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매일 채소롭게'를 계속 읽자. 오늘은 연근이다. 'Part 1. 우리의 시작을 소개합니다'의 마지막 글인 '연근. 구멍을 숭숭 뚫어 놓고'로부터 옮긴다.

By 국립국어원


연근 - Daum 백과 https://100.daum.net/encyclopedia/view/14XXE0036705






내가 연근을 동경하게 된 이유를 고백하자면 내가 가진 정반대의 성격 때문이다. 나는 빈틈을 견디지 못하는 성격이었다. 시간도, 할 일도, 능력도 모두 빽빽하게 채워져 있어야 했고, 스스로의 빈틈을 찾아내서 쉬지 않고 몰아붙여야 마음이 놓였다. 언제나 쓸모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는 강박이 있었다.

요즘은 나에게 구멍을 만들어 주려고 노력한다. 더 이상 그 틈이 ‘빈틈’이 아니란 것을 안다. 꽉 찬 부분이 구멍의 틈을 지탱해 준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오히려 비어 있는 부분이 꽉 찬 부분을 지지해 주고 있다. 연근의 구멍도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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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 못 이루게 된 이 인물은 잘 시간에 독서를 열심히 하고 있다. 그녀는 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니나'를 집중해서 읽는데 저자 하루키 본인의 독후감으로 보여 흥미롭다.

안나 카레니나 By Genrikh Matveevich Manizer (1903)







남편이 깊이 잠든 것을 확인하면 나는 거실 소파에 앉아 혼자서 브랜디를 마시며 책을 펼친다. 처음 일주일 동안에 『안나 카레니나』를 연거푸 세 번 읽었다. 다시 읽으면 읽을수록 그곳에는 새로운 발견이 있었다. 그 장대한 소설에는 다양한 수수께끼와 다양한 시사가 가득 차 있었다. 세공細工한 상자처럼 한 세계 속에 더 작은 세계가 있고 그 작은 세계 속에도 좀 더 작은 세계가 있다. 그리고 그런 세계들이 복합적으로 하나의 우주를 형성하고 있었다. 그 우주는 내내 거기에 있으면서 독자에게 발견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예전의 나는 기껏해야 그중 한 조각밖에는 이해하지 못했다. 하지만 지금 나는 그것을 분명하게 꿰뚫어 보고 이해할 수 있었다. 톨스토이라는 작가가 무슨 말을 하고 싶었는지, 독자가 무엇을 읽어내기를 원했는지, 그 메시지가 어떻게 유기적으로 소설로서 결정結晶을 이루었는지, 그리고 그 소설의 무엇이 결과적으로 작가 자신마저도 능가해버렸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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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라카미 하루키의 '잠'을 읽었다. 나로서는 오랜만에 읽는 그의 작품으로서 잠이 잘 오지 않는 한여름의 열대야에 읽으면 더 실감날 것 같다.

Sleeplessness, 1920 - Ivan Milev - WikiArt.org


* 소설집 'TV 피플' 수록작 '잠'을 단행본으로 내면서 고쳤다고 한다. 






나는 그때까지 잠이라는 것을 이른바 죽음의 원형으로 파악하고 있었다. 즉 잠의 연장선상에 있는 것으로서 죽음을 상정하고 있었다. 죽음이란 한마디로 평소의 잠보다 훨씬 더 깊은, 의식이 없는 잠―영원한 휴식, 블랙아웃이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어쩌면 그렇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죽음이란 잠 같은 것과는 전혀 다른 종류의 상황인지도 모른다―. 그건 어쩌면 내가 지금 보고 있는 한없이 깊은, 각성한 암흑이 아닐까. 죽음이란 이런 암흑 속에서 영원히 각성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래서는 너무도 끔찍하다고 나는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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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사준비생의 도쿄'란 책으로부터 옮긴다. 무라카미 류의 글이 인용되어 있다. 업이건 취미건 좋아하는 일을 찾는 것 자체가 쉽지 않다.


"너무나 좋아해서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몰두하게 하는 뭔가가 있다면, 젊은이들은 그것을 취미로 하는 아마추어가 아니라 일로 삼는 프로가 되는 게 자연스러운 흐름이다."

일본을 대표하는 작가 중 한 명인 무라카미 류의 저서 《무취미의 권유》에 나오는 문구입니다. 《무취미의 권유》는 취미가 없기를 바라는 것이 아니라 몰두하고 싶은 일을 깊게 파고들어 업業으로 삼을 만큼 전문가가 되라는 뜻입니다. 취미에 그친다면 시간을 세련되게 보낼 순 있어도 삶을 요동치게 할 순 없기 때문입니다. 그가 휴식은 권장하지만, 취미는 권장하지 않는 이유입니다.

취미는 취향으로, 취향은 개인의 업으로 발전할 수 있습니다. 취향은 그 분야에 대한 애착을 갖게 하고, 고민의 깊이를 더하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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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프루스트'에 실린 불문학자 김주원의 '프루스트에게 피아노에 대해 배운 것'로부터 옮긴다. 저자소개란에 피아니스트라고도 적혀 있다. 필자는 이 글을 쓰기 얼마 전에 돌아가신 본인의 외할머니를 화두 삼아 아래와 같이 썼다.

La Plage de Cabourg 1910 By René-Xavier Prinet https://terms.naver.com/entry.naver?docId=976976&cid=46702&categoryId=46753 (오르세 미술관)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 나온 발베크 해변의 밑그림이 된 카부르는 노르망디 지방의 칼바도스 주에 위치한다. https://en.wikipedia.org/wiki/Cabourg


'프루스트 멜로디'란 책을 발견했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가 반환점을 돌아 후반부로 접어들 무렵, 소설의 주인공 또한 외할머니를 여읜다. 다만 슬픔은 두세 계절 뒤에 찾아온다. 상실을 실감하지 못한 주인공은 여느 때와 다름없이 사교계 살롱을 기웃거리다 발베크 해변으로 여름휴가를 떠난다. 도착해서 호텔에 짐을 푸는 순간, 몇 해 전 할머니를 모시고 처음 그곳에 도착했을 때가 떠오른다. (중략) 뒤늦게 애도의 감정이 밀려들고, 모든 것이 공허한 휴양지에서 주인공은 아무것도 할 수가 없어 방으로 다시 올라온다. 들려오는 피아노 소리.

주인공이 할머니와 함께 처음으로 발베크 호텔에 머물렀을 때, 둘은 얇은 칸막이벽을 사이에 두고 잠자리에 들었다. 몸이 약한 손자에 대해 염려가 많았던 할머니는 혹시나 필요한 일이 있으면 벽을 두드려서 연락하라고 당부한다. 주인공이 시험 삼아 벽을 두드리자, 금방 그곳으로 가겠다고 일러주는 듯한 침착한 노크 소리가 되돌아온다.

할머니가 세상을 떠나고 발베크로 돌아와 슬픔에 젖어 있던 날, 주인공은 호텔 방의 칸막이벽을 보며 생각한다. 저 벽은 할머니가 연주했을지도 모르는, 그래서 할머니의 터치로 아직도 진동하고 있을지 모르는 피아노 같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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