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릭 사티의 '짐노페디'를 들으며 '예술 수업'(오종우)의 '2부 보이는 것 너머를 보려면' 중 '5강 꿈과 현실의 이중주_가구 같은 음악 [짐노페디]가 아름다운 이유'를 읽었다.
짐노페디 - Daum 백과 https://100.daum.net/encyclopedia/view/97XXXXXX1407
사티의 가구음악에 관해 참고 https://blog.aladin.co.kr/790598133/15746550
에리크 사티Erik Satie(1866~1925)는 피아노를 위한 세 개의 〈짐노페디〉를 작곡하여 카페에서 연주하면서 가구음악musique d’ameublement이라고 불렀습니다. 좋은 가구는 존재감을 드러내지 않으면서 실내의 분위기를 이끕니다. 자기 존재를 주장하는 가구는 집 안의 주인이 되어 사람을 불편하게 하지요. 사람이 가구를 이고 사는 꼴이 되니까요. 사티는 연주회장에 정장을 차려입고 꼿꼿하게 앉아 언제 박수 쳐야 할지 고민하면서 연주를 듣는 모습을 달갑게 여기지 않았습니다. 그는 좋은 가구처럼 자기 음악이 일상의 일부로 있기를 바랐습니다. - 우리가 꿈을 꾸는 까닭
〈짐노페디〉는 똑같은 템포로 느리게 반복하는 저음, 선명하게 선율이 흐르는 고음, 이 둘이 묘한 조화를 이루면서 단순하고 무덤덤하게 진행됩니다. 어떠한 악구의 발전도 없이 소리가 병렬되지요. 저음부와 고음부의 병렬은 마치 현실과 꿈의 세계처럼 분할되어 흐릅니다.
사티는 파리의 빈민촌에서 어렵게 살아가며 생계를 위해 카페에서 연주하고 있지만, 힘든 현실을 벗어날 꿈을 꾸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꿈이 현실과 만나야 이뤄질 수 있다는 점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 점이 〈짐노페디〉의 마지막 부분을 장식합니다.
저음과 고음으로 나뉘어 나란히 진행되던 소리는 마지막에 이르러 완전히 합쳐져서 리듬을 끊고 간결하면서도 단호하게 두 번 함께 울리고 끝을 맺습니다. - 절망, 오래된 꿈의 다른 이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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