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개츠비'(백지민 옮김)로부터








약속한 날에는 비가 퍼부었다. 11시가 되자 비옷을 입은 남자가 잔디 깎는 기계를 끌고 우리 집 현관문을 두드렸다. 개츠비가 보낸 사람이었다.

빗줄기는 세 시 반쯤부터 가늘어지더니 축축한 안개로 바뀌었고, 이따금 이슬비도 내렸다.

물방울이 똑똑 떨어지는 라일락나무 아래로 대형 오픈카 한 대가 올라오더니 멈춰 섰다. 연보랏빛 삼각 모자를 쓴 데이지가 밝고 환한 미소를 지으며 나를 쳐다보았다.

"오빠, 정말 여기서 사는 거예요?"

빗속에서 울려 퍼지는 그녀의 명랑한 목소리는 상쾌한 청량제 같았다. 나는 잠시 동안 리듬감 있게 오르내리는 그 목소리에 귀 기울였다. 그녀의 한쪽 뺨에는 젖은 머리카락 한 가닥이 마치 푸른색 페인트로 죽 그어 내린 것처럼 달라붙어 있었다. 그녀의 손은 빗물에 젖어 번들거렸다. 나는 그녀의 손을 잡고 그녀가 차에서 내리는 것을 도왔다.

나는 뒷문으로 나와서 걸었다. 개츠비가 30분 전에 초조해서 집 주변을 한 바퀴 돌았을 때처럼 말이다. 나는 울창한 잎이 지붕 역할을 하며 비를 막아주는 옹이가 있는 검은 나무를 향해 뛰어갔다. 또다시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개츠비의 정원사가 잘 깎아놓았지만 여전히 엉성한 우리 집 잔디밭에는 조그만 진흙 웅덩이와 선사시대의 습지 같은 것이 여기저기 생겨났다. 나무 아래에서 보이는 것이라고는 개츠비의 거대한 저택밖에 없었다. 나는 칸트가 교회 첨탑을 바라보듯 그 집을 30분 동안 쳐다보았다.

30분쯤 지나자 다시 햇빛이 비쳤다.

"비가 그쳤어."

"그런가?" 개츠비는 내 말을 듣고서야 햇살이 방 안을 비추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는 다시 나타난 햇살을 열광적으로 반기는 기상 캐스터처럼 그 소식을 데이지에게 전했다.

"어떻게 생각해요? 비가 그쳤다는데요."

"잘됐네요, 제이." 데이지는 가슴이 아플 정도로 슬픔에 젖은 아름다운 목소리로 예기치 않은 기쁨을 나타낼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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