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을 잡는 과정이나 목적을 계몽으로 포장된
사회주의나 나찌 등의 모습을 보아왔고
오는날 한국 사회에서도 지겹게 보고 있다

지식인의 지위가 사제로 격상 된다는건
학문이 교리가 되고 이의를 제기 할 수 없게되어
결국은 부패하게된다

儒學이라는 동양학문을 儒敎라는 신성 불가침한
종교수준으로 격상시켜 조선 지식인안 사대부만의
기득권 지키미로써의 이념체계로 이용된 것과 같다.

계몽주의는 지식인을 도덕적 우주의 중심으로 격상
시키면서 예전에 사제들이 누렸던 지위를 지식인들
에게 부여했다. 이성은 계몽주의의 중심에 놓였고 
이성의 행사를 자신의 사명으로 삼은 이들이 계몽
주의의 핵심 인물이었다. 그리고 천계의 중심에 위치한 
지식인들은 사제 행세를 하고픈 유혹을 느꼈다. 
지식인의 활동이 사물의 중심에 있다면, 지식인이 
통치하는 게 낫지 않겠는가? 플라톤은 철인(哲人) 
왕에 대해 논했지만 본의는 아니었다. 계몽주의는 
가장 급진적인 사상도 가능하다고 믿었고, 따라서 
지식인이 계시적인 성경을 대체하는 이성적으로
추론된 이넘을 가지고 통치할 수 있었다.
레닌은 전쟁이 남긴 공백을 메우고 세계를 바꿀 권력을
추구한 지식인을 상징한다. 레닌은 세상과 단절된 
점잖은 지식인의 상과 정반대다. 그는 자기만의 생각에 
매몰된 교수가 아니었으며, 무자비한 논리를 통해
세계를 바라보았다. 이성을 섬기는 지식인은 엄청난 
만행을 저지를 역량이 있다. 레닌은 공포의 목적은 
공포심을 불어넣는 일이라고 말한 적이있다. 
당은 공포를 조장하기 위해 결성되었고 실제로 공포를 
~ 레닌은 붉은 군대를 조직했고 내전을 지휘했다.
이런 이들은 새로운 유형의 인간이었다 행동하는 
지식인이었다. - P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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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으로 철학하기 - 세상이 우리에게 질문을 던질 때
이하준 지음 / 책읽는수요일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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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지식인은 권력을 감시하고 비판하며 시민이 추구하는
역사의 지키미로서의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는 주장에
동의한다. 특정의 정파나 계파의 이권이나 권력을 목적
으로하지 않는 것이 전제되어야 한다
이시점에서 생각나는 유일한 지식인이 이어령 박사가
생각난다

오늘날 지식인은 커다란 심장, 가벼운 머리, 그럴듯한
몸가짐을 한다. 대중과 단절된 그들만의 세계에서 파벌
싸움에 매달리는 집단 자폐증 환자들이다.
그런 자폐증세를 보이는 자들을 지지하는 대중은
니체가 말한 최후의 인간으로 똥파리떼와 같다

각자 지지하는 자들이 타락하지 않고 잘될 수 있도록
감시하고 비판하는게 진정한 지지라고 생각한다

학교는 학생으로하여금 진실을 발견하고 옳고그름을
판단 할 수 있는 가치관을 가지도록 하여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인을 사회규범이라는 기준의 틀에
넣고 찍어내는 로보트로 만드는 교육을 해왔다
질문을 할 수도 없었고 지적에 해명을 할 기회 조차도
주어지지 않았던 7, 80년대 교육이 이제는 많이 바뀌
었겠지만 아직도 개선 할 점이 많아 보인다

숭유배불의 조선교육은 성리학만을 제외한 모든 사상과
가치가 폄하되고 말살 되었다.
유학은 사상이고 학문임에도 이념화하고 유교라는
이름의 종교화로 공신이 광신이 되었다
과거제도를 통해 성리학만이 중요한 가치가 되었으며
사농공상이 분명해졌다
조선은 仁, 禮를 주요 가치로 선비주축의 사대부에
의한 신권정치를 추구 하였으나 학파를 중심으로
당파를 만들어 권력투쟁을 위한 패거리 정치로 문제를
만들어낸 반면에,
일본의 경우 義, 智를 가치로 사무라이 문화로 강한
국방력과 상업을 통한 경제력을 가질 수 있었던것 같다
인, 예는 木火로 陽의 기운을, 의, 지는 金水로 陰의 기운
으로 구분 되는데 仁者樂山 智者樂水 인자한 사람은
산을 좋아하고 지혜로운 사람은 물을 좋아한다는게
양국가의 민족성과 상관이 있나 싶다.

