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봄 박완서의 단편 '창밖은 봄'을 읽어야겠다고 계획했었는데 5월이 다 가도록 까맣게 잊고 있다가 그래도 어떻게 기억이 나 찾아 읽었다. '엄마의 말뚝' 수록작. 다가올 겨울에 읽어도 좋았을 듯하다.
Girl Seated on a Pier - Philip Wilson Steer - WikiArt.org
'박완서의 말'에 나오기를 고 피천득 작가가 박완서 작가의 글이 좋다며 이 소설 '창밖은 봄' 여주인공 길례를 언급한다.
요컨대 그들은 서로 깊이 좋아하고 있었고, 좋아하기 때문에 스스로의 약점으로 상대방을 욕 주거나 폐 끼치게 할 수 없다는 순정에 철저했다.
상대방의 약점으로 자기의 약점을 비기게 할 수 있을 만큼만 약았더라도 그들의 결합은 훨씬 수월했을 것을.
그러나 그런 어리석은 순정 때문에 누가 보아도 만만하고 구질구질한 그들이었지만, 저희들끼리의 눈엔 서로 상대가 귀한 보석처럼 소중하고 빛나 보였던 것이다.
바람이 났으면 국으로 바람난 행세를 할 것이지, 같잖은 것 같으니라구, 같잖은 것 같으니라고…….
자고 깨면 춥고, 자고 깨면 여전히 춥건만 설마 내일은 풀리겠지, 설마 겨울 다음엔 봄 안 올까, 하는 끈질긴 낙천성만이 그들의 것이었다.
밖에선 여전히 혹한이 계속됐다. 천심도 삼한사온이란 자비로운 질서를 망각하고 한 달이 넘게 영하 15도의 강추위를 고집하고 있었다. 거지 빨래한다고 예로부터 일컬어지는 눈 오는 날조차 없었다.
강추위는 한 달을 넘고 두 달째로 접어들었다.
신문의 만화란에선 삼한사온을, 석 달 춥고 넉 달 따뜻하기로 새롭게 풀이했다. 이런 방정맞은 말장난은 뜨뜻한 구들목에서 자고 난 사람들이나 읽고 좋아할 것이지 신문을 보지 않는 정 씨나 길례하곤 상관 없는 일이었다.
신문에는 또 시내 곳곳에서 수도관이 동파되어 물난리를 겪고 있단 보도와 함께 수도국에선 쇄도하는 고장 신고의 반의 반도 나와봐 주지 못할 뿐더러, 기껏 나와봤댔자, 한다는 소리가 봄을 기다리는 하느님 같은 소리가 고작이라는 비꼬는 기사도 났다.
추위가 석 달째로 접어들었다. 아무도 겨울 다음엔 봄이라는 걸 믿으려 들지 않았다.
수도관은 사방에서 매일매일 얼어 터지고, 수도국만이 봄에의 믿음으로 겨우겨우 그 체면을 유지하려 들었다. - 창밖은 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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