같다. 그것이 독자의 지적 유희와는 큰 관련이 없어 보인다는 게 가장 큰 단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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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소의 맛 미메시스 그래픽노블
바스티앙 비베스 지음, 그레고리 림펜스.이혜정 옮김 / 미메시스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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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번도 최선을 다해 본 적 없는 소년이 난생처음 사랑에 닿으려 노력하는 소소한 에피소드. 결말은 성공이기도 하고 실패이기도 하다. 좋아하는 여자애에게 닿진 못했지만 불가능해 보이던 잠형을 해낸다.
성장은 언제나 그렇게 의도하지 않은 쪽으로 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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