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아시아태평양전쟁과 조선인 강제동원'(정혜경 지음)을 읽다가 '세계최종전쟁론’이란 것을 발견했다. '1장 불편하지만 외면할 수 없는 역사' 중 '2.사실의 무게를 안다는 것'이 아래 글의 출처이다.
이시와라 간지가 중앙에 앉아 있다. Public Domain, https://commons.wikimedia.org/w/index.php?curid=27644094 * 이시와라 간지 https://www.imaeil.com/page/view/2010011808300201316
아시아태평양전쟁, 특히 미국을 상대로 한 태평양전쟁은 무모한 전쟁이었다. 물론 미국과의 전쟁은 일본군의 숙원이었다. 만주 침략의 주모자인 이시와라 간지石原莞爾는 1928년 1월 19일 육군 목요회 주최 모임에서 ‘우리의 국방 방침’이라는 강의를 통해 "미일 개전은 세계 최후의 전쟁인데, 일본은 중국을 차지한 후 수십 년 이상 국력을 축적해야 미국과 일전을 벌일 수 있다"라고 전망했다. 일명 ‘세계최종전쟁론’이다. 목요회는 단순한 친목 모임이 아니라 육군에서 국책 결정에 필요한 미래전쟁을 연구하기 위해 조직한 모임이었다. 이시와라 간지는 당시 육군대학교 교관이었다. 이 자리에는 대미 전쟁 당시 총리였던 도조 히데키東條英機도 참석했다. 그러나 일본은 중국을 다 차지하기도 전에 미국을 상대로 전쟁을 일으켰다. 무모한 짓이었다.
군부는 일찍부터 승산이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이미 1940년 8월 각의결정에 따라 1941년 4월 개소한 총력전연구소는 8월에 ‘미일 개전은 패전으로 이어질 것’이라 전망했다. 그럼에도 일본 군부와 정부 고위층은 미국을 상대로 전쟁을 일으켰고, 기울어가는 전세를 인정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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