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각의 계절'(권여선) 수록작 '사슴벌레식 문답'(에픽 9호 발표)은 권여선식 네 친구 이야기이자 벌레 이야기. 2023 김승옥문학상 대상 수상작이다. 김승옥문학상 작가노트 '안녕 사슴벌레'를 보면 이 단편의 제목은 처음에는 '강촌 여행' 또는 '생일 여행'이었다가 '강가에는 안개가'를 거쳐, "2017년9월11일의 일기"에 기록한 사슴벌레 일화 - 토지문화관에 레지던스 작가로 체류할 당시에 동료 작가가 겪은 경험을 옆에서 듣고 적어두었다 - 를 발견하고 소설의 향방과 최종제목이 결정된다.
Georgiy Jacobson - Beetles Russia and Western Europe By see in description
정원은 상냥하고 조심성이 많고 무서움을 잘 타는 성격이었지만 때로는 급작스러운 광기나 충동에 몸을 맡겨 우리를 놀라게도 했다. 정원은 ‘자유’나 ‘해방’이 들어간 시나 경구, 노래 가사 등을 많이 외우고 있었는데 특히나 그 말을 전공인 불어로 발음할 때면 마치 감전이라도 된 듯 온몸에 미세한 경련을 일으키곤 했다. 그러면 우리 또한 그 유려한 발음에 감탄해 덩달아 몸서리를 쳤다. 그러나 평소의 정원은 리본이 달린 작은 꾸러미에 포장되어 어딘가로 배달되기를 기다리는 어여쁜 선물 같았고, 부영은 그런 연약한 룸메이트에게 ‘언니스러운’ 강한 책임감을 갖고 있었다. 자기는 제멋대로이면서 정원이 제멋대로 굴다 상처받는 것은 견디지 못했다. 감싸면서 단련시키려 했고 아끼면서 통제했다. 정원이 저거 너무 순진해서, 정원이 쟨 너무 고지식해, 라는 말을 자주 했지만 그러면서도 정원의 순진함과 고지식함을 교정하기보다는 보존하려 했다. 정원만의 스타일을 허물어뜨리지 않으려 했다.
누가 봐도, 있는 그대로 지켜준다, 그런 느낌이었다.
너 어디로 들어와, 물으면 어디로든 들어와, 대답하는 사슴벌레의 의젓한 말투가 들리는 듯했다. 마치 가부좌라도 튼 듯한 점잖은 자세로. 그런데 나의 상상과 달리 정원의 말에 따르면 방에 있던 사슴벌레는 몸이 뒤집힌 채 계속 버둥거리며 빠른 속도로 움직여 다녔다고 했다.
약을 쳐서 그랬나봐. 정원이 사슴벌레에 빙의된 듯 양 손가락을 바르르 떨며 말했다.
그렇다면, 하고 내가 말했다. 사슴벌레의 등에 작은 휴지를 대고 양쪽 다리에 빗자루 싸리를 몇 개씩 매달아 너 대신 청소를 시켰으면 어땠을까.
정원이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정원과 나는 이런 대화법을 의젓한 사슴벌레식 문답이라고 부르기로 했다. 뒤집힌 채 버둥거리며 빙빙 도는 구슬픈 사슴벌레의 모습은 살짝 괄호에 넣어두고 저 흐르는 강처럼 의연한 사슴벌레의 말투만을 물려받기로 말이다. - 권여선, 사슴벌레식 문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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