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스트 2024년 5.6월호 리뷰 중 리디아 데이비스 소설집 '불안의 변이' 소개 글이 흥미롭다. 읽고 싶어지게 만드는 서평이다.




나는 리디아 데이비스의 이야기가 가진 실험적인 형태나 특징적인 문체가 다음과 같은 인식으로부터 비롯했다고 생각한다: 삶의 어떤 지점에든 닻을 내리는 일은 불가능하다. 그 이유는 내가 스스로 선택했다고 믿는 삶의 중요한 문제들이 실은 ‘나’를 배제한 채 작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작가는 글이 ‘삶의 핵심’이라는 이름의 강 속으로 가라앉지 않게 하는 데 지대한 관심을 보인다. 거의 지독하다고 할 만하다.

‘삶의 핵심’이라는 이름의 강 속으로 문장이 가라앉기 시작한다고 해서 그것이 핵심의 핵심, 그러니까 ‘삶의 핵심’이라는 강의 핵심에 다다르는 일은 없을 것이다. 그런 일이 일어난다고 해도 우연일 뿐. 이것이 리디아 데이비스의 글이 시종일관 보여주는 냉소적인 유머를 설명해준다. 강은 흐르고 있고, ‘삶의 핵심’도 흐르고 있다.

이 강의 어느 지점에 문장을 가라앉혀야 원하던 목표 지점에 안착하게 될지는 모르는 일이며, 설령 그 지점을 알아낸다고 해도 문장을 원하는 지점에 안착시키는 일은 거의 불가능하다. - 김유림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8)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체호프 희곡 '갈매기'(박현섭 역)가 아래 글의 출처이다.

Colette Dumas Lippmann, Geneviève Straus et Guy de Maupassant(1889) Par Giuseppe Primoli







니나 그건 무슨 책이에요?

아르카디나 모파상의 『물 위에서』예요. (혼자 입속으로 몇 줄을 읽는다.) 이 뒤로는 재미도 없고 사실 같지도 않아. (책을 덮는다.) 왜 이렇게 마음이 안정이 안 될까. 그런데 우리 콘스탄틴에게 무슨 일이라도 있나요? 왜 그렇게 따분하고 시무룩한 얼굴로 있지? 그 애는 하루 종일 호수에서만 지내고 있으니 통 얼굴을 볼 수가 없네요.

마샤 그 사람은 지금 마음이 편치 않아요. (수줍어하며 니나에게) 부탁인데, 그 사람 희곡을 낭독해 주세요!

니나(어깨를 움찔하며) 듣고 싶으세요? 그 희곡은 너무 재미없어요! - 제2막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5)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을유세계문학전집 '체호프 희곡선' 중 '갈매기'로부터 옮긴다.


사진: UnsplashMarcel Strauß





속물스러운 장면과 대사들 속에서 가정의 일상사에 써먹을 좀스럽고 뻔한 도덕이나마 건져 내려고 애쓰는 걸 보노라면, 그리고 천편일률적인 연극들 속에서 하나같이 똑같고 똑같으며 똑같은 짓거리를 반복하는 걸 보노라면 저는 모파상이 자신의 머릿속을 짓누르던 속물스러운 에펠탑으로부터 도망쳤듯이 멀리멀리 도망치고 싶습니다. - 제1막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4)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현대문학 '세계문학 단편선 09 기 드 모파상'(최정수 역) 두번째 수록작 '물 위'는 미리보기로 전문을 다 읽을 수 있다.

Pixabay로부터 입수된 Gal-Cruz님의 이미지



모파상은 1850년 생이다.





1876 불안증이 시작되고 심장 이상으로 진찰을 받음. 3월 《르 뷜르탱 프랑세》에 게재된 단편 「물 위」로 재능을 인정받음. 10월에 「귀스타브 플로베르 연구」를 기 드 발몽이라는 필명으로 발표함. 졸라를 중심으로 한 자연주의 그룹에 참여함. - 연보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7)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악스트 2019년 1/2월호 서평 키워드는 물이다. 이 중 프랑스 문학 번역가 류재화가 쓴 글로부터 옮긴다(모파상의 단편소설 '물 위에서' 의 내용과 결말이 밝혀진다).

사진: UnsplashTanya Barrow







처음에는 「보트에서」라는 제목으로 발표되었다가 다시 「물 위에서」라는 제목으로 발표된 아주 짧은 단편에서도 "물에 미친 사람"이 등장한다. 그는 "언제나 물 가까이, 항상 물 위에, 늘 물속에 사는 사람이었고, 보트 속에서 태어났을 거고, 보트를 타다가 죽을 게 분명한 사람"이다.

이 ‘물’에 미친 사람은 자신의 기이한 일화를 들려주는데, 여느 때처럼 친구 집에서 저녁을 먹고 돌아오는 길이었다. 밤에 항상 사용하는 12미터가 넘는 배를 타고 힘들게 노를 저어서 오다, 갈대밭이 뾰족하게 튀어나온 곳에서 한숨 돌리려고 잠시 멈춰 선다. 철교에서 200미터 떨어진 정적이 감도는 그곳에서 파이프 담배 하나를 피우면 더 없이 좋을 것 같아 닻을 잡아 강에 던진다. 강물은 완벽하게 조용하고, 도란대는 물결 대신 도란대는 것은 오로지 옆의 갈대들이다. ‘물결’의 대체물로 ‘갈대’를 편성한 모파상의 감각은 이것이 단순한 자연 묘사가 아니라 자신의 내적 광기를 불현듯 추상화하는 상징이라고 짐작해도 될 만큼 완벽하게 정합적이다. 개구리도 가세한다. 개굴개굴 요란한 청각성은 또 다른 ‘물결’이다. ‘물: 물결’은 ‘부동성: 동성’일 수 있으며, ‘전체성: 부분성’일 수 있다. 그런데 둘은 늘 공시성 속에 있다.

보트에 누워 하늘을 바라보며 평화롭게 있던 그가 순간 공포를 느낀 것은 바로 배가 가볍게, 살살 움직일 때였다. 배는 움직이는 듯도 하고 움직이지 않는 듯도 하다. 배 아래 뭐가 있는 듯도 하고 닻줄이 어디 걸린 듯도 하다. 이제 파이프 담배가 아니라 ‘럼주’를 찾는다. 술의 취기 속에 잠시 이 묘연한 스트레스를 잊는다. 어둠이 오고, 럼주를 더 마시고, 잠이 들고, 안개가 싸인다. 이튿날, 날이 밝고, 침침한 회색빛이 가득한데, 비가 부슬부슬 온다. 차가운 슬픔의 기분 속에 휩싸여 있는데, 배를 탄 몇몇 사람들이 보인다. 그들에게 도움을 청해 꿈쩍도 않던 닻을 서서히 움직인다. 이윽고 닻이 올라오기 시작하는데, 닻에 끌려온 것은 바로 "목에 커다란 돌을 매단 한 늙은 여자의 시체"였다. - 류재화 기 드 모파상 「물 위에서」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6)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