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책의 파도에 몸을 맡긴 채- 속초 동아서점 김영건 에세이'를 읽는다. 아래 옮긴 글은 1부 '사람의 풍경, 서점의 초상'으로부터.
속초시 By Steve46814, CC BY-SA 3.0, 위키미디어커먼즈
내가 손님을 보며 특정한 책을 떠올리듯, 반대로 손님이 나를 보고 연상하는 ‘시그니처 북’이 있을까. 내게 선정의 기회가 주어진다면, 마르그리트 뒤라스의 《이게 다예요》를 꼽겠다. 맥없는 눈동자에, 들릴 듯 말 듯한 목소리로 건네는 가녀린 말이 영락없는 내 모습 같아서다. 찾는 책이 열에 아홉 없는 단골손님 앞에서 멋쩍게 웃을 때도, 서가에 진열된 책 말고 새 책을 요청하는 손님에게 가진 건 한 권뿐이라고 고개를 숙일 때도, 주눅 든 내 마음은 "이게 다예요…" 하고 웅얼거렸던 것만 같다. - 시그니처 북
긴 연휴가 지나고 나면 다녀간 사람이 많았던 까닭에 서가 곳곳이 휑하다. 생각보다 많은 빈 공간에 당황한 책들이 좌우로 기울어진 모습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경이롭지만, 아주 가끔씩 팔리지 않던 책들의 자리가 비어 있는 것을 발견할 때면 감격이 소용돌이 친다. 냉정하게 보면 그냥 책 한 권이 팔렸을 뿐인데도 나는 마냥 신기해한다. ‘내가 이 책을 여기에 숨겨놓은 걸 대체 어떻게 발견했을까!’ 드물고도 어렵게 주인을 만났으면 그걸로 그만이어도 좋으련만, 나는 한 번의 탄복에서 그치지 않고, 기어코 그 책들을 다시 주문하고야 만다. 어제는 모리스 블랑쇼의 《문학의 공간》을, 오늘은 진 리스의 《광막한 사르가소 바다》를. 이 책들이 단정한모습으로 서가 구석구석에 꽂혀 있는 이유는 바로 서점이 세탁소이기 때문이다. 언젠가 찾아올 당신을 위해, 당신이 맡겨둔 얼룩과 슬픔도 잘 다려놓고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 당신의 아름다운 세탁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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