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오늘의 포스트: 영화 '파묘'의 굿에 쓰인 돼지를 보고 나서  - 같은 감독의 '검은 사제들'에서도 돼지는 중요한 존재로 등장한다 - 돼지고기를 먹지 않는 문화권의 금기 사유를 찾아보았다.

사진: Unsplashantonin haab


리처드 랭엄 특강 ‘우린 왜 요리를 할까?’ https://www.lecturer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173080





랭엄은 이러한 금기가 사람들로 하여금 소속감을 느끼게 한다고 믿는다. 그는 동아프리카에서 일했을 때 여러 사회 계층의 다양한 음식 금기를 경험했다고 말했다.

다른 과학자들도 랭엄의 주장에 동의하며 문화적 구분의 지표로서 금기의 역할을 강조했다. 육류 금기를 따르는 것은 사람들에게 공동체의 일원이라는 소속감을 준다.

인도의 쇠고기 금기는 이슬람교도의 부상과 힌두교가 이슬람교와 분리되어야 한다는 개념의 부상과 관련이 있다.

이와 유사한 방식으로 중동의 돼지고기 금기는 그리스도교로부터 이슬람교와 유대교를 차별화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8)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어서 늑대를 잡자.


19세기 프랑스 By François Fleury-Richard


소설가 김지연은 스릴러 '빨간 모자'를 썼다.





빨간 모자는 가려던 길을 벗어나서 숲 속으로 꽃을 찾으러 나섰다. 꽃을 한 송이 꺾고 나면 안쪽에는 더 아름다운 꽃이 피어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고, 그렇게 점점 깊은 숲 속으로 소녀는 들어가게 되었다. 하지만 늑대는 할머니가 사는 집을 향해 곧장 걸어가서 문을 두드렸다.

빨간 모자는 꽃을 찾아 이리저리 다니다가 꽃다발 하나를 만들 만큼 꽃이 모이고 이 이상은 들고 갈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자 번쩍 할머니가 떠올랐다. 소녀는 서둘러 할머니에게로 갔다. 집에 도착해 보니 문이 열려 있어 빨간 모자는 놀랐다. 방 안으로 들어서는데 묘한 느낌이 밀려왔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8)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겨울 간식집' 수록작이다. 그러고 보니 이번 겨울에 유자차를 한 번도 안 마셨네.

유자차 By 국립국어원






그해가 다 가기 전에, 처음으로 기온이 영하로 내려간 날에 밀봉해 두었던 병 하나를 열었다.

"삼촌, 한번 마셔봐."

삼촌은 뜨겁지도 않은지 김이 모락모락 나는 유자차를 벌컥 들이켰다.

"맛있다."
"달지?"
"응, 달아."
"너무 많이 달지는 않아?"
"왜 어때서. 유자찬데. 너무 달아야지."

(김지연, 유자차를 마시고 나는 쓰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15)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25-05-14 20:1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5-05-14 21:21   URL
비밀 댓글입니다.
 

경칩, 활짝 핀 매화 https://v.daum.net/v/20250305130311367 며칠 전 경칩이 지나갔다.


아동문학가 방정환이 1920년대에 번안한 그림 동화 '개구리 왕자'는 왕자가 개구리로 변한 기간이 3년으로 구체화되어 있다. 하인 하인리히는 이름이 없어지고 애통하여 가슴이 터질까봐 두른 쇠띠도 사라졌다.

The Frog Prince, c.1890 - Marianne Stokes - WikiArt.org






개구리가 변하여 왕자가 되었다는 소문이 나자, 이웃나라에서는 황금 마차를 보내어 왕자님을 맞으러 왔습니다.

3년 전 왕자가 개구리로 변한 것을 보고, 이 날까지 울고만 지내던 왕자님의 늙은 시종이 이 소리를 듣고 모시러 온 것입니다.

3년 동안 울고만 지내던 늙은 시종이 왕자님과 왕녀님을 황금 마차에다 모시고, 자기네 나라로 돌아갈 때에 마음이 얼마나 기뻤겠습니까.

그보다도 저 이웃나라 임금님이 3년 전에 잃어버린 아드님을 다시 만날 때 얼마나 기꺼웠겠습니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8)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체호프와 고리키(1900) By Леонид Валентинович Средин (1860-1909) 체호프는 1860년 1월 생이고 고리키는 1868년 3월 생이다.






막심 고리키는 체호프의 작품이 갖는 의미를 다음과 같이 말했다. 

"안톤 체호프처럼 인생의 사소한 것들이 지닌 비참함을 명료하고 세심하게 이해한 사람은 없었다. 소시민적 일상의 희미한 혼돈 속에 놓인 인생들, 그들의 부끄럽고 우울한 면을 이처럼 냉정하고 사실적으로 그려 낸 사람은 지금까지 없었다. 그의 적은 세속성이었다. 평생 세속성과 싸웠고, 그것을 비웃었고, 침착하고 날카로운 펜으로 묘사했다. 첫눈엔 모든 게 좋고 편리하게 정돈된 것처럼, 심지어 반짝이는 것처럼 보이는 곳에서도 그 안에 담긴 세속의 유혹을 발견해 냈다." - 작품 해설 | 질문을 던지는 작가 체호프, 그가 그린 여성 인물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9)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