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자이 오사무 단편집 '여학생' (전규태 옮김)에 실린 '12월 8일'(1942)을 읽었다. 일본이 태평양전쟁을 개시한 날의 상황과 분위기가 기록되어 있다. 연보를 보니 그 해(1941)에 딸('소노코'란 이름도 같다)을 낳은 사실을 포함하여 개인사를 반영하는 내용이다. 혹시 부인 미치코의 일기를 참고한 것일까? 가능한 일이다. 다자이의 '사양'도 당시 만난 여성의 일기를 보고 쓴 것이니까.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사양' 작가 연보에 이 사실이 적혀 있다. * 사양 https://100.daum.net/encyclopedia/view/212XX82900082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By US Army - Photos of Pearl Harbor Memorial, Public Domain, https://commons.wikimedia.org/w/index.php?curid=17816592


[네이버 지식백과] 태평양전쟁 [Pacific War] (21세기 정치학대사전, 정치학대사전편찬위원회)https://terms.naver.com/entry.naver?docId=729866&cid=42140&categoryId=42140



오늘 일기는 특별히 정성스레 쓰겠다. 쇼와 16년(1941년) 12월 8일에 이 가난한 가정주부가 어떤 하루를 보냈는지를 좀 써두고 싶다.

12월 8일 이른 아침, 이불 속에서 아침 준비에 신경을 곤두세우며 올해 6월에 태어난 소노코에게 젖을 먹이고 있는데, 어딘가의 라디오에서 뚜렷하고도 정중한 보도가 들려왔다.

"대본영(大本營) 육해 군부 발표. 일본제국 육해군은 오늘 8일 새벽 서태평양에 있어 미국, 영국과 전투 상태에 진입했습니다."

간밤에 처마 밑에 널어놓았던 기저귀도 꽁꽁 얼어붙었고 안뜰에는 서리가 내렸다. 한기가 정말이지 여간이 아니다. 그런데도 동백꽃은 어엿이 피어 있다. 고요하다. 지금 태평양에서는 전쟁이 일어났는데도 말이다. 이상한 기분이다. 일본이라는 나라에 새삼 고마움을 느낀다.

"이제부터는 힘들어지겠네요."전쟁 얘기를 하려 했는데, 이웃 아줌마는 며칠 전, 통장이 된 얘기인 줄로 안 모양이다."아, 아뇨, 아직 아무것도 시작하질 못했어요."부끄러운 듯 말하는 바람에 나는 그만 쑥스러워졌다.

이웃 아줌마도 전쟁에 대해 생각하는 바가 없지는 않겠지만, 그보다는 통장의 무거운 책임에 대해 긴장하고 있는 듯싶다. 이제부터 통반장 일도 힘들어질 것이다. 연습 때와는 달라질 테니까. 막상 공습이라도 당하게 되면 그 지휘의 책임은 중대해질 것이다.

목욕탕에 갈 때에는 길이 밝았는데 돌아오는 길은 이미 어두컴컴하다. 등화관제(燈火管制)를 하는 것이다. 연습이나 훈련이 아니다. 마음이 묘하게 긴장된다. 하지만 너무 어두운 게 아닐까. 이렇게 어두운 길은 이제껏 걸어본 적이 없다. 한 걸음, 한 걸음, 더듬거리듯 나아가고 있지만, 갈 길은 멀고 어둠은 더욱 짙어간다. - 12월 8일

1939년 30세 1월 8일, 이부세 부부의 중매로 야마나시 현 쓰루 고등여학교 교사인 26세 이시하라 미치코와 결혼식을 올리고 고후 시에 살림을 차림.

1941년 32세 6월 7일, 장녀 소노코가 태어났고, 모친 병문안차 10년 만에 고향 가나기의 생가를 방문함. 11월에 문인 징용령에 의해 징발되었으나 흉부질환으로 면제 처분을 받음. 12월 8일, 태평양전쟁으로 전시체제에 접어듦. - 연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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