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지니아 울프의 '등대로'를 번역한 소설가 정영문이 자신의 단편소설 '동물의 권태와 분노의 노래 3 - 부엉이의 숲'('목신의 어떤 오후' 수록작)에 울프를 인용한 부분을 찾아둔다. 출처를 구체적으로 밝히지는 않았다. 

Belle Tout Lighthouse Beachy Head - Eric Ravilious - WikiArt.org






이제 어느새 저녁 무렵이 되었다. 그사이 아이들도, 아낙들도 모두 자신의 집으로 돌아가버렸는지도 모르겠다. 한데 개와 함께 산책하는 노인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그도 그럴 것이 그들의 모습을 꾸며낸 것은 나였으니까. 노인 역시 얼마 전 죽었고-그의 새가 죽은 뒤 조금 후-그의 개는 어디론가 사라졌으니까. 그가 자신의 개와 함께 매일 일정한 시각에 바닷가를 산책한 것은 나의 상상 속에서였으며 그 상상 속에서 내가 본 것은 그의 유령이었다.

어떤 불치병을 앓다가 죽은 그가 죽기 전 정원의, 이미 죽은 것이나 다름없는 모과나무 옆에서 들려준, 어떤 소설 속의 구절은 그에 대한 나의 추억의 한가운데 남아 있다. "창문턱에 있는 진짜 꽃은 유령 꽃의 일부였다. 하기야 유령도 꽃의 일부이기는 했다. 꽃봉오리가 터졌을 때 거울에 비친 옅은 색의 꽃도 봉오리를 터뜨렸으니."*(각주: * 버지니아 울프의 소설에서 인용.) 그 문장은 그후로 나로 하여금 그것을 주술처럼 읊조리게 했다.

그는 자신이 죽은 후 유령이 되어 한동안 유령으로 살아가게 될 것 같다고 말했다. 그리고 나는 여전히 그가 유령으로서 자신의 개와 함께 바닷가를 산책하며, 그의 방치된 정원을 서성거리고 있을 거라고 믿고 있다. 최소한 어쩌면 누구도 돌보지 않는 그의 집을 뒤덮고 있는 담쟁이덩굴이 그것을 모두 삼키기 전까지는. (동물의 권태와 분노의 노래 3 - 부엉이의 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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