오늘날 공교육은 간판이고 사교육을 통해 지식을 습득
고로 있는 듯하다. 어짜피 공교육이 그역할을 다하지
못할 것이라면 교과과정에 코스모스, 사피엔스, 칸트,
사서삼경, 지대넓앝1, 시민의 교양, 톨스토리 문학, 열하
일기 등을 자유롭게 선택해서 교육 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스스로 질문하고 답을 찿아갈 수 있는 창조
교육이 되도록 하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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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정신의 분열]

오스만투르크의 동로마 콘스탄티노플이 점령으로
지중해와 육로를 통한 인도와 중국과의 통상길이
막히게된다.
이를 타개하기 위한 포르투칼 엔히크 왕자의 항로
개척을 시작으로 대항해 시대가 열리게 되었다.

이베리아인들의 그리스도교 전도와 대박 비즈니스
라는 목적에 따라, 국가와 영적세계의 권력이라는
두개의 칼을 휘두르며 신대륙과 아프리카, 아시아
대륙을 약탈하고 식민지화 한다

이베리아, 서유럽으로 이동한 대항해는 양차대전으유럽이 해양패권을 잃게됨에 따라 1944년 미국이 제안하는
브레큰우즈 체제를 통하여 자유항해와 자유무역이
가능하게 되었다.

동중국해, 남중국해의 패권과 인도양과 태평양으로의
확장을 도모하는 중국은 자유무역에 대한 새로운
도전이 되고있다.

역사는 도전에 대해 응전하는 과정을 겪으며
발전해 왔다.








엔히크의 영혼이 코르테스의 영혼과 결합되자, 
무모한 전사의 기질을 가진 지식인이 탄생했다. 
이러한 인물은 지적인 삶을 살았지만 관습에 얽매
이지않고 자신이 선택한 영역에 뛰어들어 진실을 
밝혔다. 
그는 무모한 전사와 마찬가지로 자신의 양심과 이성, 
의지가 부과하는 한계 외에는 그 어떤 한계도 받아
들이지 않았다. 위대한 지성들에게 이러한 기질이 
주어지자, 그들은 자연과 인간이 처한 여건에 대한 
신비롭고 장엄하고 위험한 진실을 발견할(대항해의)
관문을 열었다. 
그들 중 최고로 뛰어난 이들은 그 위험을 잘 알고
있어 섣불리 진실이라고 주장하지 않있다. 
이에 못 미치던 이들은 고상하고 불가피한 거짓들을 
박살내 버렸다. 
마치 아무런 대가를 치르지 않아도 된다는 듯이..... 
가장 위험한 이들은 평범하고 진부한 사고를 지닌
자들이다. 이들은 위대한사상가들의 식견을 이용해 
자신들이 선택한 신념을 정당화하고 불쾌한 어떤 
것이 본래 진실이었다고 강변했다. 단지 아무것도 
존중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범인이 천재의 권리를 
주장했다. 
위대한 인물들과 진부한 凡人 모두의 수중에서 유럽
은 萬갈래로 쪼개졌고, 극소수는 뛰어났지만 대부분은
진부하고 따분했다. 유럽의 정신은 시간이 지나면서 
유럽의 지리처럼 분열되었고, 결국 유럽은 제국과 
영혼을 모두 잃게 되었다. - P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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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덴동산에 살던 아담과 이브는 일차원적 인간으로
살았다. 행복한 바보를 뱀이 꾀어서 선악과를 먹도록
함으로써 신의 체제를 위반하여 태어나지도 않았던
후손인 인류에게 원죄라는 짊을 지우게 하였다.
그래서 결국 1차원 이기를 거부하며 반목하고 다투는
이차원적 인간이 된 것일까?

