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읽고 있는 러셀 서양철학사를 보면 르네상스 시기에 점성술이 발전했다는 서술이 나와서, '믿습니까? 믿습니다! - 별자리부터 가짜 뉴스까지 인류와 함께해온 미신의 역사'(오후)에서 점성술에 관해 찾아 보았다.

Pixabay로부터 입수된 Gordon Johnson님의 이미지


점성술의 시작은 고대 메소포타미아로 거슬러 올라간다. 메소포타미아의 위치는 현재 이라크 근처다. 과거에는 이 지역에서 인류 최초의 문명이 발생했다고 여겼으나, 현재 이 학설을 믿는 사람은 별로 없다. 하지만 점성술의 시작이 메소포타미아 문명이라는 데는 큰 이견이 없다.

이 지역에 있던 대표적인 국가가 4,000년 전에 세워진 바빌로니아다. 그래서 종종 바빌로니아는 메소포타미아 지역 고대 국가 전체를 의미하는 단어로 사용된다.

중세에는 점성술에 관한 두 가지 대립된 태도가 공존했다. 처음에는 우리가 흔히 생각하듯 탄압했다.

하지만 13세기에 활동한 신학자 토마스 아퀴나스Thomas Aquinas가 점성술을 긍정적으로 해석하면서 상황이 달라진다.

점성술에 대한 상반된 견해는 중세 내내 이어졌고, 교황청은 명확한 입장을 밝히지 않았다.

아퀴나스가 성인의 반열에 오른 뒤로는 점성술이 공공연해졌다. 중세에는 점성술이 크게 발전하지도 않았지만, 크게 탄압받지도 않았다.

역사를 단편적으로 배우면 르네상스를 유럽에 이성이 찾아온 시기로 잘못 이해할 수 있다. 물론 르네상스 때는 이성과 철학, 과학이 발전했다. 하지만 르네상스의 정확한 뜻은 그리스 로마 시대로의 회귀, 즉 기독교 중심의 사회에서 탈피한다는 것이다. 이 시기에는 이성과 철학, 과학뿐 아니라 비종교적인 모든 것이 부흥했는데, 그중 대부분은 미신이었다. 물질의 발전은 기존 정신(종교)을 무너뜨렸다. 종교는 모든 만물을 해석하는 방식이다. 그 방식이 사라졌으니 사람들은 새로운 해석을 해야 했고, 종교의 빈자리는 미신으로 채워졌다.

점성술은 자연스레 제2의 전성기를 맞이한다. 거의 모든 궁정에 점성가가 고용되어 고문으로 활동하며 국정에 관여했다.

르네상스는 여전히 과학과 미신이 공존하던 시기였다. 지성인들은 미신을 비판했지만, 그중 상당수는 점성술을 미신으로 여기지 않았다. 뉴턴Newton, 데카르트Descartes, 프랜시스 베이컨Francis Bacon같은 이성의 결정체였던 인물들도 점성술에 관심을 가지고 예언서를 썼다. 그들은 시정잡배들이 하는 아무 말 예언을 비판했지만, ‘제대로 된 점성술 예언’도 존재한다고 믿었다. 당시 지성들의 관심은 제대로 된 점성술을 아는 것이지, 점성술을 반대하는 것이 아니었다. 당대 최고의 천문학자였던 튀코 브라헤와 그의 제자 요하네스 케플러 역시 점성가였다. 당시 천문학 저작에는 대부분 점성술에 관한 논의가 포함되어 있었으니 특별할 것도 없다. - 3 서양의 미신 : 하늘은 모든 것을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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