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colors – F.스콧 피츠제럴드 『위대한 개츠비』’ 가 실려 있어 과월호 '악스트 Axt 2019.03&04'를 집었는데 커버스토리 윤이형 작가 인터뷰에 꽂혀 단숨에 읽었다. 

코쿤(고치) Pixabay로부터 입수된 LoggaWiggler님의 이미지


윤이형 '쿤의 여행' 심사평 https://v.daum.net/v/20131107204515124 (심진경)


단편소설 '쿤의 여행'이 수록된 책들이다. 




「쿤의 여행」은 그렇게 썼던 것 같아요. 진짜 나는 한 열네 살, 열다섯 살 정도 되는 중학생 여자아이라고 생각하면서 살고 있었어요. 그걸 쓸 때까지. 그래서 나머지를 다 떼어버리고 이 중학생 여자아이를 키워서 어른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쿤이 지금까지 나를 살게 해줬던 건 맞죠. 그런데 저는 그것에 대해 양가감정을 가지고 있었어요. 진짜 나라고 할 수 있는 나는 미성숙한 여자애인 거예요. 제가 느끼기에. 삼십대 후반에서 사십대 초반까지 그랬어요. 이 애를 키워보고 싶은데 나는 성장을 할 수 없나? 왜 이렇게 안 자라지? 그런 생각이 많이 들었고, 어떻게 하면 얘를 키울 수 있을까, 생각하다가 그러면 그냥 나머지를 떼어버리자, 하는 결단을 내리게 된 거예요.

저 자신을 돌아보니, 사십대 정도 되면 제가 가지고 있을 거라고 생각했던 경험치, 안정감, 여유, 세상에 대한 지식, 감정적 강인함, 자신감, 물질적 자원, 자신을 돌보는 노하우 같은 것을 하나도 갖고 있지 않았고, 여전히 십대 중반에서 이십대 중반에 느꼈던 정서, 그러니까 불안함, 공허함, 내가 해파리처럼 이리저리 떠다니고 있다는 느낌,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막막함 같은 것들이 더 많은 거예요. 저 자신이 단단하게 느껴지지 않고 물렁물렁한 덩어리처럼 느껴졌어요. 아직 세상에 대해 아는 게 없다는 감각. 그래서 많이 배우고 싶다는 다짐. 이제 시작이라는 생각. 긍정적이지만, 이런 건 이십대에 하는 생각이잖아요. 초심자의 마음. 그런데 저는 이십 년 동안 계속 거기에 머물러 있었던 거예요. 밖에서 보기에는 어땠는지 모르겠는데 제가 느끼기에는 경험치가 쌓이지 않았어요. 그렇다는 자각이 드니까 어느 순간 너무 무서웠어요.

음…… 인간다움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은 너무 어려운 것 같아서 그냥 인간만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가,로 대답해도 될까요? 자기 슬픔을 농담으로 바꾸는 것. 기계는 그건 못할 것 같아요. 누가 농담을 입력해주면 그건 따라할 수 있겠지만 자신이 가진 슬픔을 농담으로 승화시키지는 못할 것 같아요. - 윤이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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