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문집 '슬픈 인간'(정수윤 편역)에 실린 미야모토 유리코의 '도서관'을 읽는다. 여성은 도서관 출입을 남성과 따로 하던 시대. 일본 패전 이후의 풍경이다. 글이 맘에 들어 천천히 아껴 읽어야겠다.
긴 목걸이를 한 맨왼쪽 여성이 미야모토 유리코다. 모스크바에서 촬영(날짜 불상).
혹시 책을 볕에 말리느라 휴관인 건 아니겠지? 너무 오랜만에 오니까 잘 모르겠어. 혼자 중얼거리며 반신반의하는 마음으로 걸었다.
7년쯤 전, 봄부터 여름, 가을, 겨울에 걸쳐 틈만 나면 다니던 때는 이 창구에서 티켓을 사서 옛날신문 같은 걸 들춰봤다. 전쟁을 거치며 이곳의 관례도 자연스레 변했나보다.
한동안 못 왔는데 많이 바뀌었네요, 입장권은 저기 드리면 되나요? 내가 묻자 할아버지는, 어어 하고 끄덕이며 다시 일어나, 저기로 들어가서 오른쪽에, 하고 알려줬다.
삼층은 전에도 이렇게 서적 대출창구와 자료실이 있었나. 먼지가 자욱하고 안으로 깊숙한 어둔 서고를 향해 재판소 비슷하게 높은 책상이 있는 건 익숙한 풍경인데, 자료실 쪽이 이상하게 텅 비어 있다. 서적을 빌리는 데는 여전히 시간이 걸리는 모양이었다.
여성열람자의 대출창구는 따로 칸이 질러 있고 전임이 한 사람 있었다. 이건 예전과 다를 바 없다.
• 수록 『분게이文藝』 1947년 3월 • 저본 『宮本百合子全集 第14巻』 新日本出版社, 2001
미야모토 유리코宮本百合子(1899~1951) 소설가, 사회운동가. 도쿄의 명망 있는 건축가의 장녀로 태어나 유복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열여덟 살에 소설 「가난한 사람들」을 발표해 천재소녀로 주목 받았다. 자본주의 사회의 폐해를 깨닫고 문학으로 민주주의 운동을 펼쳤으며 수차례 투옥 및 집필 금지처분을 받았다. 패전 후 피폐해진 사회상을 여성의 시선으로 섬세하게 그려낸 소설 「반슈평야」를 비롯해 「두 개의 정원」, 「도표」 등 역작을 남겼으며 집필, 강연, 집회 등 다양한 활동을 펼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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