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이효석문학상 작품집에 수록된 백수린의 '아주 환한 날들'과 심사평으로부터 옮긴다. 이 단편은 같은 해 이상문학상과 김승옥문학상 작품집에도 실렸다.
사진: Unsplash의 Zdeněk Macháček
20분 정도 대기실에서 기다린 끝에 만난 젊은 의사는 앵무새를 기르는 방식에 대해 이것저것 묻더니 말했다.
"죄송하지만 그렇게 키우시면 안 돼요."
말투는 정중하지만 그가 비난하고 있다는 걸 그녀는 알아챘다. "앵무새는 관심을 많이 필요로 하는 동물이에요. 하루에 몇 번씩 새장 밖에 꺼내 주셔야 해요. 놀아도 주셔야 하고요."
"놀아 주라고요?" 그녀가 물었다.
"안 그러면 외로워서 죽어요."
앵무새를 목련 송이처럼, 조금만 힘을 주면 망가지는 봄날의 목련 송이처럼, 두 손 가득 조심스럽게 들어 무릎 위에 올려놓자 새가 그녀의 웃옷 속으로 파고들었다. 처음 나와 본 세상이 무섭다고 멀리멀리 날아가는 대신, 그녀의 품속으로.
"아이고, 간지럽잖아."
너무 간지러워 웃음이 났다. 한번 터지자 웃음이 계속, 계속 나왔다.
눈을 감자 주위가 캄캄해졌다. 어두운 강물 속처럼. 그녀는 길을 찾기 위해 물풀을 헤치는 사람처럼 눈을 감은 채 기억들 사이를 헤쳐 지나갔다. 그리고 마침내는 그 시절로 되돌아갈 수 있었다. 어디선가 갑자기 나타나 빼꼼 그녀를 바라보던 앵무새, 어깨에 올려놓으면 가만히 앉아 그녀와 같이 연속극을 보며 그녀의 목에 보드라운 부리를 비비던 앵무새, 화초에 물을 주기 위해 그녀가 양동이 가득 물을 담아 뒤뚱뒤뚱 걸어가면 그 뒤를 총총총, 발소리를 내며 따라오던 작고 작은 새가 아직 그녀에게 있던 시절로. - 아주 환한 날들 | 백수린
백수린의 〈아주 환한 날들〉은 소설의 정석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앵무새와 나누는 우애의 시간을 통해 상상적인 방식으로 딸과 화해하는 과정, 혼자 사는 삶과 더불어 사는 삶의 아이러니적 관계에 대한 천착 등이 심사자의 마음에 오랫동안 남았다. - 심사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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