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자이 오사무 단편집 '여학생' (전규태 옮김)에 실린 '12월 8일'(1942)을 읽었다. 일본이 태평양전쟁을 개시한 날의 상황과 분위기가 부인의 일기 형식으로 기록되어 있다.
By US Army - Photos of Pearl Harbor Memorial
오늘 일기는 특별히 정성스레 쓰겠다. 쇼와 16년(1941년) 12월 8일에 이 가난한 가정주부가 어떤 하루를 보냈는지를 좀 써두고 싶다.
12월 8일 이른 아침, 이불 속에서 아침 준비에 신경을 곤두세우며 올해 6월에 태어난 소노코에게 젖을 먹이고 있는데, 어딘가의 라디오에서 뚜렷하고도 정중한 보도가 들려왔다.
"대본영(大本營) 육해 군부 발표. 일본제국 육해군은 오늘 8일 새벽 서태평양에 있어 미국, 영국과 전투 상태에 진입했습니다."
간밤에 처마 밑에 널어놓았던 기저귀도 꽁꽁 얼어붙었고 안뜰에는 서리가 내렸다. 한기가 정말이지 여간이 아니다. 그런데도 동백꽃은 어엿이 피어 있다. 고요하다. 지금 태평양에서는 전쟁이 일어났는데도 말이다. 이상한 기분이다. 일본이라는 나라에 새삼 고마움을 느낀다. - 12월 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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