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년 만에…다시 부치는 편지] https://h21.hani.co.kr/arti/photo/story/56691.html 2025년 6월10일에 구 남영동 대공분실이 민주화운동기념관으로 재개관 예정이라고 한다.


'특종 1987 - 박종철과 한국 민주화'(신성호)의 '2장 한 젊은이의 죽음, 진실이 밝혀지기까지' 중 첫 편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 급박했던 10일의 기록'으로부터 옮긴다. 저자는 당시 박종철 고문치사사건을 특종보도했다.

[경찰청 인권보호센터(구 남영동 대공분실) 내에 위치하고 있는 조사실. 현재는 보존용으로 공개되어 있다.] 2013년 By Kys951






박종철 군이 숨진 1월 14일부터 고문 경관 2명이 구속된 24일까지 걸린 시간은 단 10일. 이 짧은 기간 정부는 언론을 통제하고 사건을 은폐하려 하는 등 파장을 최소화하기에 급급했다. 하지만 언론과 시민단체, 종교단체 등은 이 사건에 대한 진상 규명을 지속적으로 요구했다.

박종철은 1986년 4월 1일 청계피복노조 합법화 요구 시위로 구속된 후 같은 해 7월 15일 징역 10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고 출소했다. 그는 출소 이후에도 학생운동에 참여해왔다.

공안 당국은 당시 ‘서울대 민주화추진위원회(민추위) 사건’의 주요 수배자인 박종운 씨의 행방을 알기 위해 박종철 군을 추궁했으나 그의 소재를 알아낼 수 없었다. 이에 경찰은 폭행과 물고문 등을 가했고, 박 군은 1월 14일 오전 11시쯤 남영동 대공분실 509호 조사실에서 사망했다. 부검 결과 사망 원인은 경부 압박에 의한 질식사로 드러났다. 물고문 도중 욕조 턱에 목이 눌려 숨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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