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간식 테마소설집 '겨울 간식집'의 첫 단편은 박연준 시인이 쓴 '한두 벌의 다른 옷'이다. 왜 이 제목인지 내용에 나오지만 여기 굳이 밝히지 않겠다(스포일러는 아니다). 여름은 친구 성희를 통해 영혜를 알게 되고 뱅쇼가 첫 만남에 등장한다.

사진: UnsplashHannah Pemberton 뱅쇼 https://100.daum.net/encyclopedia/view/47XXXXXXb479


박연준 시인은 다양한 글을 발표했다.





원탁에는 영혜가 읽는 책, 읽어야 할 책들이 표지가 보이도록 전시되어 있었다. 열 권, 어느 때는 스무 권도 넘었다. 작은 서점 같았다.

우리는 서로의 말에 반했다. 영혜와 이야기하는 순간에는 내가 마치 작가가 된 것 같았다. 우리가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이야기를 나누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했다. 생활에 찌들어 있다가도 영혜의 작업실에 가는 날에는 내 눈에서 빛이 나는 것을 느꼈다.

—여름아, 나는 그런 게 좋더라. 너무 단단하지도 너무 푹신하지도 않은 침대에 누워서 아주아주 두꺼운 소설을 읽다가 잠드는 삶. 내 손으로 견딜 수 있는 무게는 딱 두꺼운 소설책만큼인 것 같아. 나는 버러지야. 뭘 해야 할지 모르겠어.

언젠가 영혜가 이렇게 말했을 때, 언니는 생각하는 게 직업이라고, 그건 귀한 거라고 얘기한 적이 있었다. 두꺼운 소설을 읽고 두꺼운 삶을 생각하는 것, 그게 왜 나빠? 이렇게 말한 적이 있었다.

—영혜 언니와 왜 멀어졌어?

성희가 물었을 때 대답하지 못했다.

영혜와 나 사이에 큰불이 일고, 타버리고, 재만 남았을 때. 재 위에서 다시 할 수 있는 일이 뭐가 있을까 생각했다. 내 선택은 달아나는 거였다.

그러나 어느 겨울, 카페 앞을 지나다 누군가 유리창에 이렇게 써 붙인 글을 마주하면 울고 싶어지는 건 사실이다.

‘따뜻한 뱅쇼 팔아요. 직접 끓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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