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경사 바틀비'(허먼 멜빌 / 박경서)로부터
진저 쿠키 - 사진: Unsplash의Kate Mishchankova
그렇다면, 저 친구는 생강과자를 먹고 사는군, 하고 나는 생각했다. 정확히 말해 식사를 전혀 하지 않는군. 그러면 채식주의자인가, 아냐. 채소도 먹지 않아. 먹는 것이라고는 오로지 생강과자뿐이야. 그래서 나는 생강과자만 줄기차게 먹을 경우 인체에 어떤 영향을 끼칠 것인가에 대해 이런저런 공상을 해 보았다. 생강과자는 그 독특한 성분의 하나인 향기가 강한 생강이 들어 있기 때문에 이런 이름이 붙여졌다. 그러면 생강은 무엇인가? 얼얼하고 매운맛이 나는 것이 아닌가? 바틀비도 생강처럼 얼얼하고 매서운가? 아니야, 결코 아냐. 생강은 바틀비에게 아무런 영향도 끼치지 않았어. 어쩌면 그도 생강의 영향을 받고 싶지 않았을 거야.
나는 불안감을 감추지 못한 채 이리저리 둘러보고 칸막이 뒤도 슬쩍 들여다보았다. 외출한 것이 분명했다. 방을 좀 더 자세히 살펴보니 정확히 언제부터인지는 모르지만 아무튼 바틀비가 내 사무실에서 먹고, 자고, 옷을 갈아입었을 것이라고 짐작되었는데, 그것도 접시, 거울, 침대도 없이 말이다. 한구석에 놓여 있는 삐걱거리는 낡은 소파의 푹신한 자리에는 야윈 형체가 누웠던 흔적이 희미하게 남아 있었다. 그리고 그의 책상 밑에는 둘둘 말린 담요 한 장이 처박혀 있었고, 비어 있는 난로의 쇠 살대 밑에는 구두약과 솔이, 의자 위에는 비누와 해진 수건 한 장이 들어 있는 양철 대야가 놓여 있었으며, 생강과자의 부스러기와 치즈 조각 하나가 신문지에 싸여 있었다. 그렇다, 나는 바틀비가 이곳을 제집 삼아 혼자 생활해 온 것이 분명하다고 생각했다. - 필경사 바틀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