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겨울, 다나베 세이코의 단편을 다시 읽는다. 지금 같은 한겨울에 조제는 무엇을 할까? 츠네오가 곁에 있건 없건 간에, 조제는 스웨터를 입고 방에 앉아 여전히 책을 읽고 있겠지, 당연한 일 아니겠는가.


Storming the Winter Palace, 1920 - Jury Annenkov - WikiArt.org





조제는 ‘나‘라고 할 때, 아이처럼 콧소리를 낸다. 아버지가 재혼한 여자가 데리고 온 애가 세 살 적에 그런 식으로 발음을 했다. 조제는 그 코맹맹이 같은 발음 때문에 아버지와 여자가 그 아이를 귀여워하는 거라고 생각했다. 열네 살이던 조제도 그때부터 ‘나‘라고 말할 때 콧소리를 섞어 말하기 시작했다.

츠네오는 그냥 즐거웠지만, 조제는 너무 감격한 나머지 말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 이렇게 해저에 있으면 밤인지 낮인지도 모르고 마냥 시간이 흐를 것 같았다. 조제는 공포와는 다른 어떤 도취에 빠져, 끝도 없이 그 안을 뱅뱅 돌았다. 그냥 내버려두었다가는 죽을 때까지 그 안을 돌아다닐 것 같았다.

물고기 같은 츠네오와 조제의 모습에, 조제는 깊은 만족감을 느낀다. 츠네오가 언제 조제 곁을 떠날지 알 수 없지만, 곁에 있는 한 행복하고, 그것으로 족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조제는 행복에 대해 생각할 때, 그것을 늘 죽음과 같은 말로 여긴다. 완전무결한 행복은 죽음 그 자체다. ‘우리는 물고기야. 죽어버린 거야.‘ 그런 생각을 할 때, 조제는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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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해경의 일러스트책 '겨울 꿈'으로부터


All the Sad Young Men - Wikipedia 피츠제럴드의 단편 '겨울 꿈'은 1922년에 발표되었고, 1926년에 나온 피츠제럴드의 단편집 'All the Sad Young Men'에 수록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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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가 ‘아노스미’인 조향사라니 https://www.hani.co.kr/arti/culture/book/955938.html


아들 김태형의 에세이를 포함하여 고 김소진 작가 특집이 실린 악스트 19호도 가져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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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UnsplashAaron Burden








내게 언어와 지면이 있다는 사실에 안도와 두려움을 동시에 느꼈다. 지금도 계속 그 무게를 생각한다.

지난겨울에 해놓은 메모를 보았다. ‘다른 감정들이 다 사라져버렸다. 이런데 뭘 쓸 수 있을까.’그런데 나는 계속 쓰고 있다.(최은미 작가노트)

썼던 것의 절망 위에서, 또 써야 하기에, 다음 절망의 가능성을 향해 쓰기. 그러니 쓰기는 자기보다 멀리까지, 때로 스스로 버티기 힘든 데까지 가버리는 일이다. 쓰기에 다가가기, 쓰기를 지속하기는 자기를 넘어서는 자기의 강함을 바라보는 일이다.(최은미 해설 백지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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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완서로 검색한 결과 우연히 발견한, 박완서 외에도 다수의 여성 작가들이 참여한 단편집 '저 마누라를 어쩌지?'. 박완서 작가의 '궁합'을 보면, 결혼할 남녀가 동갑인데도 남성은 반말, 여성은 존대말을 쓴다. 옛날은 옛날이다. 표제작 '저 마누라를 어쩌지?'는 '절반의 실패' 이경자 작가가 썼다. '딸아, 너는 절반의 실패도 하지 마라'는 이경자 작가가 오랜 결혼생활을 끝낸 후 딸에게 주는 편지 형식으로 쓴 산문집이다. 


1세대 페미니즘 작가의 소설 30년 만에 복간 - 여성신문 http://www.women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203104


인생은 참 이상해. 남의 경험에서 장단점을 배워 내 것으로 써먹으면 좋으련만 그게 잘 안 돼. 아니, 전혀 안 돼. 그냥 내 인생은 생짜로 다시 살면서 상처받고 절망하고 돌아보고 그래.

뿌린 씨앗의 싹이 누렇게 마를 때, 포기하는 사람도 있고 원인을 살펴서 해결하려는 사람도 있다. 삶이 곤경에 처했을 때도 마찬가지다. 그 시기가 자신의 전 인생이라고 생각하는 건 성급한 판단이다. 누구에게나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나는 같지 않다. 지금의 내가 나의 전부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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