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작년 '해러웨이 선언문'을 읽고 적었던 메모의 일부와 발췌문:


빨간 바탕에 두 생명체가 애정 어린 시선으로 서로 바라보는 표지가 계속 눈에 들어와 결국 이 책을 읽었다. 1944년에 미국에서 태어나 성장한 도나 해러웨이는 시대정신과 더불어 그녀가 공부한 온갖 학문과 지식을 장착했다. 또한 가톨릭 영성이 태생적으로 중요한 그녀의 구성요소이며 결국 생명정치로 건너가는 또 하나의 다리가 된 점도 간과할 수 없다. '사이보그 선언'(1985)의 작성은 야심적인 사상적 갱신의 시도로서 - 한편 이 선언은 신대륙의 과학자 페미니스트 여성 이론가가 구대륙에 보내는 서신이기도 하다 - 1980년대와 90년대를 흡수하고 소화한 2003년의 반려종 선언은 사이보그 선언을 이해하는 데에도 큰 도움을 준다. 저자가 직접 작성한 참고서이자 후일담이며 새로운 도약과 영원한 혁명을 이야기하는 반려종 선언은 특이한 감동을 선사한다. 인간과 동물이 상호 반려하는, 반려종들이 공생하는 세상은 감상적인 유토피아가 아니라 살기 위한 정치적 실천의 장이다. 그렇다, 우리는 함께 살고 있고 살려고 하며 살아야 한다.

Pixabay로부터 입수된 JackieLou DL님의 이미지










이 글(사이보그 선언)은 그 문제에 뛰어들기로 작정한 사회주의 페미니스트가 신성모독의 방법으로 사태를 다시 해석한 결과다. 이 선언문은 글을 읽는 나와 독자에게 도와달라고 부탁하면서, 손에 잡히는 도구는 모두 이용해 좋은 출발점 하나를 만들고자 했다. 그로부터 거의 20년이 지난 후, 해러웨이는 상황에 필요한 도구가 바뀌었다고 판단했다.

따지고 보면 ‘현시하다 manifest‘라는 단어의 일차적인 의미는 옥스퍼드 영어사전에 따르면 "특히 초자연적인 존재를...눈이나 이해에 분명히 드러나게 하는 것"이다. (중략) 해러웨이는 스스로 밝히듯 천주교 신자로 자라났기 때문에 이와 같은 수사에 이끌리게 된다. 하지만 그녀 자신의 실체변화는 천주교인으로 성장했다는 내력뿐 아니라 스푸트니크와 우주 경쟁의 시대에 교육을 받고 성년이 된 천주교인 여성이라는 사실에 영향을 받기도 했다. - 서문(캐리 울프)

나 자신 그리고 나와 비슷한 역사적 위치(백인, 전문직, 중산층, 여성, 급진 정치, 북아메리카, 중년의 신체)에 있는 사람들 대부분에게 정치적 정체성 위기의 근원은 너무나 많다. 많은 갈래의 미국 좌파 및 페미니즘이 최근 밟아온 역사는 이런 위기에 대한 반응이자, 본질적 통일성의 근거를 다시 찾으려 끝없이 분열하면서 탐색을 거듭해온 결과다. 하지만 정체성 대신 결연과 연대로 위기에 대처할 수 있다는 인식 또한 확장되어왔다. - 사이보그 선언

이 글은 내가 처음 쓴 선언문이 아니다. 1985년에 발표한 <사이보그 선언>에서 나는 기술과학 속 현대의 삶이 내파하는 현상을 페미니즘을 통해 이해하려 했다. "인공두뇌 유기체"인 사이보그는 정책 및 연구 프로젝트에 침투해 있던 기술 인본주의의 제국주의적 상상, 우주 개발 경쟁, 냉전으로 점철된 1960년에 생긴 이름이다. 나는 축복도 저주도 하지 않는 대신 우주 전사는 꿈도 꾸지 못할 목표를 아이러니하게 전유하려는 정신, 곧 비판적 정신을 통해 사이보그로 살아가려고 노력했다. - 반려종 선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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