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편지는 식민지주의가 팽배했던 시대에 태어나 그 어떤 것에 의해서도 식민지화되기를 거부했던, 그리고 어떤 고통과 배반들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삶을 사랑하기를 포기하지 않았던 나의 할머니, 나의 어머니, 그리고 나의 세대 삶의 진실의 결정이다. '사리' 같은 이야기들이다.
우리 중 거의 모두가 완벽하지 않은, 자기 문제에 싸여 고민하는, 정신적으로 성숙하지 못한 부모 밑에 자라났기 때문에 우리들이 필요로 하는 만큼의 사랑과 격려를 충분히 받지 못한 경우가 많아.
여성들이 '자신을 믿고 사랑한다'는 것은 거의 종교적일 정도의 회개와 결단, 그리고 실천을 요구하게 되지. 자연스럽게 자신을 믿고 사랑하기가 어렵기 때문에 그렇게 하기로 결단하고 대단한 노력을 해야 해.]
저자는 조카딸에게 주는 편지 형식으로 썼다.
이모가 태어날 때 너의 할아버지는 거의 50대 중반이셨어. 이모는 너의 할아버지가 인생의 산전수전을 다 겪으신 후 낳고 키운 유일한 아이였기 때문에 딸이라는 생각보다는 하나밖에 없는 자식이라는 생각으로 극진한 정성과 사랑을 쏟으신 것 같아.
내게 열 개쯤 되는 인형들이 있었는데, 다 아버지가 만들어주신 거야. 손수 바느질해서 그 안에 솜을 넣고 꿰매서 다 다른 얼굴들을 그려주셨어. 그리고 나무를 사다가 인형들의 집, 옷장을 만들고, 거기에 한지를 바르고 색깔을 칠해서 주셨지. 인형옷도 직접 만들어주시고. (중략) 매일매일 한국 전설, 한국 동화 이야기를 잠들 때까지 해주셨지. 주인공을 다 여자아이로 바꿔서 말이야.
중요한 사실이 뭔지 아니? 기가 죽으면 그때부터 너의 인생은 끝난다는 거야. 물론 너의 몸은 아직 살아 있지. 그러나 기가 죽는다는 것은 생명력, 창조력, 재생력이 없어진다는 것과 마찬가지야.
어떻게 보면 제일 똑똑한 아이들이 제일 먼저 깨지는 것 같아. 이상과 현실의 차이가 너무 크기 때문이지. 현실을 거슬러 올라간다는 것이 너무나 큰 두려움을 유발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 공포를 못 견디고 일찍 타협을 시작하는 거야.
자기들을 분노하게 만드는 대상들에게 정말 미친년처럼 분노를 표현하는 것. 그것이 보고 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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