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멜랑콜리 해피엔딩'은 전에 읽은 책인데 오늘 어떤 연유로 인해 수록작 중 함정임 작가의 '그 겨울의 사흘 동안'을 다시 읽게 되었다.

Sweet Peas, 1922 - Eleanor Fortescue-Brickdale - WikiArt.org



테라스에는 보라색 스위트피가 아침 햇살을 받아 생기롭게 피어 있었다. 한겨울에 스위트피라니. J는 집주인 노부부의 얼굴을 떠올려보다가 문을 열고 테라스로 나가 테이블에 놓인 스위트피 향을 맡았다.
그 시절 선생님은 홀로 기다리고 있다가 J를 맞이하곤 했다. 선생님은 J를 거실보다는 부엌 식탁으로 데리고 갔다. 다과를 가운데 놓고, 원고와 책 이야기 이외에, 살아가는 이야기를 나누느라 시간 가는 줄 몰랐다. J가 선생님 댁으로 들어갈 때는 환한 오후였는데, 나올 때는 어둠이 내린 저녁이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J는 선생님과의 식탁에서의 장면을 꿈결인 양 되짚어보곤 했다. 편집자와 작가, 까마득한 후배 작가와 대작가와의 만남이라기보다는 연애 중인 딸과 엄마, 갓 시집간 딸과 친정 엄마 사이의 애틋하면서도 흥미진진한 수다의 향연이었다. J만이 그렇게 느낀 것이 아니었음을 훗날 선생님이 쓴 글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지금 생각하니 그때 우리는 동업자끼리나, 저자와 기자 사이로 만난 게 아니라, 엄마 말 안 듣고 고생길로 들어선 딸이 겨우 행복해진 걸 보고 대견하게 여기는 엄마와 딸처럼 마주 앉았던 게 아니었나 회상됩니다."
이 글의 제목은 박완서의 「그 가을의 사흘 동안」을 오마주한 것이고, 본문에 인용된 글은 박완서의 「『행복』에 부치는 글」(함정임, 『행복』, 중앙M&B, 1998. 발문)임을 밝힌다. - 함정임 _ 그 겨울의 사흘 동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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