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사학회가 기획한 '도시는 기억이다 - 공공기념물로 본 서양 도시의 역사와 문화'에 실린 '새로운 도시 문화의 상징, 빈 링슈트라세'(최용찬)를 읽었다. 작년에 오스트리아의 수도 빈(비엔나)과 특히 순환도로 링슈트라세에 관해 이책저책 흥미롭게 찾아 봤더랬다.

1859년 10월에 링슈트라세 개발 사업의 기본 계획이 확정 고시되자 (중략) 링슈트라세의 건축 부지를 일반에게 매각하기 시작했다.
링슈트라세의 건축 부지를 사겠다는 구매자들이 서서히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들은 대부분 새 시대에 성공한 부자들로서 신흥 기업가들과 금융가들, 그리고 대상인들이었는데, 그들 중에는 유난히 유대인이 많았다. 그 주된 이유는 1860년에 요제프 황제가 유대인 토지 구입 금지법을 때마침 철회시켜 주었기 때문이다.
요제프 황제는 그들에게 합스부르크제국의 번화가에 안착할 수 있는 최상의 기회를 제공해 주었고, 유대인 부자들은 그 기회를 마다하지 않고 흔쾌히 링슈트라세 프로젝트의 후원자가 돼 주었다.
요제프 황제의 유대인 토지 구입 금지법 철회는 유럽 계몽주의의 영향이라기보다는 링슈트라세 프로젝트 추진 전략의 일환으로 강구된 경제 대책이라고 보는 것이 더욱 타당하다.
이제 빈 도시 개발을 위한 기본 설계도와 필요한 재정을 모두 확보한 내무부는 본격적으로 공사에 박차를 가했고, 성벽 철거와 글라시스 정지 작업, 그리고 대로 건설이 신속하게 이뤄졌다. 1865년 5월 1일 요제프 황제의 발의가 있은 지 근 8년 만에 드디어 링슈트라세가 개통됐다.
글라시스 Glacis(성벽 주변의 빈 공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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