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각의 계절'(권여선) 수록작 '사슴벌레식 문답'(에픽 9호 발표)은 권여선식 네 친구 이야기이자 벌레 이야기. 2023 김승옥문학상 대상 수상작이다. 김승옥문학상 작가노트 '안녕 사슴벌레'를 보면 이 단편의 제목은 처음에는 '강촌 여행' 또는 '생일 여행'이었다가 '강가에는 안개가'를 거쳐, "2017년9월11일의 일기"에 기록한 사슴벌레 일화 - 토지문화관에 레지던스 작가로 체류할 당시에 동료 작가가 겪은 경험을 옆에서 듣고 적어두었다 - 를 발견하고 소설의 향방과 최종제목이 결정된다.

Georgiy Jacobson - Beetles Russia and Western Europe  By see in description






너 어디로 들어와, 물으면 어디로든 들어와, 대답하는 사슴벌레의 의젓한 말투가 들리는 듯했다. 마치 가부좌라도 튼 듯한 점잖은 자세로. 그런데 나의 상상과 달리 정원의 말에 따르면 방에 있던 사슴벌레는 몸이 뒤집힌 채 계속 버둥거리며 빠른 속도로 움직여 다녔다고 했다.

약을 쳐서 그랬나봐. 정원이 사슴벌레에 빙의된 듯 양 손가락을 바르르 떨며 말했다.

그렇다면, 하고 내가 말했다. 사슴벌레의 등에 작은 휴지를 대고 양쪽 다리에 빗자루 싸리를 몇 개씩 매달아 너 대신 청소를 시켰으면 어땠을까.

정원이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정원과 나는 이런 대화법을 의젓한 사슴벌레식 문답이라고 부르기로 했다. 뒤집힌 채 버둥거리며 빙빙 도는 구슬픈 사슴벌레의 모습은 살짝 괄호에 넣어두고 저 흐르는 강처럼 의연한 사슴벌레의 말투만을 물려받기로 말이다. - 권여선, 사슴벌레식 문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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