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자이 오사무 - 겨울의 불꽃놀이

https://blog.aladin.co.kr/790598133/14468202 다자이 오사무의 희곡 '겨울의 불꽃놀이'를 전에 읽고 페이퍼를 작성한 바 있는데,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인간 실격'(김춘미 역) 작품해설로부터 일본의 태평양전쟁 패전과 더불어 이 희곡이 언급된 대목을 옮겨둔다. * 근대 일본문학 - Daum 백과 https://100.daum.net/encyclopedia/view/b18a1533b024 이 중 '전후의 문학' 항목 참조.

Festival Night Fireworks, 1924 - Yamamura Toyonari - WikiArt.org


다자이 오사무 전집 중 '판도라의 상자'(정수윤 역) 에 다자이 오사무의 희곡 '겨울의 불꽃놀이'가 실려 있다.

Shinagawa in Snow, 1924 - Yamamura Toyonari - WikiArt.org

다자이가 미치코 부인과 결혼하고 소강상태를 얻어 비교적 낙관적인 수작을 발표한 중기는 태평양 전쟁하의 어려운 시절이었지만 동시에 다자이가 처음으로 직업 문인으로서 자신의 삶을 위해 글을 쓰려고 결심한 시기에 해당된다. 전 일본을 휩쓴 격동기에 비로소 홀로 서기를 결심하고 나름대로 성공한 시기기도 하다.

그러나 패전 후의 일본은 그에게 환멸과 실망만을 안겨 주었다. 인간 실격자라 자조하며 철저한 자기 부정을 통해 획득된 깊이 있는 인생 통찰이 패전 후의 사회상에 대해 실망과 분노를 느끼게 했고, 그 분노는 그대로 좌절과 자포자기로 그를 이끌었다고 볼 수 있다. 이때 다자이의 자포자기가 우리의 심금을 울리는 이유는 그것이 그 개인의 몫이 아니라 전후의 혼탁한 상황에 실망했던 일본의 뜻있는 자들을 대변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결국 무뢰파(無賴派)니 데카당스파니 하는 호칭으로 불리며, 전후 인기 작가로 부상한 다자이는 개인적인 지점에서 사회 비판이라는 지점으로 나아가면서 어떤 의미에서는 공적(公的)이라 할 자기 파멸을 기도하게 된 것이다.

가토 노리히로는 「패전후론」(1997)에서 다자이의 희곡 「겨울의 불꽃놀이」(1946)의 "졌다, 졌다고들 하지만 나는 그런 게 아니라고 생각해. 망한 거지. 멸망한 거라고. 일본 구석구석까지 점령당하고 우린 한 명도 빠짐없이 포로인데. 어쩜 그걸 부끄럽게 여기지도 않고, 시골 사람들은 바보야."라는 부분을 인용한 다음, 전쟁 중에 협조하라는 당국의 압박에 굴하지 않고 용케도 군국주의 체제에 저항했던 나카노 시게하루(1902~1979), 다자이 오사무가 전후에 주류가 된 ‘전후파 문학’이라는 범주에서 배제되어 구 프롤레타리아 문학이니 무뢰파 문학이니 하는 범주로 옮겨진 것은 이들만이 전후 일본 사회의 일그러진 현실을 제대로 인식했던 존재였기 때문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패전 후 어제까지 침략 전쟁을 성전(聖戰)으로 옹호하고 왕을 위해 목숨을 바치는 것이 영생을 얻는 길이라고 떠들어대던 지도층 인사들이 하루아침에 손바닥 뒤집듯이 민주주의를 논하고, 공산당 인사들까지도 점령군 통치하의 ‘주어진 자유’에 도취할 때, 다자이는 맨 정신으로는 살아갈 수 없을 만큼 한없이 부끄러웠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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