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음악은 브라질로부터 왔다. 우연이 연결해주었다. 브라질 독립에 관한 아래 글의 출처는 '브라질사'( 최영수 지음).


쥬세 보니파시우 José Bonifácio de Andrada e Silva 안드라다 이 실바 - Daum 백과 https://100.daum.net/encyclopedia/view/b14a3043a


Etude In G Flat Major Op.25 No.9 Butterfly · Guiomar Novaes / Composer: Guiomar Novaes https://youtu.be/dJgU1hi7zig


[네이버 지식백과] 노바에스 [Guiomar Novaës] (인명사전, 2002. 1. 10., 인명사전편찬위원회) https://terms.naver.com/entry.naver?docId=878831&cid=43671&categoryId=43671 브라질 여성 피아니스트.




브라질 나비 - 사진: Unsplash의 Higor Prestes


동 뻬드루는 다음과 같이 선언했다. ‘오늘 이후로 우리들의 관계는 단절된다. 나는 포르투갈 정부로부터 더 이상 아무것도 원치 않는다. 브라질이 포르투갈로부터 영원히 분리됨을 선언하노라.’ 이어서 보좌관들에게 말했다. ‘내가 방금 브라질의 독립을 선언했다고 수비대에게 전하라.’ 바로 이날이 1822년 9월7일 이었다. 동 뻬드루는 실제로 브라질의 많은 정치인들에 의해 조정을 받아 독립을 선언했다. 그들 중 가장 영향력을 많이 행사한 인물은 쥬세 보니파시우였다. 당시 보니파시우는 군주제를 유지하기 위해 독립을 서둘렀다. 자칫하면 스페인령 아메리카처럼 브라질도 공화정 체제로 독립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브라질의 독립을 원하는 주된 세력이 군주제를 택한 것은 다음과 같은 이유에서였다. 첫째, 당시 왕권은 거의 모든 국민들에게 최상의 정부형태로 간주되고 있었다. 둘째, 질서의 유지가 관건이었는데 이미 공화정으로 독립한 스페인령 아메리카 국가들은 엄청난 무질서로 혼란을 겪고 있었다. 셋째, 정치 지도자와 군부 지도자들 간의 대립관계로 브라질의 통합을 유지하는 데는 군주제가 적합하다고 생각되었다, 넷째, 대토지 소유자들은 군주제 하에서만이 그들이 보호받을 수 있다고 판단했다. - 제2장 브라질의 정치적 독립 (II. 브라질의 독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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