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시이 모모코(1907~2008) 1958 By Primebaseball - Own work, CC BY-SA 4.0



By Asturio Cantabrio - Own work, CC BY-SA 4.0


https://blog.naver.com/xplex/221330546642 이시이 모모코 사후 10주년 기념 전시회(2018)


 '책과 정원, 고양이가 있어 좋은 날'(이시이 모모코 지음, 이소담 옮김)은 재작년 겨울에 읽은 산문집이다. 약력을 보니 저자는 일본 근대 동화의 선구자적 인물 같다. 아래 글에 "거의 양복을 입었다"고 썼는데 당시 - 태평양 전쟁 즈음 - 대부분 기모노 같은 전통의상을 주로 입는 의복생활을 해서 그리 서술한 것으로 보인다. 




얼마 전 도쿄에 갔을 때, 친한 친구에게 이런 말을 들었다.

"A 씨랑 만났을 때, 네가 어떤 옷을 입고 농사를 짓는지 궁금하다는 얘기가 나왔어. 역시 너니까 최신식 하이칼라로 빼입고 있을 것 같다고 다들 웃었어."

내 지인이라면 다들 알 텐데, 이때 ‘역시 너니까’라는 말의 뜻은 내가 정말로 옷을 잘 입는 하이칼라라는 뜻이 아니다. 그저 내가 단순하고 어린애 같아서 몸에 익숙한 것이 아니면 입거나 요리하거나 말하지 못하는 부류의 인간이어서, 옷을 직접 지어 입기 시작한 후부터는 거의 양복을 입었다는 이야기일 뿐이다.

나는 빨래가 특기여서 외투도 부드러운 것이라면 직접 세탁했다. 비눗방울 같은 색감의 면 원피스는 여름이 오면 거의 하루 걸러 한 번씩 칠팔 년이나 입어서 가끔 만나는 사람에게 익숙한 옷이라는 말을 들었다. 가끔 심술궂은 사람은 "아직도 입어? 진짜 대단하다. 새 옷 좀 만들어"라고도 한다. 사실 이 지인은 양복가게를 운영하는 사람이다.

당시–즉, 전쟁이 발발하기 전에 내가 옷을 짓던 때–가장 사이가 좋았던 친구가 내가 입는 옷의 팬이었다. 화장도 진하고 잘 꾸미는 친구였는데, 작년에 유행하던 것이 아닌 대신에 올해 유행에 뒤처진 것도 아닌 내 옷을 좋아했다.

"그 옷, 밖에 입고 못 나가게 되면(당시 나는 잡지기자로 일해서 외근을 많이 했다) 내가 입을게"라고 해서 웃은 적도 있고, 둘이 같이 외출하면 "오늘 본 옷 중에서 네 거랑 비슷한 건 하나도 없더라"라며 칭찬해주었다. 심지어는 내가 입던 것을 받아야 착용감이 좋다면서 자기 옷을 새로 장만할 때도 나한테 만들게 하고 한동안 입히기도 했다.

그 친구가 세상을 떠난 뒤, 내 옷은 갈 길을 하나 잃어 오랜 세월 내 곁에 남아 있었는데, 같은 옷을 십 년이나 입으면 마지막 이삼 년은 해가 갈수록 본연의 색감을 점점 잃어간다는 것을 깨달았다.

역시 너니까 하이칼라로 빼입고 농사를 지을 것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 나는 의자에 앉아 양말을 기우며 저 먼 산속 생활을 어떻게 설명해야 좋을지 몰라, "해져서 피부가 드러나는 옷을 입어"라고 대답했다.

작업복은 빳빳한 면이 아닌 이상 아무리 기워도 찢어져서 걸레처럼 되어버린다. - 말쑥한 양복과 허름한 작업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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