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혼생활 중인 레빈의 단상 또는 잡념.

카푸아의 아프로디테 (나폴리 국립 고고학 박물관) By Sergey Sosnovskiy from Saint-Petersburg, Russia - Aphrodite of Capua (Naples, National Archaeological Museum) CC BY-SA 2.0


[네이버 지식백과] 카푸아 [Capua] (미술대사전(용어편), 1998., 한국사전연구사 편집부) https://terms.naver.com/entry.naver?docId=263954&cid=42635&categoryId=42635


By Tolstoy, Leo, graf, 1828-1910;Garnett, Constance Black, 1862-1946 tr.







혼자 남은 레빈은 아내가 사다 준 새 서류 가방에 책을 집어넣고는 역시 아내와 더불어 새롭게 생긴, 우아한 용품들을 갖춘 새 세면대에서 손을 씻기 시작했다. 그는 머릿속에서 떠오르는 이런저런 생각에 웃음을 짓다가, 문득 동의할 수 없다는 듯 고개를 내저었다. 그것은 그를 괴롭히는 죄책감에 가까운 감정이었다. 지금의 그의 삶 속에는 무언가 부끄럽고 유약한 것, 그의 표현에 의하면, 카푸아*적인 것이 있었다. 〈이렇게 사는 건 좋지 않아.〉 그가 생각했다. 〈벌써 석 달이 다 되어 가는데, 한 게 거의 아무것도 없어. 오늘에서야 처음으로 진지하게 일을 시작했지만, 어떻게 됐지? 시작하자마자 내팽개쳤잖아. 심지어 일상적인 일들, 그것들마저도 손을 놓고 있어. 농사일을 거의 둘러보지도 않고 있다고. 아내를 혼자 두기엔 안쓰럽기도 하고, 심심

할 것 같기도 하니까 말이야. 결혼 전에는 생활이야 어떻게든 굴러가는 법이고 별거 아니지만, 결혼하고 나면 진짜 생활이 시작될 거라 생각했었지. 그런데 벌써 석 달이 다 되어 가는데, 이제까지 이렇게 무사안일하고 부질없이 시간을 보낸 적은 없었어. 아니야, 이래서는 안 돼. 일을 시작해야 해. 물론 아내는 잘못한 게 없어. 그녀를 탓할 건 없다고. 나 자신이 좀 더 확고해지고, 남편으로서 독립된 삶을 지켜 내야만 해. 안 그러면 이렇게 나 자신도, 그녀도 길들여질 수밖에……. 당연히 그녀의 잘못은 아니지만.〉 그가 속으로 중얼거렸다.

* 나폴리 근처에 위치한 이탈리아의 고대 도시로 기원전 340년경 로마에 복속되었다. 기록된 바에 따르면, 제2차 포에니 전쟁 당시 로마군이 카푸아에서 겨울을 보냈는데, 이 겨울 숙영이 로마 전사들을 육체적·정신적으로 유약하게 만드는 바람에 이후 적군들과의 전투에서 참패했다고 한다. 〈카푸아적인 것〉은 똘스또이가 만든 용어로서 무사태평하고 나태한 시절을 뜻한다. - 제5부 15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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