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뜻한 와인 ‘뱅쇼’ 간편 제조법 개발 / KBS 2021.08.23.] https://youtu.be/nlqvsN8DVpM
내 냉장고에 레몬 하나가 시들어가고 있는데 - 올해 초 뱅쇼를 만들기 위해 산 세 개 중 남은 마지막 하나 - 한 번 더 뱅쇼를 만들어야 할까.
'겨울 간식집' 수록작 '한두 벌의 다른 옷'(박연준)으로부터
사진: Unsplash의ALEXANDRA TORRO
성희에게 들은 이야기는 이랬다. 영혜는 우리보다 다섯 살이 많다. 몸이 약해 학교에 자주 못 나온다. 수업 중에 쓰러진 적도 있다. 영혜와 친한 사람은 거의 없다. 대부분 혼자 지내고, 신비감에 휩싸여 있다. 부잣집 외동딸이다. 까다롭고 고급스러운 취향을 가졌다. 진짜 문학도다. 학부 때 시 잘 쓰는 애로 유명했다.
—너가 여름이구나. 이리로 와볼래?
영혜가 웃었다. 웃을 때 코에 주름이 잡혔다. 영혜는 왼손으로는 허리를 짚고 오른손으로는 아무렇게나 토막 낸 사과와 배, 오렌지를 냄비에 넣었다.
—너네 오기 전에 완성해 놓으려고 했는데 미안. 뱅쇼를 끓이려고 하거든. 마셔본 적 있어?
영혜는 미리 따놓은 와인 두 병을 과일이 든 냄비에 쏟아부었다. 냄비 밖으로 몇 방울, 붉은 와인이 튀었다.
—사실 나 뱅쇼 처음 끓여봐. 맛이 어떨까?
나는 끓이기에는 과일이 지나치게 싱싱하다고 생각했다. 단단하고, 열렬히 살아 있는 과일을 단지 향을 입히기 위해 끓인다니. 그거 참 고급 취미군.
—아깝다. 향을 내기엔.
혼잣말에 가까운 내 중얼거림을 듣고 영혜가 미소를 지었다.
—오늘 꼭 크리스마스 같네.
영혜는 뱅쇼가 담긴 잔을 식탁에 올리고 호밀빵과 버터, 견과류와 치즈를 꺼내 접시에 담았다. 미리 사 둔 김밥 두 줄과 스위스 초콜릿 한 줌도 곁들였다. 처음 마셔본 뱅쇼는 뜨겁고 시고 떫었다. 뱅쇼를 먹어본 적 없기에 원래 뱅쇼의 맛이 이런 건가 생각했다. 달지 않아서 좋았다. 우리는 두껍게 자른 호밀빵에 버터를 바르고, 견과류를 올려 먹었다. 빵의 거친 식감과 버터의 부드러움, 견과류의 고소함이 마음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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