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경리 산문선 '꿈꾸는 자가 창조한다'로부터 옮긴다. 원주에 살게 된 저자는 산 이야기를 하다가 산 정상에 꽂는 깃발로 시선을 옮겨간다.

원주 시내에서 보이는 치악산(2018년 1월 10일) By Seohae1999 - 자작, CC BY-SA 3.0, 위키미디어커먼즈






바람에 나부끼는 깃발, 그러면 그 깃발은 무엇이냐.

도전하여 얻은 승리의 표상(表象)임에는 틀림이 없겠는데 인내와 단련과 슬기로써 승리의 희열(喜悅)을 맛보려고 찾아가는 사람은, 그러나 그들은 걸음을 멈출 수도 있고 되돌아설 수 있는 선택의 여지가 있다. 반대로 도전받는 사람, 저 헐벗은 겨울나무같이 마지막 한계까지 시간을 견디어야 하는 사람, 그들이 대다수라는 사실을 우리는 잊고 사는 것같다. 산다는 데 있어서 도전함은 주(主)가 아니요, 도전에 대하여 그것을 뚫고 나가는 것이 주임을 우리는 잊고 있는 것이다. 산다는 것은 치열한 생명(生命) 그 자체요, 결코 시행(試行)이 아닌 것을 우리는 언제부터 그것을 잊었을까. - 5. 생명은 ‘시행’ 아닌 진실 자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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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리 산문집 '꿈꾸는 자가 창조한다'는 작가의 원주시대를 담고 있다. 


원주 토지문화관 (2023년12월6일) By Youngjin - 자작, CC BY-SA 4.0







원주(原州)로 내려와서 햇수로 5년이던가. 그동안 조석으로 산을 바라보는데 나는 한 번도 감동한 적이 없다. 냉담하고 무관심하게, 무연(無緣)한 타인(他人) 대하듯이, 아마 산도 내게 그러했으리라. 산은 나를 부르지 않았고 나는 산에 들어갈 생각이 없었다.

그는 너무나 컸고 나는 너무나 작았기 때문이었던가. 하기는 어릴 적부터 산을 보고 감동했던 기억은 별로 없다. 산이란 동서남북 선 자리에 따라 그 모양새가 달라서 막연하고 추상적인 것이 아닌가 싶어진다. 일단 산속으로 들어가면 더욱 그러하다. 관습화한 의식 속에 산이란 개념은 있되 실제 산은 없고 구체적인 장소가 연이어져 있을 뿐이다. 막연하고 알 수 없는 것, 그래서 사람들은 정상(頂上)에 깃발을 꽂으려 하는 것인지 모르겠다. - 5. 생명은 ‘시행’ 아닌 진실 자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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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원평 작가의 첫 소설집 '타인의 집'에 실려 있는 '아리아드네 정원'은 '나의 할머니에게'(윤성희,백수린,강화길,손보미,최은미,손원평 공저) 마지막 수록작이다.

Ariadne, 1890 - George Frederick Watts - WikiArt.org


cf. 손원평 신작 '젊음의 나라'를 담아둔다. 






손원평의 「아리아드네 정원」은 기억 속 혹은 지금 여기의 할머니가 아닌, 근미래의 할머니를 그린다. 이때 ‘할머니’는 단어에 담기기 마련인 온기나 질감을 잃고, 그저 사회가 감당하기 어려워진 "늙은 여자"(199쪽)를 지칭할 뿐이다.

청소와 말동무를 해주러 유닛에 방문하는 20대의 복지 파트너들은 떨어진 출산율을 해결하기 위해 정부가 이민자 수용 정책을 펼치며 생겨난 이들의 자녀다. 바로 그러한 처지 때문에 차별받는 젊은 그들이 말한다.

"가장 답답한 건 젊다고 뭐든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거예요. 젊음은 불필요한 껍데기 같아요. 차라리 몸까지 늙었으면 좋겠어요. 남아 있는 희망도 없이 긴 시간을 견뎌야 한다는 건 절망보다 더한 고통이니까요."(219쪽) - 발문_황예인 · 아직은 아니지만, 동시에 이미 할머니가 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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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체호프. 단편집 '사랑에 관하여'(김현정 역) 중 '로트실트의 바이올린'으로부터 옮긴다. 주인공은 바이올린을 연주하는 장의사이다.

Violin and candlestick, 1910 - Georges Braque - WikiArt.org


* 잘 알려진 친숙한 배우들이 읽는 커뮤니케이션북스 오디오북 시리즈를 좋아한다. 정동환 배우가 '롯실드의 바이올린'(강명수 역)을 낭독했다.





"야코프!" 마르파가 불쑥 불렀다. "나 죽어요!"
야코프는 아내를 쳐다보았다. 열이 나서 장밋빛이 된 얼굴은 평소와 다르게 환하고 기쁨에 차 있었다. 늘 창백하고 소심하고 불행한 얼굴에 익숙했던 브론자는 순간 당황했다. 아내는 실제로 죽어 가면서 드디어 이 오두막에서, 관들에서, 야코프에게서 영원히 떠나게 됨을 기뻐하는 듯했다……. 그러면서 천장을 바라보며 입술을 실룩거렸는데, 행복한 표정으로 자신의 구원자인 죽음을 보았는지 천사와 속삭였다. - 로트실트의 바이올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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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9-09 20:5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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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9-09 20:5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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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0-15 19:1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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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셀 서양철학사의 칸트 편을 읽는다.

By Bysmon - Own work, CC BY-SA 4.0, 위키미디어커먼즈


칸트와 스베덴보리는 이름이 같다. 





일찍 일어나고 늦게 잠드는 것보다 회의주의자의 논증 탓에 고통을 더 많이 겪던 시기에, 칸트는 『형이상학의 꿈에 예시된 유령을 보는 자의 꿈』(1766)이라는 기묘한 제목의 책을 썼다. ‘유령을 보는 자’는 스베덴보리Emanuel Swedenborg(1688~1772)98인데, 신비주의 체계를 담은 저술을 세상에 내놓았지만 네 권밖에 팔리지 않았다. 세 권을 산 사람은 알려지지 않았지만 한 권은 칸트가 구입했다. 칸트는 농담 반 진담 반으로 ‘공상적인’ 스베덴보리의 체계가 정통 형이상학과 별반 다르지 않다고 암시한다. 그렇지만 스베덴보리의 모든 면을 낮추어 본 것은 아니다. 칸트의 저술에서 많지는 않지만 신비주의 색채가 드러나는데, 이것은 그가 ‘대단히 숭고한’ 사람이라고 평한 스베덴보리에 대한 감탄을 표현한 것이었다.

98 스웨덴의 종교적 신비주의자다. 젊은 시절 과학과 철학에 몰두했고, 이후에 성서를 해석하고 자신의 경험을 영적 세계와 관련짓는 일에 헌신했다. 지상과 천국 사이에 유령들이 존재하는 영역을 스베덴보리 영역이라고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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