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소진 산문집 '그리운 동방' 3부 책글 편에 단편소설 '돼지꿈'(황석영) 독후감이 있다.

사진: Unsplash의 Oliver Sharp
cf. '황석영의 한국 명단편 101'에 '열린 사회와 그 적들'(김소진)이 포함되어 있다.






1970년에 발표된 황석영의 소설 『돼지꿈 』에는 이상하게도 뜻밖의 재물을 얻을 횡재수로 풀이되는 길몽인 돼지꿈이 묘사되거나 거론되는 대목이 한 군데도 없다. 오히려 돼지가 나와야 할 자리를 살집이 좋은 개가 대신 나와서 줄기차게 차지하고 있어 인상적이다.
어느 대학의 기본 열람실 개가식 서가에서 이 책을 뽑아 읽는 순간 한 미아리 산동네 출신의 문청은 이렇게 탄성을 베물지 않을 수 없었다. 아, 이렇게 후줄근한 사람의 땀냄새와 구린내 나는 듯한 목소리 그리고 숨기고 싶은 속내들이 모여 감히 소설을 이루는구나! 그 순간 소설은 형이상학의 권좌에서 내 어깨 위로 내려와 소년기에 묻어둔 산동네의 기억을 흔들어 깨우는 손길로 변했다. 아마 이 소설이 아니었다면 난 끝내 글쓰기의 길로 나서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돼지꿈은 바로 누추한 현실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70년대 민중이 마지막으로 붙들고 있던 보루였다. 작가는 그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지만 결국 아무한테도 돼지꿈을 화끈하게 꾸도록 배려해주지 않았다. 그건 개꿈보다 더 나쁜 가짜이니까. 이런 작가의 투철한 시선과 현실 사이의 긴장이야말로 70년대를 풍미한 황석영의 리얼리즘에 어거지가 없었음을 증명하는 것이었다. (한국일보 1997년 1월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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