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사를 바꾼 커피 이야기(우스이 류이치로 저/김수경 역)'로부터
National Library of Wales, Public Domain, 위키미디어커먼즈
프리드리히 대왕의 경제정책은 중상주의다. 그의 정책의 최우선 과제는 수입을 억제하고 수출을 늘리는 것이었다. 그런데 말도 안 되는 수입품이 있었다. 바로 커피다.
사정이야 어찌 됐든 프로이센에서 커피 소비는 철저히 억압되었다. 이러한 기본적 정책의 연장선에서 놀라운 급성장을 이룬 것이 바로 ‘대용커피산업’이었다. 이에 관해서도 흥미로운 일화가 전해진다. 직업군인이던 폰 하이네(Christian von Heine) 소령 부인은 몇 년 동안 담낭에 생긴 병으로 고생했다. 그녀를 진료한 의사는 치커리를 달여 마셔보라고 권했다. 얼핏 보면 치커리는 생강과 비슷한 식물로, 잎을 샐러드로 먹기도 하는데 쓴맛이 난다. 맛이 쓰면 커피의 대용품이 될 수 있다고 여긴 걸까. 폰 하이네 소령 부인은 치커리 뿌리를 달여 마셔봤다. 한데 아니나 다를까, 커피와 비슷한 맛이 났다. 사실, 여기까지는 특별할 게 없는 이야기다. 귀가 솔깃해지는 이야기는 지금부터다.
폰 하이네 부부가 치커리 달인 물로 특허 신청을 한 것이다. 그 부부는 브라운슈바이크 시당국에 등록상표를 붙여 특허 신청을 하고 치커리 커피를 양산하기 시작했다.
잎은 샐러드로, 뿌리는 대용커피로. 이는 ‘실질건강’을 모토로 내세운 프로이센 국가주의 정신에 합치되는 것이었다. 이후 프로이센 정부는 달리는 말에 채찍질하는 모양새로 맥아, 보리, 호밀, 사탕수수, 무화과, 땅콩, 도토리 등 땅에서 나는 거의 모든 열매를 달여 커피를 생산하기 시작했다. 심지어 땅에서 나는 열매뿐 아니라 바다에서 나는 식재료를 활용하기도 했다. 그 연장선에서 해초로 만든 커피도 등장했다. 이러한 분위기에 발맞추어 건강에 해로운 재료로 커피를 만드는 것을 금지하는 법률도 마련되었다. 이렇듯 화학산업을 자랑하는 독일의 열정은 무시무시할 정도였고, 그 덕분에 ‘독일커피’라고 하면 오랫동안 ‘대용커피’의 총칭으로 받아들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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