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완서 단편소설 전집 4 '저녁의 해후'에 실린 '사람의 일기'(1985) 속 1인칭 화자의 직업은 소설가로서 저자 자신의 속마음과 자의식을 솔직하게 토로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소설의 외피를 쓴 산문 같은 느낌도 든다. 정미는 친구의 딸이다.

Girl Friends, 1952 - Leonor Fini - WikiArt.org






여고 동창생으로 흉허물 없는 사이였지만 손발이 닳도록 고달프게 사는데도 늘 가난하기만 한 친구란 때로는 부담스러울 적도 있었다. 이 나이에 변두리에 겨우 중산층 아파트 하나 쓰고 사는 내 살림 형편을 부자로 보는 친구란 솔직히 말해서 곤혹스러웠다.

정미가 시집을 가다니. 나도 정미가 결국 보통 여자들처럼 살게 된 게 반갑기도 하고 서운하기도 했다. 정미는 좀 특별한 아이였다.

언젠가 어떤 여성단체에서 마련한 ‘독자와의 대화’란 모임에 소설가로서 참석한 적이 있는데 그때 나는 소설이 독자에게 끼칠 수 있는 가장 큰 미덕은 타인의 삶을 자기 삶처럼 체험케 하는, 즉 남과 입장을 바꿀 수 있는 능력이라고 공언했었다. 소설이 독자에게 그런 능력을 줄 수 있는 거라면 그런 소설을 꾸며내는 소설가는 마땅히 그런 능력의 도사여야 하련만 도무지 그 능력이 말을 들어주지 않았다. 나는 내가 나불댄 말에 부끄러움을 느꼈고 화도 났다.

옥바라지를 시킨 것 외엔 정미는 나무랄 데 없는 딸이었다.

이런 얘기 저런 얘기 해볼수록 핍박받는 사람들에 대한 정미의 사랑과 책임감은 조금도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나의 가냘픈 작가정신도 그런 것이 줄기를 이루고 있다고 자부해왔건만 정미의 투박한 진실성 앞에선 어딘지 간사스럽고 가짜스러워지는 것 같았다. 이론적으로도 정미한테 끌렸다.

나는 겨우 날카롭고 강한 걸 이길 수 있는 것은 더 날카롭고 더 강한 힘이 아니라 유하고 부드러운 것이라는 노자(老子)의 아류쯤 됨직한 방법론으로 체면을 세우곤 했다. 그럴 때 정미는 노자가 생전에 웃었음직한 더할 수 없이 질박한 미소로써 대답을 대신하곤 했었다.

친구가 외로움을 덜고 갔는지 더 큰 외로움을 안고 갔는지 헤아릴 겨를도 없었다. 행여 영향을 끼칠 말이나 책임질 말을 했을까봐 돌이켜보면서 문득 자신에 대해 매우 비위가 상했다. - 사람의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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