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스트리아 빈 망명 시절 사진 두 장을 가져왔다.

트로츠키 1910




트로츠키 1912








오스트리아의 마르크스주의자들은 법률을 연구하듯이 마르크스 이론의 이런저런 부분을 배우고 《자본론》이 낳는 이자로 먹고살았기 때문에 너무나 자주 속물적인 근성을 드러냈다. 오스트리아 제국의 유서깊은 수도 빈, 이 계층적인데다가 허황되고 알맹이 없는 도시에서 마르크스주의 학자들은 일종의 짜릿한 말초적 기쁨을 느끼며 서로를 ‘박사님(HerrDoktor)’으로 부르고 있었다. 노동자들도 흔히 그들을 ‘박사 동지(Genosse Herr Doktor)’로 불렀다. - 제16장 두 번째 망명과 독일 사회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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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로츠키 자서전 '나의 생애(상)'로부터 옮긴 아래 글 속 사람들은 빈 망명 시절에 만난 오스트리아 지식인과 정치인들이다.


빈 2019 Café Central By rboed* - CC BY 2.0







그들은 교양이 높은 사람들로 다양한 문제에 대한 지식이 나보다 많았다. 나는 관심을 갖고 아주 열심히, 그리고 거의 다음과 같이 말해도 좋다고 생각하는데, 공손한 태도로 카페 ‘첸트랄’에서 그들의 대화에 귀를 기울였다. 하지만 나는 곧 당황했다. 이 사람들은 혁명가가 아니었다.

내가 발견하고 크게 놀란 것은, 이 교양 있는 마르크스주의자들이 큰 정치 문제, 특히 혁명적 변혁의 문제에 이르자마자 마르크스의 방법론을 전혀 적용하지 못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들끼리 격의 없이 대화를 나눌 경우에는 논문을 쓰거나 연설할 때보다 훨씬 더 솔직하게 본심을 드러냈다. 즉 때로는 쇼비니즘〔맹목적인 애국심〕을 숨김없이 드러내고, 때로는 쥐꼬리만한 재산을 자랑하고, 때로는 경찰에 대한 경건한 두려움을 나타내고, 때로는 여성에 대한 비열한 태도를 보여 주었다. 종종 나는 깜짝 놀라며 마음 속으로 이렇게 소리쳤다. "정말 대단한 혁명가들이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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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로츠키 자서전 '나의 생애(상)'중 '제16장 두 번째 망명과 독일 사회주의'로부터 

1907년 By K. Ledermann, Wien - Ansichtskarte, Public Domain


트로츠키 - Daum 백과 https://100.daum.net/encyclopedia/view/b22t3972b 1907년에 오스트리아 빈으로 갔다고 한다.






다른 모든 망명자가 스위스나 파리에 집결하고 있을 때, 우리는 어째서 빈을 선택했을까? 그 당시에 내가 가장 밀접하게 접촉하고 있었던 것은 독일의 정치 생활이었지만 경찰 때문에 베를린에 정착할 수 없었다. 그래서 빈에서 살기로 했던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 7년 내내 쳇바퀴 속의 다람쥐를 너무나 많이 상기시키는 오스트리아의 정치생활보다도 독일의 그것을 더 주의깊게 지켜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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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 브라이슨 발칙한 유럽산책'의 비엔나 편으로부터


카페 센트럴 - 사진: UnsplashRikin Katyal


[같은 시공간을 산 츠바이크·프로이트·요제프 1세·히틀러·스탈린·트로츠키… ] https://www.segye.com/newsView/20210329513365?OutUrl=daum 아래 발췌글에 등장하는 카페 센트럴 이야기이다.





러시아 혁명가 트로츠키가 하는 일도 없이 시간을 보내곤 했다는 ‘카페 센트랄’조차도 실망스럽기는 마찬가지였다. 분위기는 제법 있었다. 둥근 천장과 대리석 탁자, 피아니스트도 있었다. 그러나 커피 한 잔에 34실링이나 하는 데다가 서비스는 무관심 수준이었다.

그래도 센트랄에 앉아 정치를 논하던 두 명의 비엔나 사람에 관한 우스갯소리는 재미있다. 두 사람 중 하나는 모스크바에서 갓 돌아와, 러시아에 곧 혁명이 닥칠 거라고 예견했다.

"오, 그래?"

다른 한 사람이 믿기지 않는다는 듯 심드렁하게 물은 후, 늘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는 트로츠키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런데 혁명을 누가 주도하는데? 저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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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blog.aladin.co.kr/790598133/14997725 아이히만에 대한 작년 오늘 포스트에 이어 '터프 이너프'의 한나 아렌트 편으로부터 발췌한다.

괴벨스 1934



요제프 괴벨스 - Daum 백과 https://100.daum.net/encyclopedia/view/b02g1535a






대중과 마찬가지로 나치 엘리트들도 현실을 추방했다. 그러나 이 경우에는 현실을 단순히 불편한 장애로 간주하고, 의지에 맞춰 멋대로 쥐고 주무를 수 있는 것으로 보았기 때문이다. 권력과 권력을 휘두를 충분한 시간만 주어지면 이 사람들은 총통의 환상에 맞추어 현실을 재창조했을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사유는 완전히 멎어버렸다. 권력과 영합한 단 하나의 사유가 있고, 현실은 그 사유에 순응하도록 개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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