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스타북스)에 실린 윤동주 시인의 동생 윤일주의 글로부터.
작년 8월 알라딘 디카페인 커피 '별 헤는 밤'을 선물받았더랬다. 별 헤는 밤 북마크도 있구나.
그의 아명兒名은 해환海煥이었고, 그 아래로 누이와 두 동생이 있었습니다.
얌전한 소학생 해환은 아동지 『어린이』의 애독자였고, 그림을 무척 좋아하였다고 합니다. 1931년에 명동소학을 마치고 대랍자大拉子라는 곳에서 중국인관립학교에 1년간 수학 하였으니, 시 『별 헤는 밤』의 패佩, 경鏡, 옥玉이란 묘한 이국 소녀들의 이름은 이때의 추억에서 얻어진 것이 아닌가 합니다.
1932년 그가 용정 은진중학교에 입학하자, 저의 집은 용정에 이사하였습니다. 중학교에서의 그의 취미는 다방면이었습니다. 축구 선수이던 그는 어머니의 손을 빌지 않고 네임도 혼자 만들어 유니폼에 붙이고 기성복도 손수 재봉틀로 알맞게 고쳐 입었습니다. 낮이면 운동장을 뛰어다니고 초저녁에는 산책, 밤늦게까지 독서하거나 교내 잡지를 만드노라고 등사 글씨를 쓰거나 하던 일이 기억됩니다. 끝까지 즐기던 이 산책은 이때부터 비롯되었습니다.
운동복이나 문학 서적만 들고 다니는 그의 성적에 뜻밖에도 수학이 으뜸가는 것에는 다들 놀래었습니다. 특히 기하학을 좋아함은 그의 치밀한 성품에서였다고 짐작됩니다.
1935년 봄 3학년을 마칠 즈음, 그는 불현듯 고국에의 유학을 꿈꾸고 겨우 아버지의 승낙을 얻어 평양 숭실중학교에 옮기었습니다. 그의 습작집으로 미루어 평양 시절 1년에 가장 문학에의 의욕이 고조된 듯합니다. 이 즈음 백석 시집 『사슴』이 출간되었으나, 백 부 한정판인 이 책을 구할 길이 없어 도서실에서 진종일을 걸려 정자正字로 베껴 내고야 말았습니다. 그것은 소중히 지니고 다닌 모양으로, 지금은 나에게 보관되어 있습니다. 평양 유학도 끝을 맞게 되었으니, 숭실학교가 신사참배문제로 폐교케 되었던 까닭입니다. - 윤일주尹一柱, 선백先伯의 생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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