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장을 계속 읽는다.
Hannah Arendt lecturing in Germany, 1955-Public Domain, 위키미디어 커먼즈
한나 아렌트가 초기 저작에서 분명히 했던 것처럼, 유대성과 유대주의가 항상 같은 것은 아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국가에 대한 그녀의 정치적 입장이 점점 성숙해지면서 확실하게 보여주었듯이, 유대주의나 유대성 모두 반드시 시온주의를 받아들이는 쪽으로 귀결되지는 않는다.
*Hannah Arendt, The Origins of Totalitarianism(New York: Harcourt Brace Jovanovich, 1951, 한국어판: 《전체주의의 기원》, 이진우·박미애 옮김, 한길사, 2006), 66; Rachel Varnhagen: The Life of a Jewish Woman(New York: Harcourt Brace Jovanovich, 1974, 한국어판: 《라헬 파른하겐—어느 유대인 여성의 삶》, 김희정 옮김, 텍스트2,0 13), 216-228.
지정학적으로 흩어져 있다는 게 핵심이 아니다. 핵심은 새로운 정치적 정의의 개념화에 봉사할 수 있는 흩어진 삶scattered existence에서 일군의 원칙을 도출하는 것이다.
팔레스타인 민족을 파괴로부터 보호하지 않고서는 유대 민족을 파괴로부터 보호할 수 없다는 게 정치적 핵심이다.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생활과 살림 파괴는 그 파괴를 자행했던 이들에 대한 파괴 위협을 증대할 뿐이라는 게 진실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폭력적·비폭력적인 판본을 두루 갖고 있는 저항 운동에 지속적인 토대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이런 논점을 이해하기 위해 헤겔을 열심히 공부한 우등생일 필요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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