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관에서 표지에 이끌려 펼쳐 보았다. 신여성-모던걸 특집이라 특별하다. 시대와 투쟁하고 타자와 불화하면서도 자신에게 진실하고 정직하게 살려고 애쓴 그 분들에게 사랑과 존경을 바친다.
나혜석이 그린 해인사 풍경(1938) 퍼블릭도메인,위키미디어커먼즈
서른세 명의 아이가 털실로 모자를 짜고 있다. 서른세 명의 아이가 한꺼번에 모자를 짜고 있어서 눈이 멈추지 않는다. 기분이 멈추지 않는다. 서른세 명의 아이는 모자를 다 짜면 일제히 모자를 쓰려고 한다. 희수에 닿으려 한다. 수연에 닿으려 한다. 눈은 눈을 보다가 눈을 놓친다. 발을 헛디딘다. 습자지를 만지다가 습자지를 적시는 슬픔. 서른세 명의 아이가 발을 헛디뎌서 서른세 명의 아이는 서른세 명의 아이를 놓친다. 눈이 그친다. 아이들을 일으켜 세울 수가 없다. (‘날씨‘ 전문)
March Sun, Pontoise, 1875 - Camille Pissarro - WikiArt.org
어느 날 운명이 찾아와나에게 말을 붙이고내가 네 운명이란다, 그동안내가 마음에 들었니, 묻는다면나는 조용히 그를 끌어안고 오래 있을 거야.눈물을 흘리게 될지, 마음이한없이 고요해져 이제는아무것도 더 필요하지 않다고 느끼게 될지는 잘 모르겠어당신, 가끔 당신을 느낀 적이 있었어,라고 말하게 될까.당신을 느끼지 못할 때에도 당신과 언제나 함께였다는 것을 알겠어,라고.- 서시(일부)
오래 전부터 숙제처럼 여기던 책.
Teacher at the Yellow Table, 1944 - Henri Matisse - WikiArt.org
변화가 더딘 사람도 3년쯤 지나면 마음의 힘을 많이 갖게 된다. 겉으로는 고요한 시간을 보내는 듯해도 내면에서는 깨지고 아파하고 재편성하는 시간이 지나는 셈이다. 이들은 한순간 휘몰아치듯 변화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모든 이들에게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변화는 다들 얼굴 표정이 온유하고 아름다워진다는 것이다. - P93
나혜석의 이 단편소설이 춘원 이광수의 초기작 '어린 벗에게'에 대한 비판적 패러디일 수 있다는 국문학자 양문규 교수님의 해설이 유익하다. 그리고 외국 여행 후기에 포함된, 음식과 관련한 이 작품의 설명도 감상에 도움이 되었다(아래 링크).
https://brunch.co.kr/@mkyangcd/65 나혜석의 깍두기 이야기
https://brunch.co.kr/@mkyangcd/165 비엔나의 슈니첼과 나혜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