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트란토 성 환상문학전집 2
호레이스 월폴 지음, 하태환 옮김 / 황금가지 / 2002년 7월
평점 :
품절


총평: 아침 드라마 같은 순수 재미만으로 추천해 줄 수 있는 고딕 소설의 아버지.
(재미-중상, 난도-중하)

고딕 소설의 시초라고 불리는 소설 『The Castle of Otranto』.
영국 문학사에서 서한(서간) 작가로 손꼽히는 호레이스 월폴(1717~1797)의 대표작.
이 소설의 공간적 배경처럼, 그는 훗날 자신의 별장을 고딕 양식으로 꾸미기도 했다.

(줄거리) 11세기, 오트란토 성.
영주 만프레드의 아들 결혼식 당일, 아들 콘라드는 갑자기 나타난 거대한 검은 투구에 깔려 급사한다.
모두가 불가사의한 사건에 당황하고 있는 와중에, 만프레드는 아들의 약혼자 이사벨라에게 자신과 결혼하자고 말한다.
기겁한 공녀 이사벨라는 도망을 가고, 영주 만프레드는 그녀를 뒤쫓는데...
며칠에 걸쳐 오트란토 성과 그 일대에서 벌어지는 스펙터클한 사건을 다루는 이야기.

(재미지다!) 18세기 중반의 시대적 상황을 고려하면, 이 책은 엄청난 도파민을 선사하는 소설이 아니었을까?
종잡을 수 없는 전개와 갑작스러운 반전의 연속은 재미없을 수가 없다.
이야기가 어떻게 펼쳐질지 가늠할 수 없게 하는 사건들은, 클래식한 이야기 구성을 예상하던 나의 정신을 번뜩이게 했다. A로 흘러갈 것 같던 이야기가 갑자기 다른 방향으로 튀어버리면서, 마냥 클리셰를 따라가지만은 않는다.
거대한 검은 투구와 같은, 오트란토 성에서 발생하는 불가사의한 현상 때문이 아니다.
등장인물들의 드러나는 정체와 놀라운 언행들 때문이다.

(다른 재미) 전지적 시점에서 인물들의 내면을 속속들이 보여주는데, 이는 또 다른 재미를 선사한다.
시시각각 변하는 마음과 불타오르는 정념은 인간의 갈대 같은 내면을 사실적으로 보여준다.
작중 악당이자 문제의 시발점인 폭군 만프레드의 내면도 숨김없이 묘사되는데, 유약하게 흔들리는 내면 묘사가 해당 인물을 마냥 미워할 수 없게 만들기도 한다.
그는 실제로 아무런 죄도 범하지 않은 이 농부를 용서해 주고 싶은 마음까지도 들었다. 만프레드는 아무 이유 없이 잔인성 자체를 즐기는 그런 잔인한 폭군은 아니었다. (50쪽)
같은 남자에게 마음을 빼앗긴 마틸다와 이사벨라가 서로를 경계하는 모습, 영웅처럼 등장한 기사가 방금 본 여자에게 마음을 빼앗기는 모습, 서로 격식을 차리다가 이판사판이 되는 모습 등 재밌는 묘사가 참 많다.
작중 다양한 러브라인과 구구절절 기나긴 대화도 재미의 한 축을 담당한다.

(고딕 소설) 고딕 소설을 ‘중세 고딕 양식 건물을 배경으로 한, 공포와 사랑의 혼합물‘로 정의해도 괜찮을까?
고딕 소설의 효시로 일컬어지는 『오트란토 성』은, 공포만 빼면 이 정의에 부합한다. (과학으로 설명할 수 없는 현상이 몇 가지 등장하는데, 그다지 공포스럽지 않다.)
개인적으로 고딕 소설의 핵심은 배경이 주는 분위기라고 생각하는데, 이 점에서 본다면 ‘오트란토 성‘은 충분히 합격이다.
중세 유럽 성이 주는 으스스하면서도 익숙한 이미지, 규모는 크지만 제한된 환경, 비밀통로가 있는 구조... 오트란토 성과 주변 환경이 주는 분위기 자체만으로도 매력적이다.

(총평) 고딕 소설이 주는 분위기, 소설 본연의 재미만으로 추천해 줄 수 있는 소설이다.
물론 아쉬운 부분도 있다.
급하게 종결되는 이야기는 확실한 단점이고, 연극을 해도 될 정도로 많은 대화로 인해 늘어지는 전개는 답답하기도 하다. (번역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중세 봉건사회의 여성관과 기독교적 색채의 결합으로, 여성 인물들 역시 답답하게 느껴질 수 있다.
한 답답하는, 소설과 상관없는 서문은 건너뛰어도 무방하다.
‘답답 쓰리 콤보‘에도 불구하고, 고딕소설의 시작점이라고 할 수 있는 이 작품에서, 아침 드라마급 반전과 전개와 재미를 볼 수 있음은 신선하다!
메이저 출판사의 세계문학 전집 라인업에 들어가도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