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측의 역사(원제 Seeing into the Future)’로부터
Pixabay로부터 입수된 Darren Collis님의 이미지
소포클레스의 비극 『안티고네Antigone』에서 코러스는 이렇게 노래한다."영문을 모르고 걷다가 뜨거운 불에 발을 데게 된다네." - 머리말
점성술과 점성술사는 그리스와 아랍, 페르시아, 유대교 문화를 비롯한 전 세계의 문화를 흡수했다.
점성술의 영향력이 최고조에 이른 것은 르네상스 시기였다. 자부심 있는 왕자라면 누구나 한 명 이상의 점성술사를 데리고 있었다.
대학 도서관도 점성술에 대한 관심을 드러냈는데, 도서관에는 점성술을 연습하는 사람들을 위한 자리가 많이 마련되어 있었다.
마르틴 루터 또한 점성술사가 실수할 수도 있겠지만 점성술 자체는 신께서 허가한 것일 뿐 아니라 이성에 굳게 뿌리박고 있다고 공식 표명했다.
프톨레마이오스가 살았던 2세기부터 요하네스 케플러가 살았던 17세기까지, 학자들이 하늘을 상세히 조사하게 만든 것은 다름 아닌 별자리 점에 대한 수요였다. 의도했건 의도하지 않았건 그렇게 함으로써 학자들은 천문학이 과학의 여왕이 되는 데 일조했고 점성술사들이 굶어 죽지 않게 해주었다. - 6 하늘을 관찰하다 / 2부 합리적 예측의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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