행복지수가 가장 높다는 부탄 사람들에게 니들의
경제수준은 구리고 국가체체는 부정하니 떨쳐 일어나
싸우라고 계몽을 하여야 할까?

역사는 도전과 응전을 통하여 때로는 발전하기도하고
한편으로는 부와 권력이라는 욕망을 채우기 위해
반인륜적으로 타락해가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세상을 뒤집어야만 진보적이고 발전하는 사회라 볼 수
없다. 스토아적이거나 노자나 부처의 삶이 좋을 수도
있다. 일차적인 것이 본질적일 수도 있을 것이다

행복의 조건이 지식이 될 수도 있고 단지 감정적 만족
일 수도 있음을 인정해야 한다.
정신적 행복에 비하여 물질적 행복이 천하다는 생각
또한 편견 일 수 있기에....

현실적인 것은 이성적이며 이 체제는 원하는 것을 
베푼다는 ‘행복의식‘은 사회 행동으로 번역된 기술적 
합리성의 한단면인 순응주의를 반영한다.

일차원적 인간은 사회를 의심하거나 질문을 던지지 
않는다.
사회가 안겨주는 풍요와 안락에 빠져 현실을 긍정하고, 
체제에 완전히 순응하는 ‘행복한 바보‘로 살아간다. 
그는 성찰하는 능력이나 사회의 또 다른 가능성에 대한 
상상력이 전무하며, 스스로사유하지 못하는 ‘단세포적‘ 
삶을 산다. - P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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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시작된 전쟁 - 북한은 왜 전쟁을 일으킬 수밖에 없는가
이철 지음 / 페이지2(page2)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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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의 포화에 끌려들어갈 수 밖에 없는 상황을
주도적으로 끌고 가야한다는 작가님의 솔루션이
창의적이다. 위기를 기회로 바꿀 수 있는 이상황은
멍분에서도 실리에서도 바람직해 보인다

전쟁은 언제나 호전적인 북한이나 중국만의 전유물인
듯 생각해왔다. 저들도 우리만큼이나 두려울 것이다

대만으로 망명한 국민당정부 또한 자기들 주도의
통일을 생각해 왔으나 이제는 중과부적이다
홍콩의 전례를 보니 대만 또한 하나의 중국속에서
자유민주라는 체제유지가 힘들어 졌다

적화통일을 추진해온 북한 또한 체제경쟁에서 완패
했음을 알고 있고 이제는 생존을 위해 핵과 미사일에
집착하고 있는 것이다.
감정은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백두혈통의 권력을 유지
함에 있을 것이다.
체제유지와 그들의 안전을 보장하는 출구를 열어
주어야한다
고려가 경순왕을 예우하며 통일신라를 평화적으로
복속 했듯이 권력유지라는 당근과 아울러 전쟁도
불사 할 수 있다는 우리의 의지를 보여야 한다.
우리에게는 북한을 압도하는 국력이 있다.
한민족이 힘을 합쳐 동북아를 주도하는데 김정은의
결심과 통일을 위한 역할이 중요하다는점을 인식 할
수 있도록 설득 해야한다.
협상은 상대의 허를 찌를 수 있는 대안이 있어야한다
그런점에서라면 오바마 보다는 트럼프의 막가파 전략이
필요하다. 미국의 동창리 폭격을 사정하며 막았던 YS,
통제하지 못한 DJ의 햇빛정책, 대화만으로 종전을 하려
했던 자들이 오늘날 북한을 핵보유국으로 만드는데
일조 했음은 아쉽다. 대화, 협상, 지원이라는 전략적
인내도 그리고 강한 자주국방의 물리력도 필요 하지만
우선적으로 상황을 통제 할 수 있는 유언하고도 과감한
판단력이 우선되어야 한다. 아무일도 못하고 현상을
유지하는건 상대가 전쟁준비를 하도록 돕는 것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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